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어디까지 가봤니?] <5> 강진은 ○○이다
2018년 04월 04일(수) 00:00 가가
신라부터 현대까지 시간여행 ‘남도 답사 1번지’
“고려에서 현대까지. 문화의 매력에 흠뻑 빠 져보세요.”
고순덕 전남문화관광해설사는 “강진의 매력은 문화”라며 답사1번지 강진으로 초대했다. 신라말·고려(청자)에서 시작해 조선(다산)을 거쳐 현대(영랑)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문화가 스며있다고 했다.
그의 도움으로 완연한 봄날, 다산의 발자취를 좇아 초당을 거닐고, 동백꽃 낭자한 백련사 숲을 오르고, 과거의 청자와 현재의 가우도를 만났다.
◇강진 ‘A로의 초대’
강진 초입에 들어서면 ‘A로의 초대’가 눈에 띈다. 강진과 ‘A’, 어떤 고리가 있을까? 이야기인즉슨 강진만을 품은 강진은 형상이 마치 다리를 벌리고 서 있는 하반신 모양으로 영어 알파벳 ‘A’를 닮았다. 강진만 가운데 섬 ‘가우도’와 이를 잇는 두 개의 출렁다리는 A(∧ + -)를 구현한 화룡점정이다. 여기에 강진군은 최고의 관광지란 뜻으로 ‘ACE’와 국내 관광의 모든 것이란 의미의 ‘ALL’을 담았다. ‘A로의 초대’는 알파벳 A를 활용한 문자마케팅이다.
◇다산을 그리며 옛길을 걷다
‘강진=다산’으로 통한다. 다산초당을 품은 만덕산, 차나무가 많아 ‘다산(茶山)’이란 별명을 지녔다. 정약용 선생의 호 ‘다산’도 여기에서 유래했다.
다산초당 가는 길에 백련사를 들렀다. 백련사는 원래 만덕사로 신라 문성왕 때 무염국사가 창건하고, 고려 희종때 원묘국사 요세스님이 중창했다고 전해진다. 고려 후기 몽골과 왜의 침략으로 나라가 어지러울 때 민중과 함께 참회와 수행으로 정토를 만들어가자는 ‘백련결사’ 운동을 벌인 것을 계기로 백련사가 됐다.
절 한가운데에는 300년 된 배롱나무가 기품있게 서 있다. 그 뒤로 웅장한 만경루가 대웅보전을 가로막듯 자리했다. ‘만경루’와 ‘대웅보전’의 꿈틀대는 듯한 현판 글씨는 한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다. 추사 김정희가 극찬한 명필 원교 이광사의 글씨다.
백련사는 빨간 동백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동백림(천연기념물 제151호)으로 유명하다. 꽃잎이 떨어질때 찾으면 붉은 융단이 깔린 숲을 만나게 된다. 다산초당을 잇는 오솔길은 200여년 전 다산과 혜장이 걸었던 길이다. 찌뿌듯한 하늘이 맑게 갠 어느 봄날, 냉이밭에 하얀 나비가 팔랑거리자 다산은 자기도 모르게 초당 뒤편 나무꾼이 다니는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들판이 시작되는 보리밭을 지나며 그는 탄식했다. ‘나도 늙었구나. 봄이 되었다고 이렇게 적적하고 친구가 그립다니…’ 백련사 혜장선사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벗될 만한 이가 없는 궁벽한 바닷가 마을에서 혜장은 다산에게 갈증을 풀어주는 청량제같은 존재였다.
나이와 종교를 초월해 참된 우정을 쌓은 길은 1㎞ 남짓한 오솔길이다. 400m가 조금 넘는 야트막한 만덕산 허리춤에 놓인 길로 두 개의 고개를 살포시 넘는다. 고개는 높지 않아 봄 소풍 가는 기분으로 걸으면 30분이면 족하다.
다산이 거문도로 유배 간 형 정약전을 그리워하던 천일각에서는 강진만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특히나 이 곳에서 바라본 풍경이 고향(경기 남양주)과 닮아있어 자주 찾았다고 한다. 천일각은 다산을 기리는 마음으로 강진군이 1975년에 세웠다.
천일각에서 언덕을 내려가면 바로 다산초당이다. 원래는 초가였지만, 1950년대 지금의 기와집으로 복원했다.
다산초당은 정약용이 18년 강진 유배생활 중 10년을 지낸 곳으로, 외가에서 마련해줬다. 다산의 어머니는 자화상으로 잘 알려진 공재 윤두서의 손녀다.
다산초당은 풍광도 좋지만 그가 이루어낸 헤아릴 수 없는 위대한 업적과 혼이 살아 숨 쉬는 실학의 성지다. 다산은 이 곳에서 끊임없이 학문에 몰두하며 후학을 양성했다.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 500여 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서도 이 곳에서 썼다.
