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PC를 악성코드에 감염시켜 내부 주요 파일들을 암호화한 뒤 이를 풀어주는 대가로 가상의 현금 ‘비트코인’을 요구하는 랜섬웨어(ransomware)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특히, 최근 전 세계를 휩쓴 랜섬웨어 ‘워너크라이’(WannaCry)가 국내에서는 비교적 큰 피해 없이 지나갔지만, 날로 진화하는 사이버 공격에 적극적인 대비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17일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까지 국내 기업 12곳이 워너크라이 랜섬웨어 피해 신고를 했으며, KISA의 기술지원을 받기로 했다. 또 의심신고는 16건이 접수됐다.

전 세계를 공포에 몰어 넣은 것에 비해 국내에서의 실제 피해는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워너크라이의 공격시도는 상당히 거셌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스트시큐리티의 통합백신 ‘알약’이 탐지해 사전 차단한 공격 건수만 지난 12일부터 14일까지 4일간 5000건이 넘었다. 백신 프로그램과 윈도 운영체제를 최신 버전으로 업데이트하는 등 사전 조치가 없었다면 피해가 더욱 컸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영국의 20대 청년이 우연히 발견한 ‘킬 스위치’(kill switch)도 랜섬웨어 확산 방지에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킬 스위치’는 워너크라이를 무력화시키는 코드다.

하지만, 문제는 랜섬웨어가 날로 진화하고 있어 아직 안심하기는 이른 상황이다. 킬 스위치를 무력화한 2세대 변종이 잇따라 발견됐기 때문이다.

워너크라이 랜섬웨어 변종은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킬 스위치를 우회하는 변종에 이어 킬 스위치가 없는 변종도 나왔고, 킬 스위치가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감염능력이 있는 변종까지 모습을 드러낸 상황이다.

이처럼 변종이 등장하고 PC뿐 아니라 스마트폰까지 확산하면 그 피해가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그만큼 적극적인 대비가 필요하다.

하지만, 국내 현실은 그렇지 않다.

KISA의 ‘2016년 정보보호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9000여개 기업 중 정보보호 예산이 IT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 이상 기업은 전년보다 0.3% 감소한 1.1%에 불과했다. 반면, 사이버 침해사고를 경험한 기업들은 전년보다 1.3%포인트 증가한 3.1%로 조사됐다.

랜섬웨어가 침해사고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8.7%로 전년 1.7%보다 17%포인트 급증했다. 대기업보다는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은 사이버 공격에 더욱 취약하다.

KISA가 지난해 국내 50개 제조공장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중소기업 공장의 80.5%는 정보보호 전담부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보안 투자도 주요 국가와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한국정보보호산업협회(KISIA)에 따르면 올해 국내 정보보안 예산은 전년 대비 3.8% 늘어난 3508억원으로 전체 국가 예산의 0.088%에 그쳤다.

이에 반해, 미국은 정보보호 예산이 190억달러(약 21조원)로 전체 국가 예산의 0.45%에 달했고, 영국은 19억유로(약 2조3000억원)으로 국가 예산의 0.25%를 차지했다.

IT 강국을 외치는 한국이 보안 투자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보안이 취약한 분야에 대한 집중 지원과 고급인력 양성 등 사이버보안 관련 투자를 확대해야한다는 지적이다.

/박기웅기자 pboxer@·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