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지방문화가 중시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항상 소수의견으로 주목받지 못해왔던 게 사실이다. 전통문화가 중시되어야 한다는 주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현재와 역사가 공존하고, 첨단과 전통이 함께 할 때, 그 문화는 탄탄해질 수 있다.

‘문화의 세기’라고도 불리는 21세기에는 풍부한 전통과 다양한 지방문화가 경쟁력의 원천이 된다. 농업사회에는 땅이라는 지표자원이, 공업시대에는 지하자원이 중요했듯이, 이제 도래한 문화시대에는 지방문화와 전통문화와 같은 문화원형이 부존자원으로서 역할을 크게 맡기 때문이다.

전승되어 오는 문화유산 중에서도 마을굿은 민족문화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간직하고 있는 가장 구체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다. 우리 민족문화의 원형을 보여주는 두 가지 원천 자원이 있다.

하나는 단군신화요, 다른 하나는 고대의 ‘국중대회’이다. 마을굿은 단군신화의 우주목(cosmic tree) 관념과 천부지모(天父地母)라는 신앙체계뿐만 아니라, 국중대회의 의례적 형태나 세시적 기능도 함께 가졌다.

마을 단위로 모셔지는 마을굿은 이름도 형태도 모두 다르다. 서울과 경기지역은 부군당제, 강원도지역은 성황제, 경상도지역은 골맥이제나 별신제, 호남지역에서는 당산제로 부르는 마을이 많다.

그러나 호남지역에서 당산제가 아닌 동제, 이사제, 당제, 거릿제, 별신제, 천제 등 다른 이름으로 다양하게 불리고 있다. 전수조사를 끝낸 전남지역의 경우, 현재 900여개의 마을에서 당산제가 전승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동제와 마을굿은 한자와 우리말이라는 차이 이외에도 약간의 범주적 차이가 있는 말이다. 마을굿은 마을의 신에게 제사를 모시는 의례적 행위 외에도 마을제사를 모시면서 병행되거나 부대적인 뒷풀이(음복), 달집태우기, 줄다리기, 풍물 등을 아우르는 말이다.

매년 치르는 마을굿은 날짜가 정해져 있는 경우도 있고, 택일 과정을 통해서 매년 새로 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정한 공식은 거의 정초에 집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보름을 즈음하여 올리는 곳이 대부분이지만, 설날부터 대보름 사이에 택일을 하는 마을도 있다. 1년의 운세를 정초에 보장받으려는 신앙심에서 기인한 까닭이다.

모시는 신격도 다양하고, 신으로 간주하는 신체도 다양하다. 호남지역에서 일반적으로 찾아지는 신격은 당산할아버지와 당산할머니로 불리는 남신과 여신이 대표적이다.

이들 신격을 표상하는 신체 역시 수목형이 가장 많다. 마을숲이 조성된 마을은 대개 역사가 오래고, 또 마을제사를 모셨던 곳이다. 하늘을 아버지, 땅을 어머니로 믿는 천부지모와 이 둘이 교호하는 천지소통 또는 남녀교합의 형상체로서 수목이 신체의 구실을 맡는다.

방식은 종교적 요소와 세속적 요소를 아우른다. 마을신에게 제사를 모시는 방법은 경건하며, 대부분 주자가례의 제례방식을 따르고 있다. 부안의 위도, 영광의 낙월도나 여수의 개도처럼 일부 도서해안지역에서 무속인이 주재하는 마을굿도 찾아지는데, 이들은 원형적이거나 잔존형태일 것이다. 유교식 제사방식이 일반화되기 이전의 형태였을 수 있다.

유교식 제사를 위해서 제사를 관장한 여러 사람을 미리 선정한다. 유고가 없는 깨끗한 사람으로 고른다. 이들은 일정한 기간 동안 때로는 일반인과 격리될 정도로 철저한 금욕기간을 보내게 된다.

제사를 모시고 나서도 마을이 정한 일정한 기간은 조심해야 한다. 헌관, 축관, 유사, 화주 등이 해당하며, 이들 중 제물을 장만하는 화주가 가장 주목을 받고 조심을 해야 한다. 그래서 제물을 장만할 때, 미리 마을 우물에 금줄을 치고, 또 제물을 마련하는 화주집에도 금줄을 치고 황토를 깔아 잡인의 출입을 막는다. 금줄과 황토는 제사와 관련해서 성스러운 장소를 정화하고 보호하는 장치이다.