◇지금도 관요(官窯)가 있다
‘강진=청자’다. 고려시대부터 수백 곳의 요(窯·가마)가 산재했던 자기의 본산이다. 지금도 이곳에는 관 소속의 도공 14명이 청자를 빚어 ‘관요(官窯)’의 맥을 잇고 있다.
강진군은 23호 가마터 부근에 청자박물관과 판매점을 조성했다. 박물관 1층에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청자를 전시하고 있다. 강진은 2007년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고려시대 도자기 운반선이 발견되면서 주목 받았다. 선실 안에서 배와 함께 수장된 2만여점의 도자기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함께 있던 목간(木簡·종이가 발명되기 전 기록에 사용되던 나무조각)에 이 물건들이 지금의 강진인 탐진에서 생산된 것이라고 또렷이 적혀 있었다.
실제 강진군 대구면 일대는 고려청자의 주생산지로 9∼14세기에 걸쳐 500년 동안 청자를 생산하던 단지였다. 우리나라 국보급 청자의 80% 이상이 이곳에서 생산된 것만 보더라도 그 당시 이곳의 위세가 어땠을지는 짐작할 수 있다.
◇‘가고 싶은 섬’ 가우도
소의 멍에를 닮았다 해 ‘멍에 가(駕)자’에 ‘소 우(牛)자’를 써 가우도다. 강진만 8개의 섬 가운데 유일한 유인도로, 33명의 주민이 13가구를 이루고 살고 있다. 섬 둘레 2.5㎞, 면적 0.32㎢로 여의도의 9분의 1크기에 불과하다.
이 작은 섬이 주목을 받은 건 지난 2012년부터다. 섬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인도교가 개통되면서 관광명소가 됐다. 옛날에는 배를 이용해 섬을 드나들었지만, 지금은 2개의 출렁다리가 가우도를 잇고 있다. 418m 저도출렁다리와 716m의 망호출렁다리다. 출렁다리라고 불리지만 전혀 출렁이지 않는다. 대신 다리를 건너면 마음이 출렁인다고 귀띔한다. 2개의 다리 모두 자동차로는 갈 수 없다.
가우도는 향기의 섬이다. 바다와 숲, 사람의 향기가 어우러진 곳이다. 왼쪽으로는 가면 나무로 만든 테크길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흙길에 숲길이 이어진다. 어느 길로 가던지 1시간가량 걸으면 한바퀴 돌아 만나게 된다.
섬 정상에는 가우도의 명물 청자타워와 스릴만점 짚트랙을 만날 수 있다. 청자타워에서 출발하는 가우도 짚트랙은 대구면 저두해안까지 이어진다. 길이 973m로 국내 최대를 자랑한다. 활강시간 1분, 짚트랙에 오르면 누구나 슈퍼맨과 원도우먼이 될 수 있다. 바다 위를 나는 형용할 수 없는 짜릿함, 잊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강진=박정욱기자 jwpark@
고순덕 전남문화관광해설사는 “강진의 매력은 문화”라며 답사1번지 강진으로 초대했다. 신라말·고려(청자)에서 시작해 조선(다산)을 거쳐 현대(영랑)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문화가 스며있다고 했다.
그의 도움으로 완연한 봄날, 다산의 발자취를 좇아 초당을 거닐고, 동백꽃 낭자한 백련사 숲을 오르고, 과거의 청자와 현재의 가우도를 만났다.
강진 초입에 들어서면 ‘A로의 초대’가 눈에 띈다. 강진과 ‘A’, 어떤 고리가 있을까? 이야기인즉슨 강진만을 품은 강진은 형상이 마치 다리를 벌리고 서 있는 하반신 모양으로 영어 알파벳 ‘A’를 닮았다. 강진만 가운데 섬 ‘가우도’와 이를 잇는 두 개의 출렁다리는 A(∧ + -)를 구현한 화룡점정이다. 여기에 강진군은 최고의 관광지란 뜻으로 ‘ACE’와 국내 관광의 모든 것이란 의미의 ‘ALL’을 담았다. ‘A로의 초대’는 알파벳 A를 활용한 문자마케팅이다.
◇다산을 그리며 옛길을 걷다
‘강진=다산’으로 통한다. 다산초당을 품은 만덕산, 차나무가 많아 ‘다산(茶山)’이란 별명을 지녔다. 정약용 선생의 호 ‘다산’도 여기에서 유래했다.
