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원 성균관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글짓기’와 ‘지은 죄’
2016년 12월 06일(화) 00:00 가가
어릴 적 어린이날 기념 사생대회라든가 한글날 기념 글짓기 대회 같은 것을 명목으로 학교가 아닌 궁궐이나 능을 찾아 그곳에서 그림도 그리고 글도 지으면서 하루를 보낸 기억을 떠올리다가 문득 왜 하필 ‘글쓰기’가 아닌 ‘글짓기’ 대회라 했을까 생각해 본다. 기일에 맞추어 내보내야 하는 글을 앞에 두고 끙끙거리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방으로 글거리를 찾아 뛰쳐나간 꼴이 되는 것 같아서, ‘글짓기’에 생각을 잡아 놓고 숨고르기를 해 보니 글만이 아니라 우리 의식주에 해당하는 것들은 몽땅 ‘짓는 것’이라는 발견 아닌 발견을 한다.
‘∼을 짓다’에는 단순히 ‘∼을 하다’와는 달리 무척이나 진안한 과정들이 온전히 녹아들어 있다. 부뚜막 아궁이 군불 지펴 가며, 혹은 연탄불 갈아 가면서 지어 먹던 밥은 그냥 하는 밥이 아니다. 낟알 한 톨도 알뜰히 쓸어 담아 도정한 쌀을 불리고 회오리치는 조리질로, 섞여 든 돌 골라내어 쌀뜨물 우러날 때 밥솥에 안친다. 센불 약불 조절해 가면서 밥물 끓는 냄새가 김에 서려 배어 나오면 서두르지 않고 뜸을 들여 뽀얀 밥 한 그릇 지어 올렸다.
해 질 무렵 어스름 내리면 알지 못할 불안감에 쫓기듯 종종걸음으로 들어선 골목길에서는 집집마다 밥 짓는 냄새가 “어서 와서 밥 먹자”라는 엄마 목소리처럼 들리고, 그렇게 담벼락 끼고 도는 골목마다에는 여느 집 부뚜막 묵직한 솥뚜껑 사이로 밥알 익어가며 들썩이던 저녁 향기 그득했었다.
집을 짓는 것은 또 어땠을까. 집터를 다듬고 땅을 골라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워 벽을 쌓아 한 식구 품어 줄 방에 구들장 놓고, 쪽마루 한 칸 여유를 두어 지붕을 얹으면 어찌어찌 모양새 갖춘 집이 한 채 지어진다. 뜨신 아랫목이 있고 창호지 바른 문이 있어 좁디좁은 집구석에서 온 가족이 살 부딪치며 복닥복닥, 간혹 형제들끼리 치고받고 그렇게 아이들이 자라고 살림살이가 늘어가면서, 사람 냄새 겹겹이 배어든 집은 우리가 살아 온 시간을 온전히 담아냈다.
아직 기성복이라는 말이 낯설던 그 시절, 어머님들은 천을 끊어 와 재단을 하고, 흐릿한 불빛 아래서 재봉틀 바늘에 실을 꿰어 들들거리는 소리 장단 맞추면, 노루발 아래로 양쪽 맞물린 천들이 행진하듯 비집고 나온다. 비죽비죽 밀려 나오는 천들을 낚아채어 무릎 위에 놓고 돋보기 얹은 눈, 손놀림 바쁜 ‘마무새’(마무리)로 옷 한 벌이 지어졌다.
옷도 지어 입고 밥도 지어 먹고 살았던 그 시절이 ‘가난’의 아이콘이 되어 버린 지금, 우리는 옷도 짓지 않고 밥도 짓지 않는다. ‘밥하기’는 전기밥솥 버튼 하나 누르기와 같은 말이 되었고, 그마저도 사 먹는 밥이 대세가 되어 간다. 잘 만들어진 옷도 한 벌 사 오면 그만이라, ‘짓던 것’은 ‘만드는 것’이 되고 ‘하는 것’이 되더니 이제는 그조차도 그냥 ‘사오는 것’이면 된다. 그렇게 지어지던 것들은 점차 사라지고, ‘만드는 사람’과 ‘사는 사람’들이 따로따로 남게 되면서 짓는 정성과 거기 배어 든 마음도 자리를 잃었다.
그런데 먹고 자고 입는 것만큼 절실하게 삶을 가르는 것도 아닌 글이 이렇게 ‘짓는’ 것에 한몫을 하고 있다. 게다가 세상 좋아져 밥조차도 사오면 그만으로 등 돌린 지금에도, 함부로 내뱉어지는 말은 있어도 아무렇게나 싸질러 놓는 강아지 똥처럼 글을 짓지는 않는다.
