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 보면 압니다’

아는 분들은 알 만한 철 지난 유행어이다. 한참 동안 유행했던 유행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얼마 전 있었던 일 때문이다.

얼마 전 아버지께서 전화를 하셔서, 누군가가 밤 사이에 차로 집 앞에 세워둔 아버지 차의 뒷문부터 앞문까지 긁고 줄행랑을 쳤다고 말씀하셨다.

처음에 들었을 때는 말 그대로 ‘긁고’ 간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조금 뒤 아버지께서 보내주신 사진을 보니 그게 아니었다. 긁은 게 아니라 ‘박은’ 것에 가까웠다.

조수석 아랫부분이 움푹 패여 있었다. 긁힌 줄 알았는데 박힌 것이란 사실을 확인하니 열이 확 났다.

아버지께서는 블랙박스를 확인해 그날 새벽 1시 40분 무렵 하얀색 차가 사고를 내고 가는 모습까지는 확인하셨으나, 아쉽게도 블랙박스 화면으로는 차량 번호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미 경찰에 신고했고, 담당 수사관이 주변 방범 카메라 영상 등을 확인해 그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했으니 기다려보자고 하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쉽게 범인이 잡힐 줄 알았다.

부모님 댁은 주택가의 한가운데 있기 때문에 새벽 그 시간에 그 좁은 곳을 지나는 차라면 그 인근에 사는 사람의 차량일 것이고, 담당 수사관은 블랙박스를 보고 어떤 차종인지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변에 등록된 차량을 확인하고, 근처 방범 카메라 영상을 확인하면 아버지 차에 몹쓸 짓을 하고 간 범인을 잡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며칠째 감감무소식이었다. 차는 아버지가 가입하신 보험회사를 통해 수리했고, 사람이 다치지는 않았으니 다행이긴 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니 괘씸한 생각도 차차 희미해졌다.

그러다가 며칠 전 아버지로부터 범인을 잡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담당 수사관이 이야기하길, 범인은 남구에 사는 사람이란다. 범인이 우리 집 근처에 있을 거라 생각한 나의 추리는 완전히 빗나가 버렸다.

그런데 뒤이어 하시는 이야기는 더 놀라웠다. 사고 며칠 뒤 담당 수사관이 혹시 블랙박스에 찍힌 시간이 정확한 것인지 물었다고 한다.

아버지께서 확인해 보니 25분이 늦더란다. 그렇다면, 사고 시각은 그날 새벽 2시 5분 무렵이니 담당 수사관은 다시 한 번 이 시간을 중심으로 10분 앞뒤의 주변 방범 카메라의 영상을 확인해 보았고, 결국 용의 차량을 확인해 범인을 잡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실로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사실 나는 사고 후 며칠이 지나자 범인을 잡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고 현장에 CCTV가 없거나 자신 또는 주변에 주차됐던 차량에 블랙박스가 설치돼 있지 않으면 대부분 미제 사건이 된다는데 사고 시각을 착각해 자칫하면 미제 사건이 될 뻔했음에도, 담당 수사관의 번뜩이는 재치로 범인을 잡게 된 것이다.

개정된 도로교통법에 따라 범인은 20만 원 이하의 벌금과 벌점 25점을 받을 것이다. 정의가 실현돼 기쁘다. 지면을 빌어 광주북부경찰서 교통과의 담당 수사관께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참고로 주차장 뺑소니가 아닌 일반 뺑소니 교통사고의 검거율은 98%에 이른다고 하니, 사고 후 혹시나 잘못된 마음을 먹는 분이 없도록 말씀 드린다.

나는 ‘척 보면 압니다.’라는 마음으로 범인이 근처의 사람일 거라고 추리했으나 보기 좋게 빗나갔고, 다시 한 번 섣불리 결론을 내는 성급함을 경계해야 한다는 사실을 또 깨닫게 됐다. 그런데 왜 범인은 하필 그 시간에 그 골목을 지났을까? 궁금하기는 하나 섣부른 추리는 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