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안영 조안성형외과 원장] 인턴 오적(五敵)
2017년 12월 07일(목) 00:00 가가
인턴 오적(五敵)이란 것이 있다. 나라를 팔아먹은 을사오적(乙巳五賊)을 빗대, 인턴에게 공공의 적인 레지던트를 일컫는 별칭이다.
15년 전 나는 그 중 인턴 일적(一敵)이었다. 최근 모두 얼굴이 불콰해진 술자리에서 불현듯 후배가 그 얘기를 꺼냈다. 후배의 말을 종합해 보면 ‘형(선배)은 그때 형편없었다’, 또는 ‘인성이 별로였다’정도로 들렸다.
“난,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지 않게 열심히 일했고, 나름대로 열심히 환자를 봤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좀 불콰해진 얼굴로 후배에게 되물었다.
“알죠, 그건. 제가 제일 잘 알죠. 안 그랬다는 게 아니라…. 형 기준으로 애들을 판단한 거죠…. 잘 한 애들만 편애하고….”
그랬던 것 같다. 그래, 그랬다. 그런데 후배의 기억과 내 생각 사이엔 틈이 있었다. 그게 뭘까 고민하다가 ‘증오’란 단어를 떠올렸다.
나는 의사이면서 의사를 증오했다. 그 이전에 의사를 증오했기에 의사가 됐다.
15년 전보다 10년을 더 거슬러 가면 대입 합격자 발표가 있었고, 그 다음날 아버지가 교통 사고를 당했다. 나는 응급실도 없는 조그만 개인 병원에서 구급차로 실려 온 의식이 없는 아버지를 만났다.
의사로 보이지는 않으나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차디찬 엑스레이 테이블에 아버지를 아무렇지 않게 던지고 굴리고 있었다.
보호자가 미성년인 나밖에 없어서, 나는 해가 지도록 차가운 병원 대리석 바닥에 앉아 울었다. 타지에 있는 어머니가 뒤늦게 오셔서 수납을 하고 나서야 아버지는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로 옮겨질 수 있었다.
그제야 대학병원에서 CT를 찍고 뇌출혈을 발견한 아버지는 수술보단 약물치료를 하자는 말에 중환자실로 옮겨져 약물 치료를 시작했다.
아버지는 여전히 의식이 없었다. 의사들은 두 시간마다 한 번씩 와서 아버지를 꼬집고 때리기를 반복했다. 지금이야 그게 의식상태(Mental Status)를 측정하는 거란 걸 알지만, 당시의 나는 치료는 하지 않고 매일 꼬집어대는 의사, 간호사에게 적잖은 반감이 들었다.
아버지의 상황은 계속 악화됐다. 열흘 정도 지나고 나서, 아침회진을 끝낸 1년차 신경외과 전공의가 어머니에게 큰소리를 냈는데, 지금도 그 말이 생생하다.
“아니, 왜 당뇨있다고 말 안 했어요? 네?….”
“예? 당뇨요? 말 안 했나? 미안해요. 제가 모르고 그랬어요.” 어머니는 작은 목소리로 정말 죄인처럼 대답했다.
‘각인’이라는 말이 있다. 갓 난 짐승이 제 어미를 평생 기억하는 순간 말이다. 그 순간이 그랬다. 아버지가 이런 게 왜 어머니 탓이 되는 건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그 후 다시 공부를 해 의과대학에 진학했고, 공부를 하는 동안 당시의 상황에 맞는 수업을 들을 때마다 그때의 기억을 하나씩 재생했다.
아마도 아버지의 주치의는 고농도 포도당을 쏟아 부어 삼투압으로 뇌압을 높이고 있는 혈종을 줄이려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는 환자의 병력을 알아보지도 않고 치료를 결정했고, 책임을 보호자에게 미뤘다. 그 전 개인병원은 사설 구급차 운전사를 매수해 위급한 교통사고 환자로 돈벌이하기에 급급했다. 그랬다. 나는 의사를 증오했다. 그들이 의사 같지 않은 의사라고 생각했다.
나는 주치의를 하는 16개월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오전 6시가 되면 드레싱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간에 인턴들에게 채혈을 하거나, 환자의 검사 결과를 챙겨두도록 지시했다. 나는 그런 지시조차 따르지 못하는 인턴이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나의 지시였지만, 그건 환자와의 약속이기도 했다.
의사가 환자를 위해 존재하는 만큼 그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다. 약속된 환자의 처치를 어긴 인턴은, 당시의 내 생각으론, 의사가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의사도 인간인데…, 실수도 하고 그러지 않겠습니까. 배우려는 건데…”
나는 이 말도 이해할 준비가 안 됐던 것 같다. 그건 의사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반면 다른 주치의와 달리 나는 인턴에게 한 번도 개인적인 심부름을 시키지 않았다. 선후배 이전에 의사니까.
“글쎄, 그땐 왜 그렇게 치열하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나도 후회해.”
