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성보박물관 : 서산대사 호국정신·초의선사 다도사상 … 고승대덕들의 가르침
2019년 08월 14일(수) 04:50 가가
서산대사 충혼 서린 유물관...추사 김정희 진본 서체 압도
초의선사 손길 깃든 저서와 다구, 범종·탱화 등 명품 감상
초의선사 손길 깃든 저서와 다구, 범종·탱화 등 명품 감상
한낮의 무더위가 한풀 꺾였다하지만 여전히 땡볕이다. 바늘끝처럼 따가운 햇살을 정면으로 받으며 걷는 길은 그 자체로 수행이다. 삶이 곧 수행이다. 삶을 살아내기 위해선 더러는 뙤약볕을 걸어야 하고, 장대비 속을 뚫어야 하며, 눈보라치는 들판을 거슬러 가야 할 때도 있다. 소리죽여 눈물을 흘려야 할 시간도 있다.
그러니, 우리의 수행은 생이 다하는 날까지 지속되는 거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저마다 주어진 정진을 피할 수는 없다. 회피는, 더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기에 각자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럼에도, 고집(苦集)에서 벗어나 멸도(滅道)에 이르는 길은 정녕 사바의 사람들에겐 난제일까. 생로병사와 번뇌의 사슬은 속다짐만으로는 어려운 일인가보다.
오늘의 목적지는 해남 대흥사(주지 법상)의 성보박물관(聖寶博物館)이다. 금동여래좌상, 탑산사동종, 묘법연화경목판, 영산회상괘불도, 사가록정선, 화상당명병서, 교지와 같은 유물을 알현하는 것이다. 오늘의 대흥사는, 서산대사와 초의선사 그리고 성보박물관이 핵심 토대가 됐다. 유서 깊은, 더러는 장엄하고, 더러는 찬란한 문화재에 고승대덕의 불심과 법어가 함께하니 비할 데 없이 도탑다.
대흥사 천년 숲에 들어서자, 시원한 그늘이 발걸음을 붙잡는다. 여기가 극락이다. 불볕이 사그라들고 구곡 옥류가 귀를 씻어준다. 숲의 어디선가 뻐꾸기가 아는 체를 한다. 뻐꾹. 뻐꾹. 반갑다는 인사려니 싶다. 하오의 햇살을 비껴 떨어지는 소리의 울림이 애잔하다. 구슬이 굴러가듯 시냇물에 리듬을 타고 흘러간다. 소리에는 공명이 있어 절로 화음을 만들어낸다.
다시 들려오는 뻐꾸기의 울음. 조금 전 소리는 수인사였나 싶더니, 이번에는 목청에서 애잔한 기운이 느껴진다. 필경 울음을 토해내는 것이리라. 아니다. 이쪽에서 보면 울음이겠지만, 뻐꾹새는 수인사도, 울음도 아닌, 노래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세상 삼라만상이 나를 중심으로 도는 것 같아도 종내는 그렇지 않다. 이편의 생각과는 무관하게 뻐꾸기는 우는 것일 터. 저편의 입장에서 보면 세상은 전혀 다른 궤도로 움직인다. 생이 고달픈 건 서로 다른 궤도와 서로 다른 지향이 맞물리기 때문이리라.
아무려면 어떤가. 그 또한 수행의 과정이다. 이제 보니 하안거(夏安居) 묵언정진이니 언행심을 삼가라는 뜻이렷다! 하안거 해제일이 코앞이다. 침묵을 이어가던 뻐꾸기가 다시 부리를 읊조린다. 옥계수 흘러가듯 뻐꾸기 소리가 정적을 깨운다. 반야교 너너머 은하에 흩어지는 소리일런지.
시종일관 두륜산 뻐꾹새는
苦集 滅道만 토하니
苦集 滅道가 뭔 말인지
뜻이나 알고 토하는가
苦集 滅道 苦集 滅道
苦集 滅道 苦集 滅道
두륜산 뻐꾹새가 토하는
苦集 滅道가
동국선워니 묵언 정진하는데
도움이 되나
하안거 중인 동국선원은
묵언 정진이나
두륜산 뻐꾹새는
묵언 정진과 거리가 멀다
(김재석 ‘두륜산 뻐꾹새’ 중에서)
해탈문을 들어서면 경내가 훤히 열린다. 차향 가득한 동다실에 잠시 눈길을 두다, 무염지로 방향을 튼다. 온유하고 소쇄한 풍경에 마음이 푸근해진다. 풍진(風塵)에 물들지 말라는 연못의 뜻을 아로새기며 곧장 성보박물관으로 향한다. 웅장하면서도 단아한 박물관은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룬다.
