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원 성균관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나는 기억하고 너는 재생한다
2016년 10월 11일(화) 00:00 가가
‘기억’이라는 말이 있다. 컴퓨터가 ‘똑똑하다’는 말을 듣는 것은 아마도 애당초 그 이름을 얻게 된 연산 능력에도 있겠지만, 엄청난 양의 기억거리(memory)를 집어삼키는 ‘저장 처리 능력’도 한몫을 할 게다.
간혹 들려오는 말 가운데 여자들의 초인적인 기억력 때문에 남자들이 못 살겠단다. 자기는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데, 여자는 무슨 기억력이 그리도 좋은지, 꼬투리 잡혀 말싸움이라도 시작되면 도저히 당해 낼 수 없단다. 여느 집 부부싸움의 이야기에서 단골처럼 등장하는 메뉴이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는가? 심리 분석가들은 기억의 또 다른 한편에 ‘왜곡된 기억의 함정’이라는 다소 으스스한 경고문을 붙이기도 한다. 나는 내 기억의 장면들을 얼마나 왜곡되게 저장하고 있을까? 얼마나 많은 밑간을 하고 주관의 양념들을 함께 버무렸을까?
지금을 느끼는 그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기억의 먹거리가 된다. 이 먹거리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그리움과 아쉬움으로 빚어진 종기에 담겨 추억의 밥상에 차려진다. 추억을 담은 국그릇을 휘저으면서 구수한 냉이 된장국 냄새도 킁킁거리고, 입안에서 아련하게 퍼지는 향기와 함께 알싸하게 씹히는 달래 맛도 곱씹어 본다.
우리가 가슴 어느 한구석에선가 차곡차곡 쌓아 둔 지난 것들을 다시 끄집어내는 말로는 기억도 있고 추억도 있고, 또 회상도 있다. 세 낱말을 줄 세워 놓고 하나씩 음미해 보니, 같은 듯하지만 같지 않은 다름이 담겨 있다.
추억은 회상 거리가 되지만 기억은 회상 거리가 되지 못한다. 사전을 뒤적거리지 않고도 굳이 기억과 추억의 뜻을 나누어 보라면, 기억은 요리되지 않은 재료들이고, 그 재료들이 손맛으로 버무려지고, 삭혀지기도, 익혀지기도 하는 가운데 우러나는 맛을 담으면 추억이 된다. 그 추억에서 배어 나오는 은은한 향과 색은 회상의 몫이다.
기억의 재료는 신선할 수도 있고, 말라비틀어진 것도, 그리고 손길도 닿지 않은 채 내동댕이쳐진 것도 있어, 나쁠 수도 좋을 수도 있지만, 기억들이 곱씹히며 나쁘건 좋건 손길이 지나간 흔적을 담은 추억은 짜고 매울 수도 있고, 달콤하기도 또는 쓰디쓴 맛이 스며든 것일 수도 있다. ‘나쁜 기억’은 있어도 ‘나쁜 추억’이라는 말은 그래서 썩 내키지 않는다. 그리고 ‘나쁜 회상’이란 말은 아예 없다.
가수 이소라가 노랫말을 쓴 ‘바람이 분다’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 같은 기억의 경험을 해도 그대는 내가 아니고 서로의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디지털 시대를 관통하는 첨단 기술은 사람을 꼭 빼닮은 로봇을 추구한다. 단순히 모양만 닮은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모든 것을 똑같이 해 낼 수 있는 그런 로봇을 추구한다. 그리고 또 다른 저편에서는 로봇의 기능을 할 수 있는 인체, 즉 로봇으로 완벽하게 변신한 인체를 원한다. 사람은 자꾸 로봇이 되려 하고(인간의 기계화), 로봇은 자꾸 인간이 되려 한다.(기계의 인간화) 그런데 이 두 방향의 노력은 안타깝게도 하나의 접점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평행선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내 몸이 가지고 있는 뼈와 살과 세포들이 변변하지 못해서 하나둘씩 야금야금 튼튼하고 변질되지 않는 기계로 대체해 가던 그 어느 시점에서 나는 완벽한 기계로봇인 me-로봇이 되고, 다른 저편에서는 기계로 태어나서 그 부품 하나하나가 뼈가 되고 살이 되고 세포가 되어 울먹이며 피 흘리는 i-로봇이 된다 한들 우리는 하나가 되어 같은 추억을 만들 수 없다.
