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년 전만해도 가끔씩 듣는 얘기였지만,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요즈음 가장 흔히 쓰는 말이 ‘대박’ 아닐까 싶다. 복권을 사면서 ‘대박’을 기대하고, 인사를 하면서도 ‘대박나라’말하고, 아이이름도 ‘대박’, 식당 간판도 ‘대박’, 드라마도 ‘대박’, 놀라서 하는 말도 ‘대∼박’. ‘대박’,‘대박’. 대박’들을 외쳐댄다.

그리 좋은 어감도 아니고 별다른 준비나 노력 없이 횡재했을 때 쓰는 말이 이렇듯 횡행하니 “부자되세요”는 그나마 얌전한 덕담이다.

말에도 생로병사가 있다니 어원이나 찾아볼 양으로 사전을 뒤적여 보았다. ‘대박: 1.바다에서 쓰는 큰 배 2.큰 물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란다.

바다에서 쓰는 큰 배는 한꺼번에 많은 물건을 싣고 들어오니, 언제나 가난했던 선조들에겐 큰 배가 들어오는 날이 여러 재물이며, 먹거리가 손에 들어오는 날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큰 배는 큰 물건과 함께 횡재하는 날의 일반적 표현으로 굳어진 표현이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흥보가 제비에게 베푼 선행으로 얻은 박을 터트려, 온갖 귀한 재물과 복을 얻었다는데서 유래해, 큰 박이 대박이 되었다는 설이다. 흥보가는 ‘박타령’으로 불릴 만큼 박타는 대목이 하이라이트이자, 당대의 명창들이 즐겨 불렀으니 이것이 널리 퍼져 오늘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크다

마지막으로 노름판에서 ‘박’은 여러 번 패를 잡고 물주노릇을 하는 일이나, 그렇게 해서 얻은 몫을 말하는데, 거기에 큰 대(大)자를 합쳐 크게 횡재한 돈이나 경우를 가르켜 대박이라고 했다는 설이다.

어원이야 어디서 유래했든 대박이란 자신의 노력이나 수고로 받을 수 있는 반대급부 이상의 금전적 물질적 보상이나, 우연한 기회에 얻는 횡재의 뜻이 담겨있다. 그러니 졸지에 돈벼락을 맞으라거나 불로소득을 얻기 바란다는 반 덕담이요, 행운을 비는 인사말이리라.

나 역시 가끔은 복권을 사, 일등을 꿈꾸며, 멋드러진 차에 전망 좋은 집을 갖고 싶다는 대박을 꿈꾸지 않는 건 아니지만, 아이나 어른이나, 선생이나 학생이나 대박만을 외쳐대니 이게 제대로 가는 판인지 우려스럽기만 하다.

사람은 누구나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누리려는 심리를 가지고 있다. 처음에는 복권 당첨을 꿈꾸다 경마, 경륜, 카지노 등 허가된 영역에서 점차 불법도박으로 빠지는 경우가 많고, 이는 뉴스에서 보던 일부 부유층과 연예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도박중독지수로 본 우리나라 도박유병율은 5.4%로 영국의 2.5%, 프랑스 1.3%에 비해 두 배 이상이며, 20세 이상 인구 중 200만명이 도박중독 유병자로 추정되고, 발달한 인터넷 환경으로 불법도박시장이 160조원에 이른다는 보도도 있다.

불안정한 미래, 과도한 경쟁과 긴장이 현실도피로 이어져 회사원, 주부와 학생들까지 도박에 빠져 갈등을 유발하고 가정파탄, 심지어 범죄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회가 복잡다단해지면서 개인주의, 한탕주의가 만연하고, 톡튀는 발상과 아이템으로 몇 년 만에 수백 수천억을 버는 세상이라지만, 하루 여덟 시간 꼬박 일하고 백만원 남짓한 급여를 받아 살아야 하는 노동자들이며, 이른 봄에 밭을 갈아 가을되어야 품값이라도 건질 수 있는 농업인들이 아직 많은 게 현실이다.

성실하게 일하고 자신이 일한 만큼 받고, 받은 몫을 아껴 쓰고 저축하며, 욕심 부리지 않고 가진 것에 만족하며 사는 이들마저, 너나없이 외쳐대는 대박열풍에 물들까 걱정이다.

그저 운 좋게 행운을 빈다는 의미로 하는 말인데, 무슨 시비냐 할 수도 있겠지만 온 나라가 ‘대박’, ‘대박’,‘대박’만을 꿈꾸고 소원한다면, 소는 누가 키우고 고향은 누가 지킬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