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영석 농협경제지주 팀장] 아재인가? 꼰대인가?
2016년 09월 07일(수) 00:00 가가
이십 몇 년 전 내게도 신입이던 시절이 있었다. 사오십대 아저씨 십중팔구는 하얀 반소매셔츠에 곤색 바지를 입고다녔고, 옆구리에 노란 서류봉투를 끼고 다니는 분들은 물어보나마나 군청직원이거나 관계기관에 근무하는 분들이었다.
왜 저렇게 천편일률적인 복장들을 하시는지 멋이라곤 아예 부릴 생각도 없어 보이는 ‘아재’들은 퇴근 후면 이집 저집 맛 기행에, 술 마시는 재미에 사시는 분들 같았다. 그나마 또래 아재들끼리 드시면 좋으련만, 서너 차례에 한 번은 후배들을 불러내야 술맛이 나는 모양인지, 집에 가도 호출해내기 일쑤였다.
중간에 불려나간 내 귀에 같은 얘기가 반복될 즈음에는 젓가락 장단에 노래도 한 곡 뽑아줘야 했다.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우울어∼ ” 친구들은 카페와 볼링장을 넘나들며 데이트하는 시간에 야근하기도 서러운데 기쁨조 신세라니…. 생각하면 내가 한심한 건지, 그 분들이 한심한 건지 헷갈렸다.
세월이 흘러 나도 아재가 되어보니 그 분들 복장이며 취향이 그럴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흰 셔츠에 감색 바지는 무엇을 입을까, 어떤 색을 걸칠까 고민할 필요가 없는 요즘에도 통용되는 가장 무난한 복장이었다. 지금도 30대에 입던 주름바지를 입어야하는 내가, 유행이랍시고 노턱 스키니 진을 입고 집을 나섰다면, 어색해하다 못해 기어이 집에 다시 가 바지를 갈아입어야만 했을 것이다. 술자리에 새까만 후배를 불러 끼워주는 것도 그분들이 가진 후배에 대한 관심표현이었다는 것을 이십여 년이 지나서야 나는 깨달았다.
아재들 이야기가 개그소재가 되고 그 개그를 아재인 내가 봐도 참 촌스럽기만 한데, 내가 아재보다 ‘꼰대’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두어 달 전이었다.
갑자기 떨어진 행사준비로 서둘러 탔던 차량 조수석. 한눈에도 갓 입사한 것처럼 보이는 신입직원이 앉아있다. 통성명에 더해 서너 마디 인적사항을 묻는 질문이 끝나고 행사준비를 확인하고 나니, 갈 길은 먼데 별반 할 말도 없다. 취미나 사는 곳, 만나는 선후배를 물어봐도 공통분모는 없고,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게 10여 년 전부터 풀어먹던 어줍잖은 충고를 시작했다.
동료보다 10분만 먼저 출근해라, 청소·운전하시는 비정규직원들에게 잘 대해 주어야 한다, 주말에 놀고 평일 저녁시간은 업무나 자기개발에 힘쓰라는 등등…. 나름 후배에 대한 애정으로 시작한 충고였지만 어쩐지 싸늘해지는 공기. 듣는 신입 표정이 심드렁하다.
그제야 문득 스치는 생각. “이 한심한 꼰대야! 누가 물어봤어.”
설마 내가 꼰대였다니 그제서야 사내에서며 선·후배를 대하는 것, 집에서의 행동을 곰곰이 되새겨보니 역시 아재보다는 꼰대가 맞았다. 아이들에게는 내 생각이 언제나 맞는 것처럼 답을 정해놓고 강요하고, 따라오지 않으면 화를 내고, 자연히 대화는 끊기고 그 간극을 조정하지 못하는 아내는 더 멀어지고 서로 가슴에 상처만 남겼다.
선·후배 사이에서도 그리 다른 건 아니었다. 모임 한 번 하기에도, 내가 그렇게 배웠고 몇 십 년 동안 그래왔기에, 후배들은 장소를 물어봐서 정하는 건 물론, 선배가 오기 전 정좌해서, 찬과 수저를 놓고 물 컵에 물을 따른 후, 선배의 건배제의로 시작하고, 고기 굽는 건 후배가, 시식은 선배가 먼저 해야 하는 것이 내가 배운 예법이었다.
