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그룹의 회장이나 거액의 자산가가 사망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상속인들 사이에 상속재산과 관련한 분쟁이 발생하였다는 뉴스를 접하곤 한다. 그때마다 ‘유류분’이라는 낯선 단어가 등장한다. 도대체 유류분이 무엇이기에 의절한 채로 지내던 혼외자나 형제들이 망인의 뜻과 무관하게 수십 년 전에 물려준 재산까지 거론하며 다투는지 궁금해진다. 이러한 분쟁은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종종 발생한다.

유류분 제도는 망인(亡人)이 생전에 여러 상속인들 중 일부에게만 가진 재산을 다 주어서 정작 사망한 때에는 상속재산이 없는 경우나 유언으로 특정 상속인에게 상속재산을 몰아주는 경우에 다른 상속인들이 재산을 받은 이를 상대로 법정 상속분의 2분의 1(직계비속, 배우자) 또는 3분의 1(직계존속, 형제자매)에 이르기까지 상속재산의 반환을 구할 수 있게 하는 제도이다. 원래 우리나라에서는 없었는데 부양이 필요한 상속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1977년 민법 개정으로 도입되었다. 독일이나 일본 등에서도 같은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고 하니, 우리만 유별난 것은 아니다.

사망 후 이루어지는 상속은 남아 있는 가족들에 대한 부양의 계속으로 볼 수 있다. 망인이 가족들을 고려하지 않고 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하더라도 일정 비율만큼은 반환받을 수 있도록 법으로 정함으로써 남은 가족들 모두가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이 생활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기능을 한다.

형제간에도 큰 고기는 자기 망태에 담는다는 속담이 말하듯이 사람의 재산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는 법이다. 남이나 다른 형제에게 부모의 재산 대부분이 넘어가는 것을 지켜보아야 한다면 비록 그것이 돌아가신 분의 뜻이라 하더라도 성인군자가 아니고서야 어찌 속이 편할까? 상속인들 모두가 얼마간의 재산은 받을 수 있도록 제도화함으로써 남아 있는 가족들의 화합을 유도하는 셈이다.

유류분 제도는 경제적 약자 특히 여성의 보호에도 긍정적인 기능을 한다. 아직도 가부장적인 가정에서는 배우자나 딸, 혼외자들을 상속에서 제외하고 장남을 비롯한 아들에게만 재산을 물려주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유류분 제도 덕분에 딸이나 배우자도 재산을 상속받아 차별의 설움을 얼마간 떨쳐버릴 수 있게 되었다.

특히 고령화 사회에서는 남편이 사망할 무렵 자녀는 이미 장성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는 반면 홀로 남은 배우자는 나이는 많고 직업은 없어서 남은 생을 별다른 소득 없이 살아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상속에서 제외된다면 배우자는 경제적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는 재혼 가정에서 자주 발생하는 문제인데, 그때에도 배우자는 유류분 제도를 통하여 일정 정도의 상속재산을 확보함으로써 경제적 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

이러한 제도의 취지에도 불구하고, 실제 법정에서 접하는 모습은 안타까움 자체이다. 대개는 자신이 받은 것은 감추거나 받을만했다고 주장하고 상대방에게 간 재산은 어떻게든 부풀리려고 애쓴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기도 어려운 오래전 일들을 거론하며 날선 비방을 하고 상대방이 망인을 얼마나 홀대하였는지 증명하려 힘쓴다. 구태여 떠올리지 않아도 좋을 불쾌한 기억을 꺼내 곱씹으며 재판부에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한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요즘 같은 시절에 사랑스러운 자녀들에게 물려 줄 재산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그러나 평생을 바쳐 힘들게 모은 재산 때문에 사후에 가족이 다투고 송사까지 벌인다면 그것은 없느니만 못할 것이다. 가족 모두가 서운함을 느끼지 않도록 적절히 재산을 분배하는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