먹고 자고 입는 것들이 저잣거리로 나앉았어도 ‘짓는 정성’을 오롯이 지켜가는 것이 글이라는 생각에 우쭐하던 것도 잠시, ‘짓다’와 동행권을 가진 녀석 하나가 번드르르한 낯짝을 들이밀며 의기양양 달려가던 생각을 잡아 세운다. 그건 바로 ‘죄’다. 때로는 심심한 돌멩이 하나가, 때로는 제법 묵직한 바윗돌 같은 것들이 알게 모르게 얹어지고 쌓여 가듯이 그렇게 죄가 지어진다. 그리고 사람들은 ‘죄를 짓지 말고 살라’고 한다. ‘글짓기’로 으쓱했던 어깨는 힘없이 내려앉고 순간 환하던 불빛이 사라진 어두움 속에서 구차한 변명들이 꿈틀거린다.
‘죄 하다’라는 말이 좀처럼 세간에 오르내리지 않는 것을 보면, ‘죄를 짓는’ 것은 그렇게 한순간 가볍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긴 시간 알게 모르게 차근차근 다져지고 준비된 행위와 의도를 모두 담고 있다는 말일 게다. 그래서 ‘지은 죄’의 모양새인 ‘죄상’을 보려면 숨은 고리들이 겹겹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그 안이 낱낱이 파헤쳐져야 하는가 보다. 어제와 내일 사이에서 오늘을 살면서, 그 삶이 엮여지는 시간 안에 또 얼마나 많은 죄를 함께 짓고 있는지, 한 번쯤 묻고 가야 할 것 같다.
집을 짓는 것은 또 어땠을까. 집터를 다듬고 땅을 골라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워 벽을 쌓아 한 식구 품어 줄 방에 구들장 놓고, 쪽마루 한 칸 여유를 두어 지붕을 얹으면 어찌어찌 모양새 갖춘 집이 한 채 지어진다. 뜨신 아랫목이 있고 창호지 바른 문이 있어 좁디좁은 집구석에서 온 가족이 살 부딪치며 복닥복닥, 간혹 형제들끼리 치고받고 그렇게 아이들이 자라고 살림살이가 늘어가면서, 사람 냄새 겹겹이 배어든 집은 우리가 살아 온 시간을 온전히 담아냈다.
옷도 지어 입고 밥도 지어 먹고 살았던 그 시절이 ‘가난’의 아이콘이 되어 버린 지금, 우리는 옷도 짓지 않고 밥도 짓지 않는다. ‘밥하기’는 전기밥솥 버튼 하나 누르기와 같은 말이 되었고, 그마저도 사 먹는 밥이 대세가 되어 간다. 잘 만들어진 옷도 한 벌 사 오면 그만이라, ‘짓던 것’은 ‘만드는 것’이 되고 ‘하는 것’이 되더니 이제는 그조차도 그냥 ‘사오는 것’이면 된다. 그렇게 지어지던 것들은 점차 사라지고, ‘만드는 사람’과 ‘사는 사람’들이 따로따로 남게 되면서 짓는 정성과 거기 배어 든 마음도 자리를 잃었다.
그런데 먹고 자고 입는 것만큼 절실하게 삶을 가르는 것도 아닌 글이 이렇게 ‘짓는’ 것에 한몫을 하고 있다. 게다가 세상 좋아져 밥조차도 사오면 그만으로 등 돌린 지금에도, 함부로 내뱉어지는 말은 있어도 아무렇게나 싸질러 놓는 강아지 똥처럼 글을 짓지는 않는다.
먹고 자고 입는 것들이 저잣거리로 나앉았어도 ‘짓는 정성’을 오롯이 지켜가는 것이 글이라는 생각에 우쭐하던 것도 잠시, ‘짓다’와 동행권을 가진 녀석 하나가 번드르르한 낯짝을 들이밀며 의기양양 달려가던 생각을 잡아 세운다. 그건 바로 ‘죄’다. 때로는 심심한 돌멩이 하나가, 때로는 제법 묵직한 바윗돌 같은 것들이 알게 모르게 얹어지고 쌓여 가듯이 그렇게 죄가 지어진다. 그리고 사람들은 ‘죄를 짓지 말고 살라’고 한다. ‘글짓기’로 으쓱했던 어깨는 힘없이 내려앉고 순간 환하던 불빛이 사라진 어두움 속에서 구차한 변명들이 꿈틀거린다.
‘죄 하다’라는 말이 좀처럼 세간에 오르내리지 않는 것을 보면, ‘죄를 짓는’ 것은 그렇게 한순간 가볍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긴 시간 알게 모르게 차근차근 다져지고 준비된 행위와 의도를 모두 담고 있다는 말일 게다. 그래서 ‘지은 죄’의 모양새인 ‘죄상’을 보려면 숨은 고리들이 겹겹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그 안이 낱낱이 파헤쳐져야 하는가 보다. 어제와 내일 사이에서 오늘을 살면서, 그 삶이 엮여지는 시간 안에 또 얼마나 많은 죄를 함께 짓고 있는지, 한 번쯤 묻고 가야 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