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이 “서리 맞은 잎새가 이월 꽃보다 더 붉다(霜葉紅於二月花)”고 노래한 바와 같이 온 천지가 꽃보다 아름다운 단풍으로 물들어 있다. 그런데 맑고 더 높아야 할 이 찬란한 계절, 가을 하늘이 잿빛으로 얼룩져 있다. 2016년 11월의 가을 하늘이 유난히 가을답지 못한 것은 중국발 미세먼지의 영향도 있겠지만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우리를 너무나 슬프게 하고 못마땅하게 하는 데에서 오는 심리적 영향도 있을 것이다.

먼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수 있는 예상 자녀 수를 가리키는 합계 출산율이 우리나라가 세계 184위로 꼴찌에서 4번째라고 한다. 국회 입법조사처의 발표에 따르면 2013년 수준인 1.19명의 출산율이 지속될 경우 우리나라는 2750년에 인구가 소멸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저출산의 원인을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결혼관의 변화에 있다. 2016년 통계청의 사회조사 결과보고에 의하면 만 13세 이상의 38,6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결혼을 꼭 해야 한다고 답한 비율은 51.9%였다고 한다. 약 절반이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결혼을 하지 않으면 아이를 낳을 수 없지만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아이를 낳아서 기르고 교육시키는 일이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출산은 백해무익이다’, ‘출산은 도박이다’, ‘아이 낳으라는 건 욕이다’라는 말까지 나돈다. 더 끔찍한 유행어는 ‘맘충’이다. 이는 엄마를 뜻하는 ‘맘’과 벌레를 뜻하는 ‘충(?)’의 합성어로, 아이를 가진 것만으로도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지시한다. 이 땅의 젊은이들로 하여금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삼포세대’가 되게 한 서글픈 현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또 하나, 스승의 날 선생님에게 카네이션 꽃을 달아 드리는 것도 이른바 김영란법에 위반된다는 국민권익위원회의 유권해석이 우리를 몹시 슬프게 한다. 인간 위에 법이 있는가, 법 위에 인간이 있는가?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이 있으니 이는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바일 것이다. 2014년 ‘정윤회 국정 개입 의혹’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실 박관천 행정관은 청와대의 권력지형에 대하여 “최순실 씨가 1위이고 정윤회 씨가 2위이며 박근혜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고 말한 바 있는데 그때는 이 말을 믿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이 말의 진실성이 확인되고 있다.

미르재단 전 사무총장 이성한 씨는 “최순실 씨는 논현동 사무실에서 각계의 다양한 전문가를 만나 대통령의 향후 스케줄이나 국가적 정책 사안을 논의했다. 책상 위에는 항상 30cm가량 두께의 ‘대통령 보고 자료’가 놓여 있었다”라 말했다고 하니 최 씨의 국정 개입 정도를 알 만하다. 11월 20일에 발표된 검찰의 공소장에도 47건의 청와대 기밀 자료가 최 씨에게 유출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이쯤 되면 ‘진짜 대통령은 최순실이다’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도대체 최순실은 무엇인가? 그녀는 어떤 보이지 않는 마력을 가지고 박대통령을 조종한 것일까? 최순실이 대단한 것인지, 박대통령이 좀 모자란 것인지…. 최순실과 그 일당들이 대통령을 등에 업고 저지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비리가 끝도 없이 밝혀지고 있다. 일본 사람들이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를 ‘막장 한류 드라마’라 비웃어도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운 국민들의 분노에 찬 함성과 9천 명이 넘는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 그리고 5%를 밑도는 지지율에도 ‘흔들리지 않고’ 버티는 박근혜 대통령은 무얼 믿고 있는 것일까? 무속인, 승려, 목사를 거친 사이비 종교인 최태민 일가와의 끈질긴 인연이 연출한 박근혜 정권의 처참한 현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가을은 아름답기에 짧은 것이지만 이번 가을은 유난히 짧아서 눈 한 번 맞춰보지 못하고 훌쩍 떠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