그러나 이제 세태가 변하고 그 예법의 시효는 불행히도 다음 세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모임이나 회식이 선배가 후배를 가르치고 시혜를 베푸는 자리가 아닌 서로 소통하고 격려하는 자리로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내가 그 시절에는 말이야” 따위의 얘기를 했다가는 싸늘한 주위의 시선은 고사하고 왕따를 면키 어려운 게 현실이다. 선배는 후배들을 칭찬하는 때에만 입을 열고, 나머지 시간에는 들어야 하는 게 달라진 시대상이니 어쩌랴. 그나마 이 정도에서 스스로 꼰대라는 걸 알았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무난한 인품과 빠지지 않는 실력, 나름의 경력과 스펙을 갖추고 적절히 상사나 선배, 부모역할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한다면 당신이야말로 꼰대일 가능성이 큰 사람이다. 자신만의 착각에 빠져 괜스레 으쓱대길 좋아하고 실무는 잘 모르면서 훈수를 두거나, 요청하지도 않은 충고를 해대는 맹점을 모르고 살기 쉽기 때문이다.
본전 생각이야 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다들 손해 보고 사는 게 인생이니 이쯤에서 꼰대라고 인정하고 사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자신이 꼰대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꼰대라면 최악은 면했으니 말이다.
왜 저렇게 천편일률적인 복장들을 하시는지 멋이라곤 아예 부릴 생각도 없어 보이는 ‘아재’들은 퇴근 후면 이집 저집 맛 기행에, 술 마시는 재미에 사시는 분들 같았다. 그나마 또래 아재들끼리 드시면 좋으련만, 서너 차례에 한 번은 후배들을 불러내야 술맛이 나는 모양인지, 집에 가도 호출해내기 일쑤였다.
세월이 흘러 나도 아재가 되어보니 그 분들 복장이며 취향이 그럴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흰 셔츠에 감색 바지는 무엇을 입을까, 어떤 색을 걸칠까 고민할 필요가 없는 요즘에도 통용되는 가장 무난한 복장이었다. 지금도 30대에 입던 주름바지를 입어야하는 내가, 유행이랍시고 노턱 스키니 진을 입고 집을 나섰다면, 어색해하다 못해 기어이 집에 다시 가 바지를 갈아입어야만 했을 것이다. 술자리에 새까만 후배를 불러 끼워주는 것도 그분들이 가진 후배에 대한 관심표현이었다는 것을 이십여 년이 지나서야 나는 깨달았다.
동료보다 10분만 먼저 출근해라, 청소·운전하시는 비정규직원들에게 잘 대해 주어야 한다, 주말에 놀고 평일 저녁시간은 업무나 자기개발에 힘쓰라는 등등…. 나름 후배에 대한 애정으로 시작한 충고였지만 어쩐지 싸늘해지는 공기. 듣는 신입 표정이 심드렁하다.
그제야 문득 스치는 생각. “이 한심한 꼰대야! 누가 물어봤어.”
설마 내가 꼰대였다니 그제서야 사내에서며 선·후배를 대하는 것, 집에서의 행동을 곰곰이 되새겨보니 역시 아재보다는 꼰대가 맞았다. 아이들에게는 내 생각이 언제나 맞는 것처럼 답을 정해놓고 강요하고, 따라오지 않으면 화를 내고, 자연히 대화는 끊기고 그 간극을 조정하지 못하는 아내는 더 멀어지고 서로 가슴에 상처만 남겼다.
선·후배 사이에서도 그리 다른 건 아니었다. 모임 한 번 하기에도, 내가 그렇게 배웠고 몇 십 년 동안 그래왔기에, 후배들은 장소를 물어봐서 정하는 건 물론, 선배가 오기 전 정좌해서, 찬과 수저를 놓고 물 컵에 물을 따른 후, 선배의 건배제의로 시작하고, 고기 굽는 건 후배가, 시식은 선배가 먼저 해야 하는 것이 내가 배운 예법이었다.
그러나 이제 세태가 변하고 그 예법의 시효는 불행히도 다음 세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모임이나 회식이 선배가 후배를 가르치고 시혜를 베푸는 자리가 아닌 서로 소통하고 격려하는 자리로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내가 그 시절에는 말이야” 따위의 얘기를 했다가는 싸늘한 주위의 시선은 고사하고 왕따를 면키 어려운 게 현실이다. 선배는 후배들을 칭찬하는 때에만 입을 열고, 나머지 시간에는 들어야 하는 게 달라진 시대상이니 어쩌랴. 그나마 이 정도에서 스스로 꼰대라는 걸 알았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무난한 인품과 빠지지 않는 실력, 나름의 경력과 스펙을 갖추고 적절히 상사나 선배, 부모역할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한다면 당신이야말로 꼰대일 가능성이 큰 사람이다. 자신만의 착각에 빠져 괜스레 으쓱대길 좋아하고 실무는 잘 모르면서 훈수를 두거나, 요청하지도 않은 충고를 해대는 맹점을 모르고 살기 쉽기 때문이다.
본전 생각이야 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다들 손해 보고 사는 게 인생이니 이쯤에서 꼰대라고 인정하고 사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자신이 꼰대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꼰대라면 최악은 면했으니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