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고대 바빌로니아의 왕 함무라비가 편찬한 법전에 쓰여 있다는 말이다. 받은 대로 갚아 주는 것이 정의에 부합한다는 인간의 원초적인 법 감정을 거칠게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죄수의 딜레마’에 대해서도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것이다. 공범으로 잡힌 두 명의 용의자는 자백 또는 부인 전략을 택할 수 있는데, 둘 모두 부인하는 경우가 최선의 선택이지만, 상대방의 선택을 모르는 상황에서는 결국 둘 다 자백을 하게 돼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최악인 선택을 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게임이 반복되는 상황에서는 상대방이 배신(자백)하는 경우, 나도 배신(자백)하는 전략을 택하는 것이 서로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게임 이론의 실험 결과를 보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정의 구현에 효과적인 것 같다.

이야기가 많이 엇나갔다. 요사이 ‘미스 함무라비’라는 드라마를 재미있게 시청중이다. 현직 부장 판사가 쓴 소설을 토대로 만든 드라마인데, 판사가 주인공이다. 법정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여럿이지만, 판사가 주인공인 드라마가 별로 없고, 검사·경찰이 주인공인 드라마인 경우 비현실적인 설정이 많아 현실감이 떨어져 그리 몰입할 수 없던 차에 정말 재미있게 보고 있다.

드라마를 보면서, 다시 한 번 소설도 펴 보았다. 여러 개의 에피소드가 모두 다 흥미롭지만 다시 보니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을 예견한 듯한 에피소드도 있어 깜짝 놀랐다.

‘헬조선 항공의 풍경’이라는 에피소드인데, 주인공 박차오름 판사의 대사를 통해 지금 한창 문제 되고 있는 항공사와 관련된 일련의 문제들을 거의 모두 다 예언했다. 일감 몰아주기, 회사 비용으로 오너 일가의 가정부·운전기사·안마사 월급 지급하기, 법인 카드로 개인 생활비 지출하기 등의 문제점들을 말이다. 아니 놓친 것도 있다. 수입 제철 과일 밀반입 같은 것을 어찌 상상이나 했을까.

소설 중간 중간 ‘판사의 일’이라는 코너를 통해 일반인은 잘 알지 못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나 전관예우에 관한 솔직한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그 중에는 좌배석, 우배석에 관한 이야기도 있는데, 변호사 개업 초에는 내가 봤을 때 재판장의 왼쪽에 앉아 있는 배석판사가 좌배석인지 아닌지 헷갈리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방청석이 아니라 재판장의 입장에서 좌·우를 가리는 게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때는 방청석에서 바라보는 입장도 그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전관예우에 관한 에피소드도 있다. 법원은 실제로 공정해야 할 뿐만 아니라 겉으로 보기에도 공정해 보여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소설에 등장하는 브로커는 실제로 썩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썩은 것처럼 보이느냐가 중요한 것이라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알아서 사고 쳐주는 사람들이 신문을 장식해 주지 않느냐고 말한다. 지금 지난 대법원 시절 있었던 일들로 시끄러운 현 상황에 비추어 보면 그냥 흘려보내기만은 어려운 대목이 아닐까 싶다.

드라마와 책을 통해 판사와 법원 직원의 고뇌, 번민, 생활 등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물론 재미도 있었다. 시청률이 높아지거나 책이 많이 팔려도 내게 무슨 이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되도록 많은 분들이 읽거나 봐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