기억의 왜곡은 인간들을 ‘똑똑지 못한’ 미물로 전락시키고, 왜곡은커녕 한 치의 오류도 허락하지 않는 로봇(에 탑재된 인공지능)의 기억 능력은 신의 경지를 넘본다. 그렇지만 그것이 정말 기억이라는 것일까? 그저 완벽한 재생이나 재현만을 위해 기억의 이름으로 저장된 코드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그것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디지털 재생의 도돌이표만을 맴도는, 그래서 추억의 맛을 낼 수도, 회상의 색을 입힐 수도 없는 그런 재생의 조각들.
내 몸에 흐르던 피와 멈추지 않던 생각이 버무려져 왜곡의 촌극을 빚어내는 기억의 엉뚱함도, 손맛 어린 추억의 아련함도 모른 채 회상의 향기도 색깔도 낼 수 없는 너는 재생만을 되풀이할 뿐이야, 나는 기억하는 것을!
간혹 들려오는 말 가운데 여자들의 초인적인 기억력 때문에 남자들이 못 살겠단다. 자기는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데, 여자는 무슨 기억력이 그리도 좋은지, 꼬투리 잡혀 말싸움이라도 시작되면 도저히 당해 낼 수 없단다. 여느 집 부부싸움의 이야기에서 단골처럼 등장하는 메뉴이다.
지금을 느끼는 그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기억의 먹거리가 된다. 이 먹거리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그리움과 아쉬움으로 빚어진 종기에 담겨 추억의 밥상에 차려진다. 추억을 담은 국그릇을 휘저으면서 구수한 냉이 된장국 냄새도 킁킁거리고, 입안에서 아련하게 퍼지는 향기와 함께 알싸하게 씹히는 달래 맛도 곱씹어 본다.
추억은 회상 거리가 되지만 기억은 회상 거리가 되지 못한다. 사전을 뒤적거리지 않고도 굳이 기억과 추억의 뜻을 나누어 보라면, 기억은 요리되지 않은 재료들이고, 그 재료들이 손맛으로 버무려지고, 삭혀지기도, 익혀지기도 하는 가운데 우러나는 맛을 담으면 추억이 된다. 그 추억에서 배어 나오는 은은한 향과 색은 회상의 몫이다.
가수 이소라가 노랫말을 쓴 ‘바람이 분다’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 같은 기억의 경험을 해도 그대는 내가 아니고 서로의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디지털 시대를 관통하는 첨단 기술은 사람을 꼭 빼닮은 로봇을 추구한다. 단순히 모양만 닮은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모든 것을 똑같이 해 낼 수 있는 그런 로봇을 추구한다. 그리고 또 다른 저편에서는 로봇의 기능을 할 수 있는 인체, 즉 로봇으로 완벽하게 변신한 인체를 원한다. 사람은 자꾸 로봇이 되려 하고(인간의 기계화), 로봇은 자꾸 인간이 되려 한다.(기계의 인간화) 그런데 이 두 방향의 노력은 안타깝게도 하나의 접점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평행선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내 몸이 가지고 있는 뼈와 살과 세포들이 변변하지 못해서 하나둘씩 야금야금 튼튼하고 변질되지 않는 기계로 대체해 가던 그 어느 시점에서 나는 완벽한 기계로봇인 me-로봇이 되고, 다른 저편에서는 기계로 태어나서 그 부품 하나하나가 뼈가 되고 살이 되고 세포가 되어 울먹이며 피 흘리는 i-로봇이 된다 한들 우리는 하나가 되어 같은 추억을 만들 수 없다.
기억의 왜곡은 인간들을 ‘똑똑지 못한’ 미물로 전락시키고, 왜곡은커녕 한 치의 오류도 허락하지 않는 로봇(에 탑재된 인공지능)의 기억 능력은 신의 경지를 넘본다. 그렇지만 그것이 정말 기억이라는 것일까? 그저 완벽한 재생이나 재현만을 위해 기억의 이름으로 저장된 코드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그것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디지털 재생의 도돌이표만을 맴도는, 그래서 추억의 맛을 낼 수도, 회상의 색을 입힐 수도 없는 그런 재생의 조각들.
내 몸에 흐르던 피와 멈추지 않던 생각이 버무려져 왜곡의 촌극을 빚어내는 기억의 엉뚱함도, 손맛 어린 추억의 아련함도 모른 채 회상의 향기도 색깔도 낼 수 없는 너는 재생만을 되풀이할 뿐이야, 나는 기억하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