안으로 들어선다. 일층에는 다양한 현판이 전시돼 있다. 조선 당대 명필의 글씨가 쟁쟁하다. 추사 김정희의 ‘無量壽閣(무량수각)’ ‘東國禪院(동국선원)’ ‘一爐香室(일로향실)’ 등 현판 글씨는 자부와 오만을 뛰어넘는 예술혼이 느껴진다. 그의 글씨는 경지를 무너뜨린 자유자재의 획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다름아닌 탑산사 범종이다. 고려시대 범종(높이 79cm, 입지름 43cm)으로 본래 탑산사에 있던 종인데 일제강점기 만일암(晩日庵)으로 옮겨졌다가,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일명 대흥사 동종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종의 상부 천판위에 부착되어 있는 용뉴(龍紐)는 정교하게 처리되어 매우 사실적이고 박력있는 용두(龍頭)를 갖추었고, 앞으로 힘있게 뻗은 왼편 발에는 여의주를 잡고 있는 등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일층에서 이층으로 향하는 복도 벽면에는 ‘법신중위회삼십칠존도’(法身中圍會三十七尊圖) 탱화가 걸려 있다. 월우스님은 “법신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동방 아촉불, 남방 보생불, 서방 관자재불, 북방 불공성취불을 모셨으며 또한 32보살이 배치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초의선사께서 대광명전을 신축한 후에 지우였던 추사가 하루빨리 해배되기를 기원하는 심정으로 화주를 권선했다”며 “추사의 제자인 위당 신관호가 시주해 조성된 탱화”라고 덧붙였다.
이층에는 서산대사 유물관이 따로 마련돼 있다. 금란가사와 발우, 염주, 법라, 호패 등의 유물은 대사의 충혼을 엿볼 수 있는 귀한 자료다. 선조가 서산대사에게 내린 교지와 친서 등도 꼭 기억해야 할 유물이다.
맞은편 초의관에서는 ‘동다송’ 등을 비롯한 다양한 저서와 다구를 만나니, 대흥사의 서향과 격조를 짧은 순간이나마 느낀 것 같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그러니, 우리의 수행은 생이 다하는 날까지 지속되는 거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저마다 주어진 정진을 피할 수는 없다. 회피는, 더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기에 각자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럼에도, 고집(苦集)에서 벗어나 멸도(滅道)에 이르는 길은 정녕 사바의 사람들에겐 난제일까. 생로병사와 번뇌의 사슬은 속다짐만으로는 어려운 일인가보다.
아무려면 어떤가. 그 또한 수행의 과정이다. 이제 보니 하안거(夏安居) 묵언정진이니 언행심을 삼가라는 뜻이렷다! 하안거 해제일이 코앞이다. 침묵을 이어가던 뻐꾸기가 다시 부리를 읊조린다. 옥계수 흘러가듯 뻐꾸기 소리가 정적을 깨운다. 반야교 너너머 은하에 흩어지는 소리일런지.
시종일관 두륜산 뻐꾹새는
苦集 滅道만 토하니
苦集 滅道가 뭔 말인지
뜻이나 알고 토하는가
苦集 滅道 苦集 滅道
苦集 滅道 苦集 滅道
두륜산 뻐꾹새가 토하는
苦集 滅道가
동국선워니 묵언 정진하는데
도움이 되나
하안거 중인 동국선원은
묵언 정진이나
두륜산 뻐꾹새는
묵언 정진과 거리가 멀다
(김재석 ‘두륜산 뻐꾹새’ 중에서)
해탈문을 들어서면 경내가 훤히 열린다. 차향 가득한 동다실에 잠시 눈길을 두다, 무염지로 방향을 튼다. 온유하고 소쇄한 풍경에 마음이 푸근해진다. 풍진(風塵)에 물들지 말라는 연못의 뜻을 아로새기며 곧장 성보박물관으로 향한다. 웅장하면서도 단아한 박물관은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룬다.
안으로 들어선다. 일층에는 다양한 현판이 전시돼 있다. 조선 당대 명필의 글씨가 쟁쟁하다. 추사 김정희의 ‘無量壽閣(무량수각)’ ‘東國禪院(동국선원)’ ‘一爐香室(일로향실)’ 등 현판 글씨는 자부와 오만을 뛰어넘는 예술혼이 느껴진다. 그의 글씨는 경지를 무너뜨린 자유자재의 획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다름아닌 탑산사 범종이다. 고려시대 범종(높이 79cm, 입지름 43cm)으로 본래 탑산사에 있던 종인데 일제강점기 만일암(晩日庵)으로 옮겨졌다가,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일명 대흥사 동종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종의 상부 천판위에 부착되어 있는 용뉴(龍紐)는 정교하게 처리되어 매우 사실적이고 박력있는 용두(龍頭)를 갖추었고, 앞으로 힘있게 뻗은 왼편 발에는 여의주를 잡고 있는 등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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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신중위회삼십칠존도 |
일층에서 이층으로 향하는 복도 벽면에는 ‘법신중위회삼십칠존도’(法身中圍會三十七尊圖) 탱화가 걸려 있다. 월우스님은 “법신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동방 아촉불, 남방 보생불, 서방 관자재불, 북방 불공성취불을 모셨으며 또한 32보살이 배치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초의선사께서 대광명전을 신축한 후에 지우였던 추사가 하루빨리 해배되기를 기원하는 심정으로 화주를 권선했다”며 “추사의 제자인 위당 신관호가 시주해 조성된 탱화”라고 덧붙였다.
이층에는 서산대사 유물관이 따로 마련돼 있다. 금란가사와 발우, 염주, 법라, 호패 등의 유물은 대사의 충혼을 엿볼 수 있는 귀한 자료다. 선조가 서산대사에게 내린 교지와 친서 등도 꼭 기억해야 할 유물이다.
맞은편 초의관에서는 ‘동다송’ 등을 비롯한 다양한 저서와 다구를 만나니, 대흥사의 서향과 격조를 짧은 순간이나마 느낀 것 같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