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은 유난히 화려할 것 같다. 여름 내내 쏟아 부은 폭염 너머 숲에 호사스런 패션쇼가 막을 올릴 것 같다.

우리나라의 산은 돌을 깎아 세웠거나 아니면 돌을 다듬어 눕혀 놓은 돌 덩이리다. 가끔 외국에 가 보면 산이라고 하기보다는 언덕인데 푸석푸석한 흙으로 도톰히 덮여 있다. 경치로 말한다면 한국의 산이야말로 그것은 일품이다.

산마다 들어서면 우선 내음에 속된 티가 없다. 산길은 유연하고 토종 수목들이 빚어낸 풍경, 봉우리마다 솟아 있는 기묘한 바위가 주는 미감, 높고 맑은 가을 하늘을 보면서 경외감을 느낀다.

외국의 산보다 우리나라의 산이 이렇게 다르니 산의 수목도 다르다. 우리의 수목은 바위틈으로 뿌리를 내려야 한다. 그래서 찢기며 뻗는 피 말리는 착근이다. 그 뿌리로 서 있는 수목은 피를 먹고 자란다. 그래서인지 한국의 수목은 잎뿐만 아니라 줄기까지 피색을 한다.

우리나라의 단풍수목은 줄기도 뿌리도 실하지 못하다. 가지는 더욱 가냘프다. 그 가지가지에 달린 잎은 날카롭다. 어쩌면 칼끝 같다는 말이 맞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만지며 보는 외국의 단풍은 달랐다. 쭉쭉 뻗는 뿌리와 같이 나무들이 크다. 가지가 굵다. 충해에 몸부림친 흔적이 없다. 붉다 못해 타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은 그저 덤덤한 중간색을 했다. 잎의 모양도 그저 그렇거니 하며 찌든 삶을 사는 사람의 얼굴을 닮았다.

그래서 외국의 단풍은 관광을 해야 하고 우리나라의 단풍은 관상을 해야 한다. 관광은 멀리서 전체를 한 눈으로 보는 것이고, 관상은 가까이에서 하나하나를 부분적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그림으로 말하면 우리나라의 단풍은 여백이 많은 동양화이고, 외국의 단풍은 화폭을 가득 메운 짙은 서양화라고 해야할 것 같다. 서양화는 눈을 가득히 채워주고, 동양화는 생각을 가득히 남겨 준다.

나는 우리나라의 미가 곡선(線)이라는 말을 늘 해왔다.

한옥지붕 끝이 그렇고 여성들의 옷고름이 그렇다. 치마 자락이 그렇고 선비들이 치는 난(蘭)이며 대(竹)를 치는 것도 모두가 선이다. 가을 단풍까지도 그 미는 선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나라 전 강토는 굽이굽이 아름다운 곡선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문화를 “곡선의 문화”라고 한다면 누가 그것을 지나친 예술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문화란 한 공간 속에서 오랜 세월 가꾸어진 특성으로 그것은 민족의 특유한 성격이다. ‘선’은 선명하다. 그것은 지(智)다. 선은 가냘프다. 그것은 정(情)이다. 선은 방향을 갖는다. 그것은 의(意)다. 선은 음악을 낳는다. 그것은 선율이고 화음이다. 역사도 선이다.

역사는 반드시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그 시작은 ‘에덴’이며 끝은 ‘새 예루살렘’이다. 새 예루살렘이라 함은 인간구원의 완성상태의 상징이며 인간구원이라 함은 육(肉)적이고 영(靈)적이고 심(心)적이며 물(物)적이며 시간적이고 연원한 것, 전인적인 것이다.

올해 희수를 맞는 나는 단풍의 나라에서 태어나 해마다 단풍을 보아 왔는데 만엽을 달고 올 긴긴 여름 폭서를 이겨낸 투지, 이제는 훨훨 털고 가려운 데 하나 없는 섣달의 수목으로 일전(一戰)을 준비하고 있을 것만 같다. 올해 따라 곱게 필 한 잎 단풍을 생각하며 “선의 문화”를 되뇌며 이렇게 센티멘탈(Sentimental) 해지는 것은 왜일까?

아마도 내 마음 구석구석에 삼천리 금수강산을 사랑하는 마음과 그리움, 분단되어 동토가 된 금강산의 단풍을 볼 수 없는 통분함이 낙엽같이 쌓여 지는 탓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나의 인생길이 어느새 만추의 풍경을 닮은 까닭도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