마을제사의 목적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재앙을 걷어내고 복을 맞아들이는 제액초복(除厄招福)이라고 하겠다. 이것은 인간의 보편적 소망으로서, 이를 실현하기 위해 초자연적 영력을 가진 마을신의 힘을 빌고자 하는 제사이다. 마을굿이 정초에 행해진다는 사실에서 이러한 제의 목적이 일년 내내 성취되기를 소망하는 의식임을 읽기는 쉽다. 그리고 이러한 제사의 유효기간은 단 1년만이다.

따라서 매년 그때쯤에 다시 반복된다. 마을굿은 반복적인 연중행사며, 정기의례이자, 신년의례로서 1년이라는 시간과 한 마을이라는 공간에 대해 영향력이 미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마을제사를 모시는 마을마다 영험담이 전한다. 가장 일반적인 영험담 중 하나는 마을에 도둑이 들어 소를 끌고 밤새 도주를 했으나, 당산나무 주위만 맴돌다 날이 새자 소를 당산나무에 묶어두고 도망쳤다는 내용이다. 당산신을 마을 수호신으로 간주하는 태도에서 만들어진 영험담이다.

마을제사와 병행 또는 부대적인 행사도 많다. 본래 제의라는 것은 신을 즐겁게 하면서도 인간도 함께 즐기는 소위 오신(娛神)과 오인(娛人)의 복합적 기능이 작동한다. 엄격하게 마을의 제사를 모시고 나면 마을 사람 전체가 참여하는 흥겨운 뒷풀이로서 음복행사가 있다. 복을 함께 나누어 먹는다는 것이야말로 마을제사의 본령을 바로 지시해주는 낱말일 것이다.

먹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여기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음주가무이다. 풍물패가 함께 하여 마을 단위의 멋들어진 작은 축제가 연행된다. 고대 국중대회의 유습이 오늘날까지 실현되고 있는 현상이라 하겠다. 또 이를 전후하여 지신밟기도 하게 된다.

호남의 동부 산지지역에서는 달집태우기가, 서부 및 해안지역에서는 줄다리기가 대보름 무렵에 성행했다. 마을의 남녀노소 모두가 참여하여 마을굿의 절정에 해당하는 놀이판이 벌어진다. 그러나 줄다리기와 달집태우기가 단지 놀이만 아니다.

불처럼 활활 마을이 잘 되기를 염원하는 것이 달집태우기고, 암줄과 숫줄로 줄다리기를 하면서 용을 즐겁게 하여 우순풍조(雨順風調)를 기원하는 것이 줄다리기였다. 이들 놀이 역시 세속적인 의미의 놀이문화에 그치지 않고, 삶을 풍요를 비는 신심 가득한 의례적 행사의 일환이었던 셈이다.

앞으로 문화적 경쟁력은 무형문화재에 의해서 결정될 전망이다. 누가 더 많은, 그리고 더 좋은 무형문화재를 지니고 있는지에 따라서 문화적 창조력이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민족문화로서 유형문화재의 중요성이 감소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무형문화재가 지니고 있는 창조력이 과소평가되어 온 것에 대한 상대적 반성이 일고 있다. 앞으로 창조산업이 주류를 이룰 것이며, 따라서 창조의 소재로서 무형문화재만 한 것이 없다. 무형문화재의 가변성은 다른 말로 하자면 창조성이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거북선이 중요하고, 고려청자가 값어치가 있다. 우리나라 최고의 예술품이라 하는 백제금동대향로 역시 그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라 한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보면 그런 것들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전승되고 있다면, 또 그에 관련된 충실한 기록이 보존만 되어 있더라도 그깟 것들은 수백 수천 개라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창조시대를 맞아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무형문화재이며, 그런 점에서 종합적 민속으로 전승되어 왔던 마을굿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된다.





* 나경수 전남대 사범대 국어교육과 교수

-전 한국민속학회 회장

-현 진도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