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9단을 제외하고 더 이상 구글의 바둑 인공지능(AI) 알파고를 상대로 승리를 따낼 인간은 없는 것일까?

지난 23일 중국에서 열린 ‘바둑의 미래 서밋’에서 세계 챔피언 커제 9단을 무너뜨린 알파고의 실력은 지난해 3월 이세돌 9단과의 대국 때보다 훨씬 강해진 모습이었다.

과거 이해할 수 없는 수를 둬 당황케 했던 알파고의 실수는 찾아볼 수 없었다. 망설임 없이 수를 놓고 약점을 보이지 않았다. 치밀한 계산 끝에 무리하지 않고 적은 차이로 유유히 승리를 따냈다. 마치 바둑의 신(神) 같았다.

이처럼 알파고가 1년 사이 급격히 성장한 것은 정신수양과 육체단련(?)까지 이뤄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알파고는 지난해 대국 당시에도 구글이 고안한 AI용 칩 ‘TPU’(텐서프로세서유닛) 기반의 서버를 사용했다. 타사 칩을 쓰는 다른 AI 하드웨어(HW)와 비교해 연산 속도가 수십배 이상 빨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성능을 한층 향상시킨 새로운 HW를 장착한 것으로 파악된다. 구글이 이달 개발자 회의에서 공개한 AI용 칩의 개량판인 TPU 2세대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TPU 2세대는 현존하는 타사의 최정상 AI용 HW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연산 속도를 자랑한다는 게 구글 측의 설명이다. 육체라고 할 수 있는 HW에서 이미 세계 최강인 셈이다.

알파고는 강화 학습(reinforcement learning)을 통해 또 한번 진화에 성공했다.

AI는 자율학습 능력이 있어 인간보다 훨씬 빨리, 많은 양의 공부를 할 수 있어 특정 분야에서 실력을 급속히 끌어올릴 수 있다. 알파고는 이세돌 9단과 대국 전에는 인간 프로기사들이 뒀던 ‘기보’를 대거 학습하는 방식으로 역량을 키웠다. 무려 16만 판에 달하는 기보를 외워 최적의 수를 찾아내 바둑을 뒀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예 기보를 참고하지 않았다. 알파고는 혼자 바둑을 두며 실력을 다졌다. 기보를 참고해 인간의 흉내를 내는 수준이 아니라, 스스로 묘수를 찾아내는 식으로 바둑을 뒀다는 뜻이다.

바둑 국가대표 코치인 이영구 9단은 “처음 알파고를 봤을 때는 ‘저렇게 둬도 되나?’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저렇게 두는 거다’라는 느낌을 받았다”며 “알파고 등장 뒤 프로기사들도 고정관념을 버리고 자유로운 발상을 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알파고의 눈부신 성장에 따라 국내 AI 연구개발(R&D) 성과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삼성전자, LG전자, SKT, KT, 네이버, 현대자동차, 한화생명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은 정부와 협의를 거쳐 지난해 10월 AI 분야 공통 기반기술을 만들 연구개발서비스 주식회사로 지능정보기술연구원(AIRI)을 설립했다.

지난해 대화형 인공지능 엔진 ‘아미카’를 선보인 네이버는 올해 1월 ‘네이버랩스’를 R&D 자회사로 분사해 AI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카카오도 인공지능 분야 담당 자회사 ‘카카오브레인’을 설립한 상태다.

SKT는 국산 인공지능 스피커 1호 ‘누구’를 공개해 판매 중이고, KT도 이미 지난해부터 인공지능 단말기 ‘기가 지니’를 판매하고 있다. LGU+는 올해 출시를 목표로 사물인터넷(IoT) 기술에 기반을 둔 AI 음성인식 서비스를 개발 중이다.

또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미래창조과학부 소프트웨어 분야 국가혁신개발형 R&D 개발과제로 ‘엑소브레인’(Exobrain)이라는 한국어 자연어 이해·학습·질의응답 기술을 작년 5월부터 개발 하고 있다.

한편, 정부도 AI분야 R&D 예산을 대폭 늘렸다. 지난해 1106억원에서 47% 증가한 1630억원이다. AI 소프트웨어에 739억원, AI 하드웨어에 258억원, 기초기술에 633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즉각 응용 가능성이 큰 인지 기술 분야에 대해선 단계적으로 기술 격차를 극복해 2023년까지 글로벌 수준을 기술을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박기웅기자 pboxer@·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