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가 각기 다른 널빤지를 세워서 둥글게 덧대 만든 물통이 있다면, 그 통이 담을 수 있는 물의 최대치는, 가장 높은 널빤지나 그들의 평균치 높이가 아니라, 가장 짧은 널빤지의 높이에 그친다. 불쑥 널빤지 물통 얘기를 꺼낸 것은 ‘가장 짧은 널빤지’에 관한 얘기를 하고 싶어서다.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장기(臟器)는 어디일까?

간, 심장, 폐….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곳이 있을까만, 그 중 약하거나 병들어 있는 곳이 가장 중요하게 부각된다. 사소해 보이는 곳이라도 일단 병들면, 정상적인 다른 장기도 그로 인해 제기능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 가족 중에서는 누가 중요할까?

아버지, 어머니, 장남…. 모두가 제 역할이 있겠지만, 몸져 누워있는 환자가 가장 중요하게 된다. 누군가 병들어 누워있으면, 가족들의 생활패턴은 그를 중심축으로 재편되기 때문이다. 서로 순번을 정해 환자의 머리를 감기거나, 병원에 동행하거나, 식사를 도와야 한다. 웬만큼 좋은 일이 생겨도 행복을 만끽하기 어려워진다.

조금 확대해서, 우리 사회나 국가에서는 어떤 사람이 가장 중요할까? 대통령, 외교관, 군인…?

병든 몸은 그 부분을 고쳐야 하고, 환자가 있는 가정은 그가 나아야 하듯이, 사회는 약하거나 소외된 사람들의 아픔이 치유될 수 있어야 건강하고 지속가능해진다. 그렇지 않으면, 무한경쟁을 통해 끊임없이 패배자를 소외시키고, 궁극에 가서는 최강자 혼자만 남게 됨으로써 사회는 결국 작동을 멈추게 될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느끼는 혼자만의 행복이 과연 무슨 의미일까?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대선 출마하기 전이던 2004년 7월 이렇게 연설한 적이 있다. “…문맹의 어떤 아이가 있다면, 비록 그 애가 우리 자식이 아니라 해도 그것은 우리의 문제입니다. 어떤 노인이 약값과 집세를 못내고 있다면, 그 노인이 우리 할머니가 아니라도 그로 인해 우리 삶은 더욱 가난해집니다…”

비통한 아픔을 겪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내 가족이 아니라도 우리는 그 아픔을 보듬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 각자의 행복 추구가 제로섬 게임이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나와 무관한 타인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공감하는 능력, 그것은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서 가진 본질적 특징 중의 하나임을 믿고 싶다.

주변의 고통에 아랑곳없이 혼자서만 돈을 벌거나 출세하려는 사람이 많아지는 세상, 그곳에 집단적인 사이코패스 성향이 잠재해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사이코패스는 ‘반사회적 심리장애’로서, 타인의 아픔이나 슬픔을 공감하지 못하고 자신만의 감정에 집착하여 질주하는 증상을 말한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히말라야 척박한 고지대인 라다크에서 원주민들과 오랫동안 생활한 후 ‘오래된 미래’에서 이렇게 썼다. “이곳 사람들은 자신과 이웃이 거대한 무엇인가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또 자신은 이웃이나 주변의 환경과 분리될 수 없는 연결 속에 존재한다고 믿는다.”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각기 개별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전체를 구성하는 일부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아픔이 아니더라도 타인의 불행에 함께 눈물 흘리며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공감은 가족을 넘어, 함께 살아가는 이웃과 사회구성원에게도 확장되어야 마땅하다. 우리 사회가 느끼는 행복의 총량은 각자가 느끼는 행복의 단순합산일 수는 없다. 널빤지 물통에서 물이 새어나가는 낮은 쪽 널빤지, 즉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사람들의 키를 끌어올려 그렇게 키워진 모든 널빤지들이 그 안에 함께 담아낼 수 있는 물의 양, 그것이 사회적 행복의 총량이 되어야 한다.

필자는 법정에서 수많은 사건들을 재판한다. 항상 공정한 시각으로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하려고 애쓰는 것은 당연하다. 거기에 한가지 더, 우리 사회의 아픈 부분을 치유하거나 끌어안지 않고서는 사회 전체의 건강을 기대할 수 없다는 생각에, 사회적 약자나 소외된 사람들의 편에 서서 한번 더 살펴보게 된다. ‘우리’는 함께 살면서 유대감을 나누는 존재이며, ‘우리 중의 그들’은 전체의 행복 수준을 규정하는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