법정에는 창문이 없다. 인공으로 밝힌 조명이 있을 뿐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은 없다. 밖에는 목련, 벚꽃, 개나리, 진달래가 다투듯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이런 호시절에도 법정에는 서릿발 같은 추궁과 비련함이 교차한다. 여기 피고인이 있다. 피고인은 돈도 없이 식당과 술집에서 음식이나 술을 먹었다는, 이른바 무전취식으로 기소되었다.

“(검사 의견진술하시죠.) 피고인은 종전에도 스무 차례나 돈도 없이 술을 마셔 사기죄로 처벌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출소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이렇게 반성하지 않는 채 선량한 시민들에게 해를 끼치는 피고인에게 징역 2년의 엄한 처벌을 하여주시기 바랍니다. (변호인 최후변론하시죠.) 피고인은 나이 마흔이 넘었지만 아직 결혼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늘 범행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지만 알코올중독으로 술만 마시면 자신도 모르게 아무 데나 가서 술을 먹곤 합니다. 피고인은 엄한 형벌보다는 알코올중독 치료를 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선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피고인 마지막으로 하실 얘기 있으면 하시기 바랍니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습니다.”

법정에서 흔히 마주하는 모습이다. 술로 인한 범죄는 이외에도 많다. 음주운전, 폭력, 상해, 업무방해, 가정폭력, 공무집행방해까지. 때로는 절도의 경우에도 음주와 연관이 있는 경우가 많다.

필자는 올해부터 형사항소부를 맡게 되었는데 처리하는 사건의 절대 다수가 술로 인한 범죄다. 그 수치에 놀란다. 물론 필자도 술을 마신다. 때론 취할 만큼 마시기도 하지만 술로 인해 인생의 낭패를 경험하는 피고인들을 보면 곤혹스럽다. 어쩌다가…, 술을 안 마시면 저렇게 순하신 분들이…. 많은 피고인이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으니 이번만 선처해 달라’고 판사에게 반성문이나 편지를 써 보내기도 한다. 그때만은 진심일 게다. 또 그만큼 절박하기도 하다. 하지만 음주범죄의 재범률은 다른 범죄보다 몇 배나 높다.

굳이 전문기관의 통계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의 술 소비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알코올중독자도 300만 명 이상이라고 한다. 일을 마친 후 고단한 몸을 적시는 술 한 잔은 삶의 큰 위안이다. 많은 사람이 술로 위로받기도 하지만 또 술 때문에 고통받는다. 왜 술을 마시고 이렇게 범행까지 하였느냐고 물으면,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보았다.

또 술로 인한 범죄는 대부분 빈곤층과 관련이 있다. 몇 년 전 국회가 음주운전에 대한 형벌을 대폭 강화하였다. 또 일부 언론사와 경찰당국이 술을 마시고 경찰관과 싸우는 공무집행방해나 폭행, 상해, 업무방해를 주폭, 주취폭력이라 부르면서 그에 대한 척결운동을 벌인 적도 있다. 그 때문인지 법원도 사뭇 엄한 처벌을 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그 결과 법은 없는 사람에게만 엄하다는 볼멘소리를 듣게 될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술을 파는 이 도시가, 술에 관대한 우리의 인심과 제도가 모두 공범자인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범죄는 사회적이다. 범죄를 저지른 개인의 심성과 자유의지만 탓할 게 아니다.

국가가 주세를 받아 알코올중독치료병원도 많이 짓고, 서민들이 고된 일과를 마친 후 이웃과 소통할 수 있는 도서관이나 운동·취미 활동을 할 수 있는 여가시설을 동네마다 많이 지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노동으로 생긴 스트레스를 술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달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담뱃값에는 300∼400원에 이르는 건강증진부담금이 매겨지고 그 돈으로 금연홍보나 흡연자를 위한 비용으로 쓴다는데 술에는 주류협회의 반대로 그마저도 없다고 한다. 그리고 국내 유일의 알코올중독치료전문병원(KARF)이 주류협회의 지원금 중단으로 2013년에 폐업하였다는 보도도 보았다.

죄와 벌은 상응하여야 한다. 그리고 형벌보다 치료를 우선해야할 사람들이 많다. 술로 인한 범죄에 관용을 베풀자는 것이 아니라 범죄를 사전에 예방하고 재범을 막기 위해서는 사회적 노력과 비용의 투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범죄로부터 사회를 방위하는 지름길이다. 엄한 형벌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법원으로서는 달리 해법이 없어서 늘 마음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