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광주 시민을 환호하게 했던 프로야구가 홈팀인 KIA 타이거즈의 통합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한국시리즈 우승이 확정된 순간 참았던 눈물을 보였던 김기태 감독의 웃음 가득한 얼굴이 인상적이었다.

‘동행 야구!’ 김기태 감독이 취임 이후부터 팀 운영의 슬로건으로 내걸었던 문구다. 어느 특정 선수에 의존하기보다는 더디고 성과가 금방 나타나지 않더라도 모든 선수와 함께 가겠다는 의미였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유독 KIA 선수들의 인터뷰에서는 스타 선수이든 아니든 감독에 대한 칭찬이 빠지지 않는다.

필자는 선수들의 인터뷰에서 단순한 인사말이 아니라 진정성이 느껴졌다. 특히 김기태 감독이 내건 슬로건이나 그동안 보였던 팀 운영 방식에서 감독의 선수들에 대한 깊은 배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모든 조직의 구성원들 사이에는 능력의 차이가 엄연히 존재한다. 능력이 출중한 사람보다는 그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을 수도 있다.

이런 조직에서 구성원들이 동행을 통해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없이는 곤란하다.

구성원에 대한 배려의 마음이 없다면 상대방의 실수나 무능 때문에 조직이 성과를 내지 못했다면서 남 탓을 하겠지만, 배려의 마음이 있다면 상대방의 실수에 대한 질책보다는 격려나 응원을 통해 힘을 모아 함께 나갈 것이고, 그런 조직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반드시 좋은 성과를 낼 것이다.

필자가 재판을 한 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많은 재판을 담당했고 또 다른 법관들의 재판도 보아왔다. 그 중에서도 아직까지 필자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는 판결이 있다.

지난 2006년 대전고등법원 민사부에서 선고한 판결인데 당시에도 꽤 큰 화제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주택공사가 법을 잘 몰라 딸 명의로 임대아파트를 임차해 5년 동안 거주한 75세 할아버지를 상대로 건물 명도를 청구한 사안이었다.

할아버지가 ‘무주택자 임차인’에 해당하는지가 문제된 사안이었고, 1심과 달리 항소심 재판부는 법률 해석을 통해 할아버지가 임차인에 해당한다고 판결을 했다.

그 판결문의 마지막 문구는 이렇다. “가을 들녘에는 황금 물결이 일고, 집집마다 감나무엔 빨간 감이 익어 간다. 가을걷이에 나선 농부의 입가엔 노랫가락이 흘러나오고, 바라보는 아낙의 얼굴엔 웃음꽃이 폈다. 홀로 사는 칠십 노인을 집에서 쫓아내 달라고 요구하는 원고의 소장에서는 찬바람이 일고, 엄동설한에 길가에 나앉을 노인을 상상하는 이들의 눈가엔 물기가 맺힌다. 우리 모두는 차가운 머리만을 가진 사회보다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함께 가진 사회에서 살기 원하기 때문에 법의 해석과 집행도 차가운 머리만이 아니라 따뜻한 가슴도 함께 갖고 하여야 한다고 믿는다…….” 마치 수필의 한 문구와 같다.

필자는 판결문의 형식을 떠나 그 내용에서 재판부의 인간에 대한 진한 사랑을 느낄 수 있어 너무도 가슴 뭉클했었다.

재판부의 판단이 법리에 부합하는지를 떠나서 그 자체로 당사자들의 가슴에 뭉친 응어리는 눈 녹듯이 사라지지 않았을까?

당시 재판부가 가졌던 인간에 대한 사랑. 그것 역시 인간에 대한 배려의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이후 필자는 법정에서 재판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의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일주일에 한 번 진행되는 재판이다 보니 처리해야 할 사건이 적지는 않아서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오랜 시간 계속해서 들어줄 수는 없다.

다만, 그 속에서도 사람에 대한 배려, 인간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잊지 않으면 오고 가는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고, 그것이 당사자들의 응어리진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 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최선을 다하려 했다.

하지만, 여전히 힘들고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힘들고 어렵기 때문에 보다 가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 모두가 지금 자기가 속해 있는 조직의 바로 옆 사람에게 조그마한 배려의 마음을 가지기를 기대해 본다. 그러면 우리 사회가 조금은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