나는 후배에게 말했다.
요즘 의료계에 이슈가 되는 멍투성이의 레지던트 사진을 보며, 드는 생각이 많다. 사람이 사람을 때리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옳은 일일 수 없다. 교육이 그 목적이라도 그건 폭력이다.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항상 말한다. ‘너 잘되라고 그랬던 거다’ 라고. 주치의 시절 나도, 내 언어도 폭력은 아니었을까?
15년 전 나는 그 중 인턴 일적(一敵)이었다. 최근 모두 얼굴이 불콰해진 술자리에서 불현듯 후배가 그 얘기를 꺼냈다. 후배의 말을 종합해 보면 ‘형(선배)은 그때 형편없었다’, 또는 ‘인성이 별로였다’정도로 들렸다.
“알죠, 그건. 제가 제일 잘 알죠. 안 그랬다는 게 아니라…. 형 기준으로 애들을 판단한 거죠…. 잘 한 애들만 편애하고….”
그랬던 것 같다. 그래, 그랬다. 그런데 후배의 기억과 내 생각 사이엔 틈이 있었다. 그게 뭘까 고민하다가 ‘증오’란 단어를 떠올렸다.
나는 의사이면서 의사를 증오했다. 그 이전에 의사를 증오했기에 의사가 됐다.
15년 전보다 10년을 더 거슬러 가면 대입 합격자 발표가 있었고, 그 다음날 아버지가 교통 사고를 당했다. 나는 응급실도 없는 조그만 개인 병원에서 구급차로 실려 온 의식이 없는 아버지를 만났다.
보호자가 미성년인 나밖에 없어서, 나는 해가 지도록 차가운 병원 대리석 바닥에 앉아 울었다. 타지에 있는 어머니가 뒤늦게 오셔서 수납을 하고 나서야 아버지는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로 옮겨질 수 있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의식이 없었다. 의사들은 두 시간마다 한 번씩 와서 아버지를 꼬집고 때리기를 반복했다. 지금이야 그게 의식상태(Mental Status)를 측정하는 거란 걸 알지만, 당시의 나는 치료는 하지 않고 매일 꼬집어대는 의사, 간호사에게 적잖은 반감이 들었다.
아버지의 상황은 계속 악화됐다. 열흘 정도 지나고 나서, 아침회진을 끝낸 1년차 신경외과 전공의가 어머니에게 큰소리를 냈는데, 지금도 그 말이 생생하다.
“아니, 왜 당뇨있다고 말 안 했어요? 네?….”
“예? 당뇨요? 말 안 했나? 미안해요. 제가 모르고 그랬어요.” 어머니는 작은 목소리로 정말 죄인처럼 대답했다.
‘각인’이라는 말이 있다. 갓 난 짐승이 제 어미를 평생 기억하는 순간 말이다. 그 순간이 그랬다. 아버지가 이런 게 왜 어머니 탓이 되는 건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그 후 다시 공부를 해 의과대학에 진학했고, 공부를 하는 동안 당시의 상황에 맞는 수업을 들을 때마다 그때의 기억을 하나씩 재생했다.
아마도 아버지의 주치의는 고농도 포도당을 쏟아 부어 삼투압으로 뇌압을 높이고 있는 혈종을 줄이려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는 환자의 병력을 알아보지도 않고 치료를 결정했고, 책임을 보호자에게 미뤘다. 그 전 개인병원은 사설 구급차 운전사를 매수해 위급한 교통사고 환자로 돈벌이하기에 급급했다. 그랬다. 나는 의사를 증오했다. 그들이 의사 같지 않은 의사라고 생각했다.
나는 주치의를 하는 16개월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오전 6시가 되면 드레싱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간에 인턴들에게 채혈을 하거나, 환자의 검사 결과를 챙겨두도록 지시했다. 나는 그런 지시조차 따르지 못하는 인턴이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나의 지시였지만, 그건 환자와의 약속이기도 했다.
의사가 환자를 위해 존재하는 만큼 그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다. 약속된 환자의 처치를 어긴 인턴은, 당시의 내 생각으론, 의사가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의사도 인간인데…, 실수도 하고 그러지 않겠습니까. 배우려는 건데…”
나는 이 말도 이해할 준비가 안 됐던 것 같다. 그건 의사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반면 다른 주치의와 달리 나는 인턴에게 한 번도 개인적인 심부름을 시키지 않았다. 선후배 이전에 의사니까.
“글쎄, 그땐 왜 그렇게 치열하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나도 후회해.”
나는 후배에게 말했다.
요즘 의료계에 이슈가 되는 멍투성이의 레지던트 사진을 보며, 드는 생각이 많다. 사람이 사람을 때리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옳은 일일 수 없다. 교육이 그 목적이라도 그건 폭력이다.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항상 말한다. ‘너 잘되라고 그랬던 거다’ 라고. 주치의 시절 나도, 내 언어도 폭력은 아니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