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남공 정충신(鄭忠信·1576∼1636)은 부친 금천군(錦川君) 윤(綸)과 모친 영천이씨 사이에 태어났으며 자는 가행(可行), 본관은 하동(河東)이다. 고려말 남해안에 출몰하는 왜구퇴치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고 우리나라 수군(水軍)의 창설자로 추앙을 받는 정지(鄭地)장군의 9대손이다.

후손들이 이후 쇠락하면서 다소 한미한 가문이 되었지만, 공은 끊임없는 용맹정진과 새로운 것을 탐구하고 성과를 내는 도전정신, 주변사람들과의 특유의 친화력 등을 발휘하여 수많은 고비를 지혜롭게 이겨내며 성공적인 삶을 영위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광주목사 권율(權慄)의 휘하에서 종군하였다. 이때 권율이 문서(狀啓)를 의주의 행재소(行在所: 국왕의 임시거처)에 전달할 사람을 구했지만 응하는 사람이 없게 되자, 17세의 어린 공(公)이 자청하여 단신으로 여러 겹의 왜군 무리를 무사히 뚫고 지나 행재소에 도착하였다. 한눈에 비범한 인재임을 알아본 병조판서 이항복이 그에게 공부를 가르쳤는데 머리가 총명하여 친아들같이 사랑하였다.

그 해 가을에 행재소에서 실시하는 무과시험에 합격하여 여러 무관직에 복무했고 1621년 만포첨사로 국경 수비를 담당하였다. 1623년 안주목사로 방어사를 겸임하고, 이듬해 이괄(李适)의 난 때는 도원수 장만(張晩)의 휘하에서 전부대장(前部大將)이 되어 이괄의 군사를 황주와 서울 안산에서 무찔러 진무공신(振武功臣) 1등으로 금남군에 봉해졌다.

공은 1627년 정묘호란 때는 부원수를 지냈고, 1633년 조정에서 후금(淸)에 대한 세폐의 증가를 이유로 후금과의 단교를 하려는 것을 반대하여 유배되었다가 곧 풀려 나와 이듬해 포도대장·경상도병마절도사를 역임했다. 1636년 병환으로 별세하자 조정에서 어복(御服)을 주어 수의로 삼게 했으며, 관아에서 예장(禮葬)을 치르도록 하였다. 광주시 청옥동에 소재하는 경렬사에 배향되어 있으며, 저서로 각종 시문과 군사의 행적을 기록한 ‘금남집’(錦南集)·‘백사북천일록’(白沙北遷日錄) 등이 있다.

작은 체구에 명석한 두뇌를 가진 어린 금남공이 행재소에 문서를 전하러 갈 때 다음의 일화가 전해진다. 먼저 문서를 글씨 부분이 남겨지도록 종이를 세로로 잘라내어 가느다란 한지 새끼를 꼬았다. 얼굴과 전신에 깜장을 칠하여 피부병환자로 위장한 다음, 지승(紙繩)으로 엮은 망태기를 둘러메고 유유히 적진을 통과하여 무사히 임무를 수행하였다.

금남군(錦南君) 정충신의 공신 군호에서 비롯된 ‘남쪽의 비단길’ 금남로는 광주민주화운동이 시작된 성스러운 장소로 전국에 널리 알려진 곳이다. 이 도로는 일제강점기에 명치정(明治町)이었고, 본정통(本町通)으로 불린 이웃한 충장로와 함께 광주시내 핵심간선이었다.

해방 이후 금남로로 개칭되었으며 노폭이 2차선으로 협소하여 대도시로의 도약을 위해 지난 1968년 4차선으로 확장되었다. 전남도청 앞의 새로 닦인 도로 양쪽으로 은행·보험·증권회사 등의 건물들이 즐비하면서 금남로는 한동안 지역 행정과 금융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도청이 이전하고 상무지구가 새로운 핵심업무 구역으로 떠오르면서 화려했던 금남로의 위용도 적지 않게 위축되었다. 아시아문화전당의 개관과 더불어 금남로의 새로운 중흥시대를 기약해본다.



〈광주시립민속박물관 학예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