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의 억울한 사람도 없기를
2018년 11월 19일(월) 00:00 가가
[송창운 변호사]
피고인은 무죄. 재판관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올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재판관은 ‘피고인을 징역 3월에 처하면서 집행을 3년간 유예’하는 내용의 판결을 선고했다. 피고인은 마음 속으로 이 법정에서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자신 뿐이고, 자기가 무죄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재판관이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도 알고 있으며, 법정은 유죄·무죄의 증거를 모아 유무죄를 임의로 판단하는 곳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부디 당신이 심판받기를 원하는 그 방법으로 나를 심판해 주시기를’이라는 자막으로 끝난다. 지난 2006년 개봉한 영화 ‘그래도 나는 하지 않았다.’ 중 일부 내용이다.
1961년 8월 22일 밤 9시 영국의 한 남녀가 차 안에서 데이트를 하다, 복면을 쓴 강도를 만난다. 남녀는 4시간이 넘게 끌려다니다가 다음날 새벽 1시 반에 남성은 범인이 쏜 총에 사망한다. 여성은 몹쓸 짓을 당한 뒤 여러 발의 총알을 맞았으나, 기적적으로 살아난다.
용의자는 사건 두 달 뒤쯤 체포되었는데, 범행에 사용된 총과 탄창이 발견이 되었으나 지문은 없었다. 경찰은 범인 식별 절차에서 용의자들에게 한 마디씩을 하게 하였고, 여성은 제임스 핸래티라는 이름의 남자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핸래티는 알리바이를 입증하기 못했고, 진술을 번복하기도 했다. 그러나 범행 동기를 설명하기 어려웠고, 그에게 절도 전과 등 자잘한 전과가 있기는 하였으나, 폭력 전과는 없었다.
지문이나 디엔에이 등 법의학적인 증거도 없었다. 피해 여성의 증언이 가장 중요한 증거였다. 핸래티는 무죄를 주장했으나, 이듬해 사형을 선고받고, 항소 기각 판결 6주 뒤 교수형을 당했다. 이후 40년 동안 영국은 이 사건의 판결이 옳은가 하는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2001년 현대의 최첨단 과학 기술의 도움을 얻어 당시 증거물 속옷 속에 남아 있던 DNA와 핸래티의 무덤을 열어 채취한 DNA가 일치하자 당시 판결이 옳다는 것이 밝혀졌다.
하나는 영화이고, 다른 하나는 영화 같은 이야기다. 한 이야기는 무죄인 사건을 유죄로 판단했으나, 다른 이야기는 결국 판결이 옳다는 게 밝혀졌다. 그러나 40년 동안 진위 불명의 상태가 계속되어, 혼란은 계속되었다. 두 이야기 모두 다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열 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면 안 된다. 형사 소송법이 말하는 ‘합리적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법언(法言)도 모두 다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일 것이다. 그렇더라도 ‘열 명의 범인도 놓치지 않으면 좋겠다.’는 게 우리의 법 감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정재승 교수는 ‘열 두 발자국’이라는 제목의 책에서 인간의 저지르는 오류를 소개한다. ‘아닌 것을 맞는 것으로 또는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판정하는 오류’가 제1종 오류이고, 이와 달리 ‘맞는 걸 아니라고 하거나, 있는 데도 없다고 판정하는 오류’가 2종 오류이다.
그런데 제2종 오류가 우리 삶에 더 치명적이라고 한다. 천적이나 위험이 있는데도 없다고 판단하면 생존에 큰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뇌는 제2종 오류에 훨씬 민감하다고 한다.
이를 판결에 대입하면 실제로는 죄를 지었는데도, 죄를 짓지 않았다고 판단하는 것은 제2종 오류에 해당할 것이다. 그리고 그 혐의가 무거울수록 우리 사회가 감수해야 하는 위험은 더 커질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그 혐의에 비례해 입증의 정도를 완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판사들은 형사 소송법의 대원칙과 인간의 본능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강제 추행죄로 피고인이 징역 6월의 실형을 받은 이른바 곰탕집 사건으로 말이 많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나오는 것처럼 인간이 저지를 지도 모르는 죄를 예측해 범죄를 예방하는 것은 상상 속의 일일지 모르지만, 언젠가 뇌 과학이 발달하면 인간의 뇌를 직접 조사해 그가 가진 기억을 추출하여 유무죄 여부를 가릴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런 날이 온다면 열 명의 범인을 놓치지도 않고, 한 명의 억울한 사람도 만들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어서 빨리 그런 날이 오길 기대해본다.
용의자는 사건 두 달 뒤쯤 체포되었는데, 범행에 사용된 총과 탄창이 발견이 되었으나 지문은 없었다. 경찰은 범인 식별 절차에서 용의자들에게 한 마디씩을 하게 하였고, 여성은 제임스 핸래티라는 이름의 남자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지문이나 디엔에이 등 법의학적인 증거도 없었다. 피해 여성의 증언이 가장 중요한 증거였다. 핸래티는 무죄를 주장했으나, 이듬해 사형을 선고받고, 항소 기각 판결 6주 뒤 교수형을 당했다. 이후 40년 동안 영국은 이 사건의 판결이 옳은가 하는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2001년 현대의 최첨단 과학 기술의 도움을 얻어 당시 증거물 속옷 속에 남아 있던 DNA와 핸래티의 무덤을 열어 채취한 DNA가 일치하자 당시 판결이 옳다는 것이 밝혀졌다.
열 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면 안 된다. 형사 소송법이 말하는 ‘합리적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법언(法言)도 모두 다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일 것이다. 그렇더라도 ‘열 명의 범인도 놓치지 않으면 좋겠다.’는 게 우리의 법 감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정재승 교수는 ‘열 두 발자국’이라는 제목의 책에서 인간의 저지르는 오류를 소개한다. ‘아닌 것을 맞는 것으로 또는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판정하는 오류’가 제1종 오류이고, 이와 달리 ‘맞는 걸 아니라고 하거나, 있는 데도 없다고 판정하는 오류’가 2종 오류이다.
그런데 제2종 오류가 우리 삶에 더 치명적이라고 한다. 천적이나 위험이 있는데도 없다고 판단하면 생존에 큰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뇌는 제2종 오류에 훨씬 민감하다고 한다.
이를 판결에 대입하면 실제로는 죄를 지었는데도, 죄를 짓지 않았다고 판단하는 것은 제2종 오류에 해당할 것이다. 그리고 그 혐의가 무거울수록 우리 사회가 감수해야 하는 위험은 더 커질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그 혐의에 비례해 입증의 정도를 완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판사들은 형사 소송법의 대원칙과 인간의 본능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강제 추행죄로 피고인이 징역 6월의 실형을 받은 이른바 곰탕집 사건으로 말이 많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나오는 것처럼 인간이 저지를 지도 모르는 죄를 예측해 범죄를 예방하는 것은 상상 속의 일일지 모르지만, 언젠가 뇌 과학이 발달하면 인간의 뇌를 직접 조사해 그가 가진 기억을 추출하여 유무죄 여부를 가릴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런 날이 온다면 열 명의 범인을 놓치지도 않고, 한 명의 억울한 사람도 만들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어서 빨리 그런 날이 오길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