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가 시작되면서 한국문화는 장르를 불문하고 서구 지향적인 세계화를 외쳐왔다. 특히 문화적으로는 서구 중심의 ‘퓨전’을 지향해왔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서구 지향적인 세계화는 넘치는 반면 우리만의 빛깔을 바탕으로 하는 융합은 그리 많지 않았다.

어릴 적에 특별한 날에는 짜장면으로 외식했고 조금 더 금전적 여유가 있을 때는 일명 칼질을 하는 경양식을 찾았던 것 같다. 서구적인 문화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보니 우리가 추구하는 문화생활도 전통은 왠지 뒤떨어져 보이는 것처럼 받아들이고 서구적인 것을 고급스러운 것으로 생각하고 따라가려고 했던 것 같다.

이같은 전통 단절의 과거와 달리 요즘에는 전통계승이라는 새로운 변화가 일고 있다. 서구적인 주거문화 속에서의 구들장문화, 아파트 홍수시대 속의 한옥문화, 서구적인 외식사업 속의 한식문화 등과 같이 전통유산에 대한 재인식과, 재발견이 진행되고 있다.

전통계승의 새로운 변화는 음악도 예외가 아니다. 자연적인 재료로 만들어진 악기, 인간친화적인 선율과 장단이라는 한국 전통음악이 새삼스럽게 재조명 받고 있다. 더 나아가 서구적인 사회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현대인에게 정신적 힐링 측면에서도 큰 역할을 하는 흐름도 있다.

이처럼 한국의 전통음악은 전통계승뿐만 아니라 현대인의 정신 세계를 정화하는 데 앞장 서고 있다. 이런 전통음악의 한가운데 바로 호남의 국악이 자리 잡고 있다.

한반도에서 충청도의 금강 아래의 지역을 호남(湖南)이라 지칭했는데, 음악적으로는 호남을 ‘육자백이 토리’권이라 해왔다. 각 지역마다 맛깔나고 구수한 사투리가 있듯이 그 지역의 독특한 음악적 기법들을 ‘토리’라 하는데 호남이 바로 대표적인 지역이었다.

호남 가운데서도 특히 진도가 전형적인데 담 넘어 문화재가 있다고 얘기할 정도로 흥겹게 들을 수 있는 다양한 민요 육자백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 진도를 호남의 대표삼아 ‘육자백이 토리’권이라 하기도 해왔다.

호남의 육자백이 토리권에는 판소리, 산조, 남도 민요,호남좌·우도 농악, 진도씻김굿 등 한국 전통음악 가운데 민속악을 대표하는 장르를 포함하고 있다. 호남을 뺀 민속악도, 민속악을 뺀 호남도 있을 수 없다. 호남의 민속악은 무엇보다도 호남을 호남답게 하는 전통유산이다.

민속악을 계승하고 재현하는 호남 출신의 민속악 장인들이 전통음악을 전통음악답게 이끌어가고 있다. 이러한 호남의 민속악 가운데 하나가 호남의 삼현육각과 시나위이다.

먼저, 호남의 삼현육각이 왜 호남 전통문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지 알아보자. 삼현삼죽이 한 시대의 대표적인 악기를 지칭한다면, 삼현육각은 관악기 중심의 악기편성법을 말한다.

삼현삼죽은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향악기를 이르는 말이다. 고구려의 거문고, 신라의 가야금, 그리고 중국에서 수입되어 개량한 향비파가 삼현에 해당하며, 신라의 전설을 품고 있는 대금, 중금, 소금을 삼죽이라 이른다.

삼현육각은 피리 2명, 대금 1명, 해금 1명, 장고 1명, 좌고 1명으로 세 가지 관악기(삼현)을 중심으로 한 여섯명의 악기잽이(육각) 편성법을 말한다. 조선시대 풍속화중 김홍도의 ‘무동’이란 그림을 보면, 갓을 쓴 피리 1명, 패랭이를 쓴 피리 1명, 갓을 쓴 대금 1명, 패랭이를 쓴 해금 1명, 갓을 쓴 장고 1명, 패랭이를 쓴 좌고 1명 등 총 여섯명의 악기잽이가 나온다.

도상학상 재미있는 사실은 피리, 대금, 해금 세 관악기중 계급이 가장 낮은 해금도 패랭이를 쓰고 있으며, 악기중에서도 서열상 두번째 직급에 해당하는 두 번째 피리와 두 번째 타악인 좌고도 패랭이를 쓰고 있다.

