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선악의 구분이 없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다가 ‘칸트’ 이후 아름다운 것이 반드시 선한 것은 아니라는 진리를 깨달았다고 한다. 그 이후 아포리즘이 생겨났는지 모르겠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과 ‘개과천선(改過遷善)’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서로 상충되는 이것들. 이 말들의 함의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전자는 세 살이 되면 말이나 행동을 비롯한 여러 가지를 흉내 내곤 함으로써 습관을 만들고 그때 밴 습관은 어른이 되어서도 고치기 힘들다는 뜻이다. 개과천선은 사전적으로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고쳐 착하게 됨’으로 풀이되니 서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양자가 모두 삶의 단면을 꿰뚫는 명언으로서 쓰이고 있음을 보면 아이러니하다.

‘세 살 버릇’은 고치기 어렵다. 그와 같은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손발을 떨거나 손톱 물어뜯기 등의 육체적 습관은 의외로 오래 간다. 그리고 심리적 기제로서 아직도 왼손잡이와 남존여비에 대한 고정관념은 뜻밖에 많다. 게으름과 매너리즘, 그리고 비관적 시각과 위선도 사람의 무의식에 깊이 뿌리를 내리므로 결국 그 사람을 평가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따라서 사람들은 자신과 관계를 맺는 타자에 관심이 많고 특히 그 사람의 습관과 과거의 행동에 대해 궁금해 한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 사람이 권한을 갖고 자신을 통제하거나 지역경제를 맡아 살림살이를 쥐락펴락 하는 사람이라면 더 말해 무엇하랴.

지난 4월 국회의원을 뽑았다. 또 앞으로 1년 6개월 후에는 차기 대통령을 선출하고, 2년 후에는 지방선거를 통해 시·도지사와 시장·군수를 뽑을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선거 때만 되면 나타나는 이상한 징후를 포착해놓고도 늘 간과해왔다. 선거에 얼굴을 내미는 많은 사람이 ‘개과천선’을 한 것으로 치장해도 잠깐 술자리에서나 바람처럼 떠들고 말 뿐이었다. 전과가 있는 것은 지분을 바른다고 해도 곧 드러나게 마련이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때까지의 ‘세 살 버릇’을 화려한 언어적 수사(修辭)로 분칠하여 마치 개과천선이라도 한 것처럼 위장하고 있음에도 몇 마디의 말로 넘어가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은 대부분 진실하다. 자신의 인간성과 진정성을 감췄던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난 후 알려진 과거와 하나도 다를 게 없이 행동하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눈물을 닦아준다고 했던 사람이 오히려 더 많은 눈물을 흘리게 하고, 부드러운 표정과 언어로 언제나 관용할 것 같은 사람이 교만한 완벽주의자로 표변하는 걸 보면서 절망을 느낀다. 그만큼 개과천선은 이루기 어렵고 세 살 버릇은 고치기 힘들다. 개과천선은 상대의 생각과 말이 채찍보다 아프고 가시보다 고통스러울 때나 가능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환골탈태로 거듭 태어난 사람은 존경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마음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으면서 세 치 혀로만 달라졌다고 하는 사람들, 변명을 위한 변명을 길게 늘어놓으며 진정성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는 기대할 게 없다.

그럼에도 왜 그들을 선택하는 것일까. 화려한 스펙이 쉽고 익숙하기 때문이 아닐까. 표피적인 것으로부터, 달콤한 속삭임으로부터 벗어나 깊은 내면을 살펴보고 미래를 선택했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에는 세 살 버릇이 주는 고단함이 도처에 깔려 있다. 결코 개과천선하지 않았으면서 위장하고 부풀리고 나중 오만하기까지 한 그들에게 무엇을 바랄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위선은 끝까지 감출 수 없는 법이다. 임계점에 도달하면 어떤 방법으로든 드러날 수밖에 없다. 선택과 결정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는 일상이다. 마음속의 작은 결정으로부터 큰 결정에 이르기까지 ‘세 살 버릇이 주는 고단함’을 부단히 경계했으면 좋겠다. 언제나 장삼이사와 갑남을녀가 세상의 주인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