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문(畢門) 이선제(李先齊·1389∼1454)는 광주 대촌동 원산마을 출신으로 자는 가보(家父),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조부는 밀직제학 홍길(弘吉), 부친은 일영(日英)이며, 다섯명의 아들을 두어 오원(五元)이라 불렀다.

1419년 식년시 문과에 급제한 뒤 세자빈객을 지낸 후 1431년에 집현전 부교리로 춘추관기사관이 되어 ‘태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첨지중추원사·병조참의를 거쳐 1444년에 강원도관찰사로 나갔다. 1446년 예조참의를 거쳐 잠시 삼의사제조(三醫司提調)를 지냈다.

이듬해 호조참판에 올랐고 1448년 하정사(賀正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450년 정인지 등과 ‘고려사(高麗史)’의 개수작업에 참여할 때는 사관(史官)으로서, 앞서 정도전·윤소종 등이 편찬한 ‘고려사’가 당시 이색·이인복이 지은 ‘금경록(金鏡錄)’에 너무 의거한 탓에 사실과 다른 점이 많다고 지적하여 바르게 서술하도록 하였다. 문종이 즉위하자 예문관제학에 임명되어 서북지방의 군제(軍制) 정비, 야인의 객관(客館)을 별치(別置)할 것, 어염세(魚鹽稅)를 확보하여 국가재정을 충실히 할 것 등을 건의하였다. 단종이 즉위한 뒤에는 경창부윤(慶昌府尹)이 되어 전염병 방제에 진력하였다.

관직을 마치고 향리로 돌아와서는 후진 양성과 향약보급 및 향촌 교화활동에 매진하였으며, 사후 이조판서와 예문관 대제학에 추증되고 강진 수암서원, 화순 오현당, 죽산사에 배향되었다.

이선제부조묘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앞마루를 둔 겹처마 맞배집이다. 공포는 초익공(初翼工)으로 상단에 용머리 장식을 하였고, 막돌초석 위에 정면은 민흘림기둥을 세우고 나머지는 사각기둥을 세웠다. 삼문과 양측면의 맞담 위에 기와를 얹어 빙 둘렀다.부조묘는 포충사 뒤쪽 산기슭에 있으나 원래의 위치에서 50m 왼쪽으로 옮겨온 것이다. 사당 입구에는 신도비가 서있으며, 뒤편의 언덕에는 필문의 묘와 묘비가 자리하고 있다.

마을 앞에는 필문선생이 심었다고 전해지는 수령 600여년의 노거수가 위용을 자랑한다. ‘괘고정수’(掛鼓亭樹)라 불리는 버드나무로 이 나무가 죽으면 가문도 쇠락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고 한다. 이선제의 후손들이 과거에 급제하면 이 나무에 북을 걸어 놓고 축하연을 베풀었기 때문에 ‘괘고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1589년 이른바 기축옥사(己丑獄事)라 불리는 정여립모반사건(鄭汝立謨叛事件)이 일어났을 때, 동인의 영수이며 5대손인 동암(東庵) 이발(李潑)과 일가족이 폐족을 당하면서 나무도 고시지경에 이르렀다. 이후 이발의 억울함이 밝혀지고 다시 새 잎이 돋아나면서 가문의 중흥이 시작되었다는 일화가 내려온다.

광산이씨는 순백(珣白)을 중시조 하여 조선초기 이선제 등 걸출한 인물을 배출한 호남의 명문거족이었으나, 동인과 서인의 대립하는 가운데 기축년의 변고로 인해 가문이 풍비박산하는 큰 재앙을 입었다. 이제라도 동암과 송강 정철의 후손이 서로를 용서하고 진정한 화해의 손길을 내밀면 어떨까 싶다.

〈광주시립민속박물관 학예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