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저의 해석을 절대로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걸 아셔야 하는 거∼죠?”

판사가 쓴 법조 칼럼이라 혹여나 판사가 법정에서 한 말로 오해하시는 분들이 안 계셨으면 좋겠다.

2000년대 중반에 크게 유행했던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의 한 코너에서 단발머리 가발을 쓴 코미디언이 하는 말이다.

영어 문장을 재치 있고 우스꽝스럽게 해석하면서 사랑받은 위 코너의 제목은 ‘그때그때 달라요’이다.

진행자가 영어 표현의 구체적인 용법을 질문하면, ‘미○소’라 불리는 코미디언이 태연한 표정으로 “그건, 그때그때 달라요”라고 하면서 설명을 이어가는 식이다.

‘그때그때 달라요’라는 유행어가 소리 상표로 등록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갑자기 10년도 지난 예전 코미디를 들먹이는 것은 필자가 법원에 견학을 온 학생들의 질문에 답을 할 때마다 가장 자주 하는 말 중 하나가 “그건 그때그때 다릅니다.”이기 때문이다.

시작은 또랑또랑한 눈빛으로 번쩍 손을 들고 “물건을 훔치면 어떻게 처벌받나요?”라고 씩씩하게 질문하는 초등학생이었다.

‘아, 양형(量刑·범죄에 대해 구체적인 형벌을 정하는 것)의 복잡다기함을 이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건 그때그때 다릅니다. 우리 학생은 다른 친구가 물건을 훔쳐갔다면 어떻게 할 건가요? 내가 아끼는 물건을 훔쳤는지, 그 물건의 값어치는 어느 정도인지, 물건은 돌려주었는지 아니면 어디에 팔아버렸는지, 잘못을 인정하고 미안하다고 하는지 뻔뻔하게 나오는지, 계획적이었는지 충동적이었는지, 혼자 훔쳤는지 여럿이 함께 훔쳤는지, 여럿이라면 직접 훔쳤는지 망을 봤는지, 예전에도 물건을 훔친 적이 있는지…….

용서할지 말지는 그때그때 다르겠죠? 어떻게 처벌받는지도 그때그때 다릅니다.” 다행스럽게도 그 학생은 양형에 아주 많은 고려 요소가 있다는 점을 잘 이해해 주었다.

형사법관은 ‘양형 기준’을 고려해 구체적인 형량을 정한다. 양형 기준은 특정 범죄 유형에서 고려해야 할 여러 양형 인자를 제시하고 그에 따른 일정한 형량 범위를 권고하며, 법관은 양형 기준을 존중해야 한다.

양형 기준은 양형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 등을 통해 일반 국민에게도 공개돼 있고, 이를 통해 양형에 대해 어느 정도 예측을 할 수 있게 된다. 2009년 양형 기준이 도입된 이래 어느덧 10년째가 되었고 총 38개 주요 범죄군의 양형 기준이 마련됐다. 그동안의 양형 기준 준수율은 약 90% 정도다. 양형 기준 제도가 있는 미국의 양형 기준 준수율이 50%에 미달한다고 하니, 우리의 양형 기준 준수율은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양형 기준은 전형적인 사건에서 적용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을 설정한 것이고, 모든 사건에 대해 예외없이 적정하고 합리적인 양형을 제시한 것은 아니므로, 구체적 사건의 특별한 사정에 따라 권고 형량 범위를 이탈해 더 높거나 낮은 형을 선고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 경우 법관은 판결서에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종종 법원의 양형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접하게 된다. 하루에도 전국에서 엄청난 수의 판결이 선고되고, 그 중 많은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다. 세상에 비슷한 사건은 많지만, 같은 사건은 없다.

양형이 일반 국민의 눈높이에 맞아야 하고, 어느 정도 예측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간혹 ‘그 사건과 이 사건은 조금 다른데….’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몽테스키외는 삼권 분립을 주장하면서 ‘사법부는 오로지 법을 적용하는 기계가 돼야 한다.’라고 주장하였지만, 모든 사건은 그 특수성이 있고, 피고인이든 피해자이든 누구나 저마다 사연은 있게 마련이다.

법관이 적정한 양형에 관한 치열한 고민과 토론 없이, 개별 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기계적으로 판결을 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그때그때 달라요’가 단지 철 지난 유행어나, 재판에 대한 매우 원론적인 입장 표명의 도구가 아니라, 양형이라는 것이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사건에서 치열한 고민을 거친 산물임을 설명하는 표현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