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주(65) 작가는 지난 2001년 화순 쌍봉사 인근 산중에 집필실 ‘이불재’(耳佛齋)를 짓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서남해안 일대에 이순신 장군의 흔적이 숱하게 남아있는 것을 알게 됐다. 이후 작가는 10여 년간 유적지를 직접 답사하고 조선 왕조실록과 문중 문집 등 역사기록을 찾아 읽었다. 그런후에 전남도청 홈페이지를 통해 ‘이순신의 7년’을 2015년 1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157회에 걸쳐 연재했다. 8000여 매의 원고는 7권의 대하소설로 최근 완간됐다. 소설은 이순신이 전라좌수사로 부임하는 1591년부터 노량해전에서 전사하는 1597년 까지를 주 배경으로 한다. 작가는 ‘영웅 이순신’이 아니라 ‘인간 이순신’에 주목했다.

◇부하들이 눈물의 비석 ‘타루비’ 세워=“이순신 장군이 23전23승을 거둔 배경에 여수가 제일 중요해요. 전쟁준비를 한 1년이 없었으면 어떻게 23전 23승을 했겠냐고요. 여수의 가치는 1591년 1년에 있습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전) 1년 동안 여수 사람들이 뭘 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비밀병선 거북선도 그때 만들었고, (일본군이 부산포에 상륙하기) 이틀 전에 거북선 함포사격까지 마칩니다. 놀랍잖아요.“

정찬주 작가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서 전라좌수영 본영인 ‘여수’의 역할을 강조했다. ‘만약에’ 전라좌수영 여수에서 전쟁이 터지기 전 한 해 동안 준비를 하지 않았으면 전쟁의 양상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새로운 전함 거북선을 건조하고 무기와 군량을 확충하는 일련의 준비가 짧은 1년 동안 진행됐다.

작가는 기존 소설이나 드라마·영화에서 그려진 ‘영웅 이순신’이 아니라 ‘인간 이순신’으로 묘사했다. 진남관 임란유물전시관에서 좌수영 다리를 지나 고소대(姑蘇臺)까지는 400여m 거리. 고소대는 당시에 충무공이 군령을 내리던 곳이었다. 이곳에는 ‘인간 이순신’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유물이 남아있다. 정유재란이 끝난 지 6년이 흐른 1603년에 이순신 휘하에 있었던 좌수영 수군들이 충무공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자발적으로 세운 ‘타루비’(墮淚碑·보물 1288호)이다.

총높이 1.98m, 폭 58㎝, 두께 19㎝ 크기. 비문에는 “좌수영 수군들이 통제사 이순신을 위해 짤막한 비를 세우고 타루(墮淚)라 이름한다”는 내용이 한자로 새겨져 있다. 타루는 ‘눈물을 흘린다’는 의미다. 타루비는 중국 고사에서 유래했다. 진나라 때 양양 지방 백성들을 잘 보살핀 태수(양호)가 세상을 떠나자 주민들이 추모비를 세웠다. 그리고 언제나 비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기 때문에 타루비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타루비 왼쪽에는 1620년에 건립한 ‘통제이공수군 대첩비’(보물 571호·좌수영 대첩비)와 대첩비를 세운 경위와 애로를 기록한 ‘동령소갈’(東嶺小碣·1698년 건립) 비가 나란히 서 있다. 삼도 수군통제사에서 황해도관찰사로 자리를 옮긴 유형이 황해도 강음에서 구해 바닷길로 보낸 석재로 만든 비다.

대첩비와 타루비는 나라를 빼앗긴 일제강점기에 수난을 겪었다. 마쓰키라는 일본인 경찰서장이 1942년에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두 비석을 서울로 반출해 갔다. 이후 행방을 알 수 없었던 두 비석은 해방 이듬해인 1946년에 경복궁 근정전 앞뜰에 파묻혀 있는 상태로 발견됐다. 이에 여수 사람들이 앞장서서 두 비석을 되찾아와 현재 자리에 안치했다.

◇국내 최초로 세워진 이순신 사당 ‘충민사’=여수 마래산 남서쪽 산기슭(덕충동 1829)에 이순신 장군의 첫 사액(賜額) 사당인 충민사(忠愍祠·국가사적 381호)가 자리하고 있다. 경남 통영의 충렬사보다 62년, 충남 아산 현충사보다 103년 빠른 1601년(선조 34년)에 왕명으로 세워졌다. 이때 김응추(전라우도 수군절도사)와 전희광(목포만호), 송희립(금갑만호), 변홍달(가리포첨사) 등 수군 지휘관을 비롯해 이순신 휘하에서 함께 싸운 많은 장졸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당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전라우수사 의민공 이억기 장군, 보성군수 충현공 안홍국을 배향하고 있다. 의민공과 충현공은 이순신 휘하에서 싸운 장군들로, 칠천량 해전과 안골포 해전때 각각 전사했다. 본래 이곳은 임진왜란 전에 이 충무공이 장졸들과 함께 군사훈련을 했던 장소로 알려져 있다.

충민사 옆에는 석천사가 자리하고 있다. 흥국사를 중심으로 활발한 의승(義僧) 수군활동을 했던 삼혜대사(자운대장)와 의능대사(옥형)가 임진왜란이 끝난 3년 후인 1600년에 충민사 옆에 조그만 암자를 짓고 제사를 모신데서 비롯된 절이다. 충민사 사당 뒤편에 ‘석천’(石泉)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석천위 커다란 바위에서 뿌리를 내린 소나무와 느티나무는 국난을 극복한 여수인들의 기상을 대변하는 듯하다.

◇어머니 모셔와 보살핀 ‘충무공 자당 기거지’=“흐리나 비는 오지 않았다. 아침에 어머니를 뵈려고 배를 타고 바람을 따라 바로 고음천(여수시 시전동 웅천동 송현마을에 있는 하천)에 도착했다. 남의길과 윤사행이 조카 분과 함께 갔다. 어머니께 배알하려하니 어머니는 아직 잠에서 깨지 않으셨다. 큰소리를 내니 놀라 깨어서 일어나셨다. 숨을 가쁘게 쉬시어 해가 서산에 이른 듯하니 오직 감춰진 눈물이 흘러내릴 뿐이다. 그러나 말씀하시는 데는 착오가 없으셨다….”(노승석 옮김 ‘난중일기’ 1594년 1월 11일)

이순신은 충청도 지방까지 전란에 휩싸이자 1593년 5월께 어머니(초계 변씨 부인)와 아내(방씨 부인), 아들, 조카 등을 창원 정씨 집성촌인 송현마을 정대수 장군의 집으로 옮겨와 생활하게 한다. 이순신 장군 어머니가 사시던 곳(충무공 자당 기거지·여수시 지정 문화유산 1호)은 웅천지구내 송현 초등학교와 웅천 사랑으로 부영 1차 아파트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여수시는 지난 2015년에 개인주택을 매입해 역사자료를 토대로 복원했다.

한편 여수 시민들은 전라좌수영을 중심으로 한 조선 수군이 임진왜란의 첫 승리(옥포해전)와 마지막 승리(노량해전)를 모두 거뒀다는 자긍심이 있다. 여수시와 (사)여수 진남거북선축제 보존회는 전라좌수영의 호국문화를 재연해 자주정신을 함양하기 위해 1967년부터 52년째 ‘거북선 축제’를 개최해오고 있다. 올해 축제는 ‘이 충무공의 얼, 여수 밤바다에 물들다!’라는 주제로 5월 4일부터 6일까지 사흘간 이순신 광장과 종포 해양공원에서 열린다.



/글·사진=송기동기자 song@

/여수=김창화기자 ch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