백련사는 빨간 동백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동백림(천연기념물 제151호)으로 유명하다. 꽃잎이 떨어질때 찾으면 붉은 융단이 깔린 숲을 만나게 된다. 다산초당을 잇는 오솔길은 200여년 전 다산과 혜장이 걸었던 길이다. 찌뿌듯한 하늘이 맑게 갠 어느 봄날, 냉이밭에 하얀 나비가 팔랑거리자 다산은 자기도 모르게 초당 뒤편 나무꾼이 다니는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들판이 시작되는 보리밭을 지나며 그는 탄식했다. ‘나도 늙었구나. 봄이 되었다고 이렇게 적적하고 친구가 그립다니…’ 백련사 혜장선사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벗될 만한 이가 없는 궁벽한 바닷가 마을에서 혜장은 다산에게 갈증을 풀어주는 청량제같은 존재였다.
나이와 종교를 초월해 참된 우정을 쌓은 길은 1㎞ 남짓한 오솔길이다. 400m가 조금 넘는 야트막한 만덕산 허리춤에 놓인 길로 두 개의 고개를 살포시 넘는다. 고개는 높지 않아 봄 소풍 가는 기분으로 걸으면 30분이면 족하다.
다산이 거문도로 유배 간 형 정약전을 그리워하던 천일각에서는 강진만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특히나 이 곳에서 바라본 풍경이 고향(경기 남양주)과 닮아있어 자주 찾았다고 한다. 천일각은 다산을 기리는 마음으로 강진군이 1975년에 세웠다.
천일각에서 언덕을 내려가면 바로 다산초당이다. 원래는 초가였지만, 1950년대 지금의 기와집으로 복원했다.
다산초당은 정약용이 18년 강진 유배생활 중 10년을 지낸 곳으로, 외가에서 마련해줬다. 다산의 어머니는 자화상으로 잘 알려진 공재 윤두서의 손녀다.
다산초당은 풍광도 좋지만 그가 이루어낸 헤아릴 수 없는 위대한 업적과 혼이 살아 숨 쉬는 실학의 성지다. 다산은 이 곳에서 끊임없이 학문에 몰두하며 후학을 양성했다.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 500여 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서도 이 곳에서 썼다.
◇지금도 관요(官窯)가 있다
‘강진=청자’다. 고려시대부터 수백 곳의 요(窯·가마)가 산재했던 자기의 본산이다. 지금도 이곳에는 관 소속의 도공 14명이 청자를 빚어 ‘관요(官窯)’의 맥을 잇고 있다.
강진군은 23호 가마터 부근에 청자박물관과 판매점을 조성했다. 박물관 1층에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청자를 전시하고 있다. 강진은 2007년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고려시대 도자기 운반선이 발견되면서 주목 받았다. 선실 안에서 배와 함께 수장된 2만여점의 도자기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함께 있던 목간(木簡·종이가 발명되기 전 기록에 사용되던 나무조각)에 이 물건들이 지금의 강진인 탐진에서 생산된 것이라고 또렷이 적혀 있었다.
실제 강진군 대구면 일대는 고려청자의 주생산지로 9∼14세기에 걸쳐 500년 동안 청자를 생산하던 단지였다. 우리나라 국보급 청자의 80% 이상이 이곳에서 생산된 것만 보더라도 그 당시 이곳의 위세가 어땠을지는 짐작할 수 있다.
◇‘가고 싶은 섬’ 가우도
소의 멍에를 닮았다 해 ‘멍에 가(駕)자’에 ‘소 우(牛)자’를 써 가우도다. 강진만 8개의 섬 가운데 유일한 유인도로, 33명의 주민이 13가구를 이루고 살고 있다. 섬 둘레 2.5㎞, 면적 0.32㎢로 여의도의 9분의 1크기에 불과하다.
이 작은 섬이 주목을 받은 건 지난 2012년부터다. 섬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인도교가 개통되면서 관광명소가 됐다. 옛날에는 배를 이용해 섬을 드나들었지만, 지금은 2개의 출렁다리가 가우도를 잇고 있다. 418m 저도출렁다리와 716m의 망호출렁다리다. 출렁다리라고 불리지만 전혀 출렁이지 않는다. 대신 다리를 건너면 마음이 출렁인다고 귀띔한다. 2개의 다리 모두 자동차로는 갈 수 없다.
가우도는 향기의 섬이다. 바다와 숲, 사람의 향기가 어우러진 곳이다. 왼쪽으로는 가면 나무로 만든 테크길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흙길에 숲길이 이어진다. 어느 길로 가던지 1시간가량 걸으면 한바퀴 돌아 만나게 된다.
섬 정상에는 가우도의 명물 청자타워와 스릴만점 짚트랙을 만날 수 있다. 청자타워에서 출발하는 가우도 짚트랙은 대구면 저두해안까지 이어진다. 길이 973m로 국내 최대를 자랑한다. 활강시간 1분, 짚트랙에 오르면 누구나 슈퍼맨과 원도우먼이 될 수 있다. 바다 위를 나는 형용할 수 없는 짜릿함, 잊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강진=박정욱기자 jw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