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나영이 사건’으로 악명을 떨친 조두순이 2020년 12월 무렵 출소할 예정이라고 한다.

최근 조두순의 출소를 반대하는 국민청원이 들끓고 있고, 조두순에게 12년의 유기 징역형을 선고한 담당 재판부를 비판하는 의견 또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당시 법원이 선고한 12년의 형이 국민이 기대한 중형(重刑)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다는 점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당시 판결문에 기재된 주된 양형 이유에는 ‘이 사건 범행의 죄질과 범정이 극히 중함에도, 피고인은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 추가 범죄의 발생을 막아 이 사회를 보호하고, 피고인의 악성을 교화·개선하기 위해서는 피고인을 장기간 이 사회에서 격리시킬 필요가 있다.’라고 적혀 있다.

같은 법조인의 시각에서 위 양형 이유를 읽어 보면, 당시 재판부는 조두순을 매우 엄히 처벌한다는 생각에서 형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형사 재판에 대한 여론의 비판을 보면서, 형사 재판장의 한 명으로서 어쩌다가 법원이 국민들로부터 질타를 받는 재판을 하게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먼저, 법관들에게는 타인의 생명을 고의로 앗아가는 ‘살인죄’에 대해 가장 중한 형을 선고해야 한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형법에서는 살인죄에 대한 법정형을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정하고 있는데, 구(舊) 형법에서는 유기 징역형을 ‘1개월 이상 15년 이하’로 정하고 있었다(유기 징역형에 대하여 최대 30년의 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형법이 개정된 시점은 불과 7년 전인 2010년이다).

이에 따라 살인죄도 재판부가 사형이나 무기 징역형을 선택하지 않는 한 최대 15년의 형을 선고할 수 있었을 뿐이다.

그 결과 범행 수법이 극히 잔혹한 경우를 제외하면 15년의 형 또는 그보다 더 낮은 형이 선고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살인범에 대해 왕왕 선고된 15년의 형이 일응의 기준이 돼 흉악한 강간범이나 강도범이라고 하더라도 15년이 넘는 형이 선고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조금 더 생각을 해 보면, 관련 법령이 평균 수명이 급격히 늘어간 시대 상황을 제때 반영하지 못한 데에 근본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1953년에 제정된 형법이 몇 차례 개정되기는 하였지만, 2010년 개정될 때까지 그 내용에 있어서는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런데 국가기록원에서 발표한 통계자료를 보면, 1960년 52.4세에 불과하였던 우리나라 남자의 평균수명이 1980년에 62.3세, 2000년에 72.3세로 급격히 늘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평균 수명의 변화를 보면, 1953년 형법을 제정한 입법자가 유기 징역형의 상한을 15년으로 정한 이유를 대강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1950년 무렵 평균수명이 대략 50세 정도이고, 30세의 범죄자에 대해 15년의 형이 선고되었다고 가정하면 대략 45세 정도에 출소를 하게 된다. 당시 입법자는 극악무도한 범죄자라고 하더라도 약 45세 이후에는 힘이 다 빠진 노인이 돼 나쁜 짓을 하고 돌아다닐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이광수가 쓴 소설을 보면 40대 중반의 등장인물을 지칭하면서 ‘중늙은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으니 이러한 추측이 터무니없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조두순이 2008년 12월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강간 범행을 저질렀을 무렵 이미 50대 중반으로 환갑을 앞둔 나이였으니, 시대가 참 많이 바뀌기도 하였다.

하기야 최근 국정농단 사건에서 60대 초반의 여자 피고인이 25년의 형을 구형받고 ‘옥사하라는 것이냐’고 말하면서 반발했다고 하니, 요즘 나이 80세나 90세가 예전의 50세와 비슷하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도 같다.

수년 전부터 법원에서는 국민의 법 감정에 부합하는 새로운 양형 기준을 설정하는 등 많은 노력을 해왔고, 이에 따라 강력 범죄에 대하여는 중형이 선고되고 있다.

종전의 법원 양형이 급격히 바뀐 우리 사회의 실정에 따라가지 못한 점이 있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지만, 법원의 판단에 대하여 조금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실 것을 부탁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