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나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영화평론가]현실과 영화 사이, ‘광장 예술’의 희망
2016년 12월 20일(화) 00:00 가가
“어쩌면 좋아요, 현실이 영화보다 더 재미있으니…” 요즘 필자가 자주 듣는 안부 인사다. 뉴스에도 영화와 현실을 비교하는 문구가 단골로 등장한다. 국정 난국 사태를 다루는 기사에 ‘영화를 초월한 현실’, ‘영화보다 더한 막장’ 같은 표현이 난무한다. 영화적 상상력 이상으로 펼쳐지는 충격적 현실에 ‘막장 드라마’ 꼬리표를 붙인 셈이다. ‘막장’은 탄광의 갱도 끝 작업장이라는데 말은 같아도, ‘막장 드라마’란 상식 이하 요소들을 ‘막’ 산포하는 억지스러운 드라마를 칭하는 표현처럼 보인다.
뉴스와 아날로그 광장을 오가며 펼쳐지는 일상과 역사의 만남은 문화예술과 그 통로인 미디어업계 풍경을 바꿔 놓았다. 2016년 말, 영화 관객 수가 급감하는 가운데 열린 영화 포럼에서 “영화보다는 뉴스, 극장보다는 광장에 가니 (극장 매출) 성적이 안 좋다”라는 영화업 종사자의 진단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후기 정보사회 뉴미디어로 지속적 성장을 해 왔던 IPTV의 주문형 비디오(VOD) 매출도 지난 2∼3개월 사이 감소했다. 시청자들이 영화보다 뉴스 보기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매일, 아니 하루에도 수차례 속보가 터져 나오는 충격적이고 아픈 현실 에너지가 주말 ‘광장 예술’로 만발하고 있다.
2015년 말 ‘내부자들’은 영화 세상과 현실 세상의 교집합을 보여 줘 커다란 흥행 성적을 거두었다. 그런데 2016년 말에 이르러 ‘내부자들’은 오히려 (부패한) ‘현실 미화’ 영화라는 네티즌들의 재평가도 퍼져나가고 있다. 이 영화의 명대사로 꼽히는 언론사 논설주간의 “민중은 개·돼지입니다”란 말이 현실 세상에서, 바로 교육부 관료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사건도 발생했다. 영화와 현실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하나로 연결되어 돌아가는 현실 영화판이다.
하여 그 후속작을 구상했던 우민호 감독은 그 기회를 접었다. “이번 사태 전까지 같은 배우들을 데리고 ‘내부자들2’를 다시 한 번 할까 했는데, 못 만들 것 같다. 이것보다 어떻게 더 잘 만들 수 있겠나. 만들 수 있는 감독이 없을 것”이라고 하면서. 까도 까도 나오는 갈등 요소들을 전략적으로 잘 배치하고, 캐릭터도 더 매력적으로 손본다면 굳이 ‘내부자들’ 시리즈가 아니더라도, 한국 영화는 풍부한 정치 스릴러 소재들을 선물로 받은 셈이다.
원전발전소 재난을 다룬 최근 개봉작 ‘판도라’에 출연한 정진영은 영화와 현실을 비교하며 “흥행에서 조금 손해 보더라도 이번 기회에 나라가 제대로 서는 그런 시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하기도 한다. 상자가 열려 온갖 불행이 쏟아져 나오지만 거기에 담겨 있던 희망도 나오는 것이 바로 판도라 상자의 힘이니까.
현실과 영화의 역동적 관계는 역사와 영화사에서도 잘 드러난다. 히틀러의 강력한 ‘영화 정치’ 공세에 밀리지 않으려고 무솔리니는 이탈리아 영화연합을 결성하고, 1932년에 세계 최초 국제영화제 베니스영화제를 창설했다. 이어 1937년, ‘영화 도시’란 이름을 붙인 거대한 종합 촬영장 ‘치네치타’가 건설됐다. 로맨스 판타지로 대중을 홀린 멜로드라마 ‘백색전화 영화’가 그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전쟁으로 치네치타 역시 난국에 처하자 영화 청년들은 쓰다 버린 필름과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간다. 현실과 영화가 함께 돌아가는 새로운 사실주의 영화, ‘네오 리얼리즘’이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그 선구작으로 꼽히는 ‘강박관념’(1943, 루키노 비스콘티)은 상투적 로맨스 판타지를 전복시키며, 부익부 빈익빈 현실의 부조리를 폭로해 낸다.
영화 세상을 통해 아픈 현실을 살아 낼 예술의 힘을 보여주는 이런 정신은 켄 로치의 칸영화제 대상 수상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이어진다. “국가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던지는 이 작품은 sns 시대답게 세계적 공명을 불러일으키며 한국 극장으로 날아온다. 목수로 살아온 중년의 다니엘이 지병으로 일을 못 하게 되자, 실직수당을 받으려고 고군분투하며 체험하는 관료제도의 반인간적 얼굴은 한국 광장에서도 제보된다. 퍼즐과 같은 국가에 살며,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기에, 국민 의견에 귀 기울여주는 정치인이 바른 자리에 위치해야 국가가 완성된다”는 한 청소년의 외침은 영국의 목수와 공명하는 이곳에서 열린 판도라 상자의 희망이다.
원전발전소 재난을 다룬 최근 개봉작 ‘판도라’에 출연한 정진영은 영화와 현실을 비교하며 “흥행에서 조금 손해 보더라도 이번 기회에 나라가 제대로 서는 그런 시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하기도 한다. 상자가 열려 온갖 불행이 쏟아져 나오지만 거기에 담겨 있던 희망도 나오는 것이 바로 판도라 상자의 힘이니까.
현실과 영화의 역동적 관계는 역사와 영화사에서도 잘 드러난다. 히틀러의 강력한 ‘영화 정치’ 공세에 밀리지 않으려고 무솔리니는 이탈리아 영화연합을 결성하고, 1932년에 세계 최초 국제영화제 베니스영화제를 창설했다. 이어 1937년, ‘영화 도시’란 이름을 붙인 거대한 종합 촬영장 ‘치네치타’가 건설됐다. 로맨스 판타지로 대중을 홀린 멜로드라마 ‘백색전화 영화’가 그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전쟁으로 치네치타 역시 난국에 처하자 영화 청년들은 쓰다 버린 필름과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간다. 현실과 영화가 함께 돌아가는 새로운 사실주의 영화, ‘네오 리얼리즘’이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그 선구작으로 꼽히는 ‘강박관념’(1943, 루키노 비스콘티)은 상투적 로맨스 판타지를 전복시키며, 부익부 빈익빈 현실의 부조리를 폭로해 낸다.
영화 세상을 통해 아픈 현실을 살아 낼 예술의 힘을 보여주는 이런 정신은 켄 로치의 칸영화제 대상 수상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이어진다. “국가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던지는 이 작품은 sns 시대답게 세계적 공명을 불러일으키며 한국 극장으로 날아온다. 목수로 살아온 중년의 다니엘이 지병으로 일을 못 하게 되자, 실직수당을 받으려고 고군분투하며 체험하는 관료제도의 반인간적 얼굴은 한국 광장에서도 제보된다. 퍼즐과 같은 국가에 살며,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기에, 국민 의견에 귀 기울여주는 정치인이 바른 자리에 위치해야 국가가 완성된다”는 한 청소년의 외침은 영국의 목수와 공명하는 이곳에서 열린 판도라 상자의 희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