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에서 한라까지, 평양에서 서울까지.’ 남북을 아우르며 전국 방방곡곡을 쓸고다닌 탈북청년 김영남(40)씨. 그의 직업은 드라이버다.

“북한에서 운전원은 인기가 좋아요. 수입이 안정적이거든요. 북한에서 7년을 운전했어요. 북한 전역을 돌아다녔죠. 가장 경치가 좋은 곳은 묘향산이었어요. 산이 묘하게 생겼다고 묘향산이래요. 하지만 일반인들은 들어갈 수 없어요. 경치 좋은 곳 대부분이 그래요. 그 곳엔 김씨 일가의 별장이 있거든요.”

◇금강산보다 빼어난 칠보산을 아시나요

그에게 듣는 북한 여행은 즐겁다. 그에게 물었다. 북한 여행지 중 가장 추천하고 싶은 곳이 어디냐고? 답은 금강산도 묘향산도 아니었다. 함북 칠보산이었다. 금강산마냥 칠보산도 내칠보·외칠보·해칠보로 나뉘는데, 기암절벽이 금강산보다 빼어나다고 했다.

북한 도시의 특징도 들려줬다. 물품이 가장 저렴하게 거래되는 함북 나선, 돈놀이(가짜달러 유통) 하는 과학도시 평남 평성, 북한말의 상징 ‘내레’의 고향 신의주, 혁명 전통의 본고장 양강도 혜산, 군수공장이 밀집한 자강도, 북한의 대표 피서지 송도원해수욕장이 있는 강원도 원산 등등.

그는 남한(한국)도 섭렵했다. 동해·서해·남해 등 해안을 따라 일주 했고, 제주 한라산에도 올랐다. 서울은 택배일을 하면서 골목골목을 누볐다. 지금도 그는 일주일에 4차례 이상 하루 700㎞를 달린다. 삼천리 방방곡곡을 누빈 그는 “운전하길 잘한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영남씨는 북한 여행과 남한 여행의 차이는 ‘자유’라고 했다. 북한에는 자유가 없단다. 도시와 도시를 이동하려면 반드시 ‘출장·여행증명서’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증명서 떼기’가 ‘하늘의 별따기’라고 했다. 북한 주민들에겐 사실상 여행이란게 없다고 했다. 한국 학생들은 수학여행을 가지만 북한엔 없단다. 기껏해야 학교 주변에서 운동회를 하는게 고작이란다. 자신도 여행을 다닌 게 아니라 일 때문에 곳곳을 오갔고, 오가다보니 경치가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한국 생활 초기엔 ‘어떻게 자유를 누려야 하나 막막했다’고 털어놨다.

◇밀수하다 걸려 북한 등져

영남씨는 1976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2남1녀 가운데 막내로,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랐다. 할아버지는 조국광복회원으로 ‘토대’(출신성분)가 좋았다. 아버지는 최고인민회의 고위공직자였고 어머니도 노동당에서 일했다. 그는 북한에서 생활한 22년이 지금보다 훨씬 윤택했었다고 회상했다. 국정원에서조차 ‘왜 한국에 왔냐’며 의아해 할 정도였단다.

평양에서 잘 나가던 아버지는 ‘아첨꾼’들에 밀려 양강도로 좌천됐다. 삼수갑산이 있는 산골이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지방이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인민위원회 간부였고, 어머니는 당비서였기 때문이다.

탁아소-유치원-인민학교-고등중학교를 거쳐 군대에 갔다. 하전사(일반사병)로 10년간 복무했다. 2002년 제대하면서 김일성종합대학교 입학 추천서를 받았다. 제대 후 얼마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대학 진학을 포기한 채 방황하다가 사회에 진출했다.

북한은 누구나 직장에 다닌다. 다만, 월급을 보고 직장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군당 또는 시당의 책임비서 월급이 고작 쌀 1∼2㎏정도이니 월급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래서 직장에 이름만 걸어둔 채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직장에는 뇌물을 바치고 개인사업을 하는 경우다. 그도 그랬다. 적(籍)을 둔 직장에다가 한달에 3000∼5000원을 바치면서 장사를 했단다. 그러다가 밀수에 손을 댔다. 밀수품은 금속으로, 구리·동 등을 모아 중국으로 반출하는 일이었다. 불법이었지만 짭짤했다. 대신 항상 위험이 도사렸다.

2007년 7월 어느날, 구리를 중국으로 밀반출한 뒤 돈을 챙겨 강을 막 건넜는데 낌새가 이상했다. 안면이 있던 국경경비대가 아닌 보위사령부였다. 보위부의 암행감찰이었다. 걸리면 풍비박산이었다. 방법이 없었다. 모든 걸 다 버리고 다시 강을 건넜다. 그것이 북한에서 삶의 마지막이었다. 여느 탈북민들처럼 살기 힘들어 압록강을 넘은 것이 아니라 밀수하다 걸려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고만 것이다.

◇‘긍정의 마인드’가 성공 요인

영남씨의 ‘고난의 행군’은 이 때부터 시작됐다. 중국 심양을 향해 50일동안 걸었다. 낮에는 숨고 밤에는 걸었다. 버스를 탔다가는 공안에 잡힐 것 같아 빌어먹으며 무작정 걸었다. 6일동안 한끼도 먹지 못하고 굶은 때도 있었다. 그러나 도둑질은 하지 않았다. 자칫 걸리면 북송될게 뻔했기 때문이다.

다행한 것은 고등학교 때 중국어를 조금 배운 탓에 ‘빌어먹을 수 있었다’는 거였다. 그는 북한의 영재학교인 제1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영어와 일본어·중국어를 배웠다. 지인을 찾아 연길까지 걸어걸어 왔는데 지인은 단속이 강화돼 위험하다며 빨리 내륙으로 피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심양에 가보라고 했다. 여기보다 안전하다며. 그는 다시 걸었다.

심양·산동·청도 등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2년을 지냈다. 그러다 한국을 알게 됐고, 한국행을 결심했다. 라오스·태국을 거쳐 2009년 6월 아침 7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국정원 가는 길에 어마어마한 광경을 목도했다. 북새통을 이룬 출근차량들이었다. ‘만만치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낯선 환경을 혼자 개척해야 한다는 강박도 몰려왔다.

한국서 살아가려면 직업이 필요했다. 좋아하는 것보다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그게 운전이었다. 그리고 7년이 지났다. ‘인간 내비게이션’이 됐다. 그는 현재 현대글로비스 재제조부품 총판업체인 ‘세인상사’에서 일하고 있다. 충청·경상도까지 자동차부품을 공급한다. ‘탈북자’라는 홀대와 모멸을 딛고 과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한국에 온 것 자체가 성공”이라고 감사해 했다. 또 ‘긍정의 마인드’가 여기까지 온 동력이 됐다고 했다. “자신의 집이 있고, 화려한 차가 있고, 가족이 있고, 돈이 있어 성공한 것이 아니라 긍정의 마인드로 살아가는 게 성공이다. 만족하며 살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올해는 친구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특히 여자친구를.



/글·사진=박정욱기자 jw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