삼현육각은 움직이는 중에도 연주하기 용이하고, 관악기 중심 편성이다 보니 웅장하고, 경쾌한 음악을 연주할 때 편성한다. 이와 달리 풍류 사랑방의 작은 규모의 공간에서 거문고를 중심으로 한 현악중심의 줄풍류나 세풍류 편성법이 있다.

삼현육각 편성은 궁중악사들이 궁중에서 연주하는 궁중음악의 주된 편성법인데, 그에 그치지 않고 지방관아 등 행사음악에도 쓰이며, 각 지역의 굿음악에서도 이 형태는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궁중악사는 궁중의 경제력에 따라 많을 때는 800여명 이상일 때가 있었고, 역대 국왕들의 제사, 국왕이나 군대의 행차, 국왕과 신하의 모임 등에서 연주를 하게 된다. 아무래도 요즘처럼 음향 시설이나 이동 수단이 발달된 게 아니었으므로 관악기 중심인 ‘삼현육각’ 편성이 주를 이루었다.

호남은 곡창지대이자 민속이 발달한 지역이었다. 그렇기에 높은 예술적 경지의 예술인들이 호남으로 모여들었고, 호남 가운데도 나주는 전주와 더불어 전라도 관아의 중심이자 나주평야가 있었기에 삼현육각 명성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악기편성의 규모 자체가 컸으며, 질적으로도 높은 예술적 경지를 이루었다.

육자백이 토리를 중심으로 한 남도의 슬픈 정서를 바탕으로 한 ‘남도 시나위‘도 많은 발전을 해왔다. 삼현육각은 악기편성법 측면에서도 용어가 쓰이지만, 또한 무용반주에도 자주 사용되어 무용반주 음악을 삼현육각이라 지칭하기도 한다.

긴 장삼을 어깨에 메거나 허리에 두르고 추는 춤꾼은 굿판을 들었다 놨다 한다. 현재 굿판에 와 있는 이의 슬픔도 기쁨도 아우르고, 이 세상을 떠난 이의 슬픔도 각정도 풀어내는 춤꾼이 지무다.

그 지무의 춤을 울고 웃게 만드는 것이 시나위이며, 특히 호남 지역에 있어온 삼현육각 중심의 남도 시나위에는 현재의 슬픔을 들어올리고, 미래의 기쁨을 끌어내는 애잔하면서도 구성진 흥이 있다. 굿거리, 자진모리 장단의 큰 틀 안에서 각자의 악기가 재주를 부리는데, 그 중 늘 한 악기는 본청 위주로 연주를 하고 있어서 혹, 흥분한 악기들이 다시금 제집으로 찾아오게끔 하여 합주가 이루어진다. 이를 불협화음의 화음 또는 다성음악 효과라 한다.

개인의 장기를 최대한 살리면서도 큰 흐름의 합주가 가능한 ‘원초적이면서 민주적인 음악’이라고 할까…. 또한 그 개인의 장기는 개인의 음악적 능력이 나타나는데, 21세기의 작곡 개념으로 볼 때 개개인 창작물인 셈이다. 즉, 삼현육각 편성의 남도 시나위라면 여섯명의 악기잽이들이 순간순간 작곡을 하면서 큰 장단과 선율을 지켜나가는 ‘큰음악’인 셈이다.

관악 중심의 삼현육각과 그리고 그 편성으로 했던 많은 음악의 중심에 있었던 시나위는 그곳에 그치지 않고 현재 연주되고 있는 많은 음악들을 창작시키는 모태가 되었다. 율도 시나위 선율을 중심으로 판소리에 쓰였던 장단이 결합하여 19세기 말에 전라도 영암에서 김창조에 의해 가야금 산조라는 기악독주곡이 창작되었다.

현재는 거의 모든 악기의 산조로 발전했으며 기타산조, 피아노 산조가 만들어 질 정도로 발전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이처럼 한국전통음악의 보고로 남도민속음악이 재조명되고 있으며 그중 남도시나위 선율이 주목받고 있다. 호남의 음악은 바로 멋과 흥을 함께 머금고 있는 것이다.



*이왕재 광주시립국악관현악단 수석단원

-국악 타악 연주자

-전남대 국악과 겸임교수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