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티벳에서의 7년’이라는 영화를 본적이 있습니다. 영화에서 티벳의 승려들이 황·백·적·흑·청 등 아름다운 색체의 모래로 만다라를 완성해갑니다. 오랜 시간동안 정성들여 만든 만다라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영화 속의 완성된 만다라는 황홀할 만큼 아름다운 색채와 적당한 크기의 위용을 자랑했고 만다라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만다라를 완성하고는 한 순간에 손으로 쓱쓱 문지르면서 없애버립니다. 저는 그 상황을 보면서 ‘이렇게 한 순간에 없애버릴 만다라를 왜 그렇게 정성스럽게 만들었을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만다라는 진리의 세계를 표현한 것입니다. 만다라는 뜻이 본질을 의미합니다. 대체로 사각의 틀 안에 원으로 표현됩니다. 곧 부처님의 세계가 만다라인 것입니다. 어렵게 만다라를 만드는 그 과정에서 부처님을 만났습니다. 이미 완성된 만다라는 더 이상의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부처님을 만났다는 상만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만다라를 지우는 것입니다.

또 그 영화를 보면 티벳의 사람들이 오두막집 한 채를 짓는데 몇 년이 걸립니다. 삽 한 삽 뜨면 거기에 지렁이들을 손으로 다 집어냅니다. 또 지렁이가 있는가 없는가를 살피고 없으면 조심해서 한 삽을 뜹니다. 그리고 집어낸 지렁이들은 안전한 장소로 대피시켜 줍니다.

이것을 본 서양인이 묻습니다. “아니 그렇게 해서 언제 집을 짓습니까?” 물어보니 티벳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목적이 아니겠습니까?” 하면서 반문을 합니다. 생명을 구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냐? 집을 짓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냐는 반문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하나의 만다라를 만드는 과정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만다라를 완성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다라를 만드는 그 과정 하나하나가 인생입니다. 완성된 만다라를 지우는 작업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죽음입니다. 열반입니다. 완성된 만다라는 공을 의미합니다. 만다라의 아름다움이 바로 공입니다. 그러므로 이 아름다운 만다라에 집착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가 죽음을 맞이하면 육신은 화장을 하거나 매장을 해야 합니다. 만다라의 화려한 존재성이 본질이 아니고 그것을 만드는 인내가 바로 만다라의 본질인 것입니다. 또한 그 과정 과정이 바로 부처를 만나고 내 자신이 부처를 이루는 과정입니다. 우리 인생 역시 고통과 인내로 인해 행복의 꽃이 만들어 지는 것이 인생의 과정입니다. 내 모습을 고요히 비춰보면 결과만 보고 과정을 무시하는 나의 허물이 보입니다. 또한 행복은 좋아하고 고통과 인내는 싫어하는 나의 과오가 보입니다.

저 자연을 보세요. 봄, 여름에 새 싹을 돋고 꽃을 피우고 가을엔 열매를 맺고 겨울엔 그 잎과 열매를 다 떨구고 나무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갑니다. 만다라를 지우듯 말입니다. 또한 가을의 나무들은 몸 안의 수분을 다 배출합니다. 추운 겨울에 몸 안에 수분이 많으면 얼어 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을 계곡의 물은 더욱 더 맑습니다. 우리네 인생 역시 버리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욕심을 버리고 그동안 바라보지 못했던 부분들에 대해서 생각하며 내가 사람으로 살아가는 목적에 대하여 정리해여야 합니다.

우리들이 살면서 편리하게 살도록 도와주는 물질은 우리가 잠시 쓰고 가는 것이지 인생의 목적이 아닙니다. 소유했어도 가지고 있다는 상이 없어야 하고 마음이 거기에 묶이지 아니해야 자유스러움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상처가 많은 나무가 아름다운 무늬를 남기듯, 목적을 버려야 목적에 도달 할 수 있습니다. 허공 같은 마음으로 이 가을에 예수님의 마음이 되어보시고 부처님의 마음으로 축복받는 가을되시기를 심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