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진학을 위해 학교 행정실 직원과 공모하여 시험지를 빼돌리고, 빼돌린 시험 문제를 편집해서 아들에게 미리 공부를 시킨 후, 본래 실력에 비해 월등이 뛰어난 성적을 받게끔 한 엄마의 엇나간 애정이 우리 지역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정한 대상에 대해 도를 넘어 지나친 애정을 보이는 것을 집착이라고 합니다. 문제의 엄마는 자식의 앞날을 위해 순간 눈이 멀었다라고 심정을 이야기할 런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과연 자식의 장래를 위해서만 그처럼 무리한 행동을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주변의 눈을 의식해서, 또는 자녀의 인생이 적절히 풀리지 못했을 때 자신이 감내해야 할 인생의 무게를 회피하고 싶어서는 아니었을까요? 어쩌면 집착은 목적 대상에 대한 지나친 애정을 빙자하여, 자신의 욕망과 욕심을 해소하려는 비정상적인 심리의 상태가 아닐까 싶습니다.

널리 알려진 영화는 아니지만 부모의 자녀에 대한 빗나간 집착을 소재로 한 ‘4등’이라는 수작(감독 정지우)이 있습니다. 두 아들을 둔 한 엄마는 큰 아들을 수영 선수로 성공시키고 싶어 아들이 수영 감독에게 폭행을 당하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용인합니다.

만년 4등으로 메달을 따지 못하는 큰 아들의 앞날을 위해 참아야 한다는 명분을 앞세워서 말입니다. 결국 전국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큰 아들은 이 후 더 이상 매를 맞지 않고 수영을 즐기면서 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1등을 목표로 하는 감독의 폭행은 더 심해집니다. 역시 엄마는 이를 묵인하고, 체벌을 참지 못한 큰아들은 수영복 차림으로 수영장을 도망칩니다. 그리고 엄마에게 수영을 그만두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 순간 엄마의 본심이 담긴 말이 튀어나옵니다. ‘누구 맘대로 그만 둬. 엄마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니가 그만 둔다고 하면 그만 둘 수 있다고 생각해?’

아빠의 도움으로 수영을 그만둔 큰아들에 대한 엄마의 집착은 둘째 아들에게 향하고, 둘째 아들을 공부로 성공시키기 위한 엄마의 집착은 큰아들에게 가졌던 꿈이 물거품이 된 만큼 더 집요해 집니다. ‘나는 엄마의 희망이다.’라는 말을 등하교길이나 학원을 통학시키면서 반복시키기까지 합니다. 형에게 집중되었던 엄마의 관심이 자신에게 돌아온 상황에 잠시 행복해 했던 둘째 아들은 ‘차라리 형이 다시 수영을 시작했으면 좋겠어.’라고 말합니다.

이 영화에서 감독은 삶의 변화가 클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극복하고 본래 꿈꾸었던 자신의 삶을 대리 실현하는 방법으로 자녀를 성공시키고 싶어 하는 엄마의 모습과 그러한 집착으로 인해 인생을 담보 잡히는 자녀들의 모습을 현실감 있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집착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우리는 얼마 전 박근혜 정부 당시 촛불 시위를 해산시키기 위해 계엄을 고려했던 기무사 문건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단순히 사회 소요 상황을 제압할 계획을 넘어, 국회의 계엄 해제를 막기 위해 당시 야당 국회의원들을 실정법 위반으로 구속해서 계엄 해제 의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게 하려는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웠다는 것에 필자는 법률가로서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작금과 같이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마치 그 오래 전 유신을 수호하려던 군부의 망령이 되살아나려 했다는 끔찍한 시도를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계엄을 준비했던 사람들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 나라의 안정을 위해, 불안정한 안보 확보를 위해서였다고 항변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삐뚤어진 집착의 이면에는 앞서 본 바와 같이 자신들의 욕망, 욕심을 만족시키기 위한 질척하고 검은 심리를 숨기고 있었다는 것을 모를 사람은 없겠지요. 결국 엇나간 집착으로 인해 쌓은 업보는 모두 자신들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그것이 시험지를 빼돌린 엄마든,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던 기무사의 누군가이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