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산을 뒤에 두고 너른 평야가 펼쳐졌다. 논밭을 가운데 끼고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꼬불꼬불’ 고부라진 들녘 길을 빠져나오자 바다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다와 마을 사이 논밭에서 갖가지 농작물이 자라고 있다. 완벽한 농어촌마을의 고즈넉한 풍경. 해남군 북평면 영전마을과 남전마을의 첫 인상이다.

184가구 347명이 모여 살고 있는 영전과 남전마을은 해남에서도 제법 큰 마을로 꼽힌다. 바다를 끼고 있으면서도 평야가 많아 마을주민 대다수가 농업과 어업을 함께 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어촌마을이다. 땅에서는 벼와 배추, 양파를 거둬들이고, 바다에서는 양식으로 돌김과 전복을 건져 올린다. 땅과 바다가 주는 넉넉함 때문인지 이 마을 주민들은 여유와 인심이 넘친다.

“바다와 평야를 낀 마을이죠. 농업과 어업을 겸하고 있어 예부터 먹고 살기 수월한 편입니다. 주민들 모두 온순하고 텃세도 없어 요즘엔 청년들도 다시 돌아오고 있어요.”

마을 주민의 말처럼 영전·남전마을에는 타지로 나갔던 50여명의 청년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삶의 터전을 잡았다. 마을을 뛰노는 어린 아이들도 쉽게 볼 수 있다. 활력을 잃어가는 다른 농어촌과 다르게 마을 전체가 생동감 넘치는 이유기도 하다.

주민들은 주로 돌김과 전복 양식을 하고 있지만, 때때로 배를 타고 나가 낙지와 갑오징어, 숭어도 잡아들이고 있다. 봄과 가을철이면 씨알이 굵은 돔도 그물에 걸리고, 통발을 놓으면 돌문어도 제법 잡힌다. 조석간만의 차가 커서 조개와 바지락도 많고, 잡히는 생선들의 육질도 찰지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수산물의 상품가치가 높은 이유는 또 있다. 오·폐수가 흘러들 염려가 없고, 해마다 올라오는 태풍이 바다를 정화시켜줘 마을 앞바다가 늘 청정해역을 유지하고 있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영전·남전마을은 늦여름과 초가을 북상하는 태풍을 직면하는 지역으로 피해를 벗어날 수 없다. 태풍은 양식장의 파손과 농작물 피해는 물론, 자칫 생명까지 앗아갈 수 있는 두려운 존재지만 바다를 정화해주는 귀한 손님이기도 하다. 거칠게 밀려오는 파도에 밑바닥 갯벌이 한바탕 뒤집어지면서 풍성한 생명을 만들어내고 있다.

마을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달마산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남도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달마산은 산행하기엔 거칠지만 해안 경관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알려져있다.

이밖에 땅끝마을에서 영전까지 이어지는 국도 77호선 해안도로는 서남해 다도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하다. 땅끝마을에서 서울까지 1000리가 되는 ‘삼남길’이 지나는 길목 마을이기도 한 영전·남전마을에서는 서해 낙조의 진수를 볼 수 있다.

비록 영전과 남전으로 이름이 나뉘어 있지만 두 마을은 본디 한 마을이나 다름없다. 특히 주민 모두가 참여하는 마을잔치가 자주 열리는 것도 독특한 점이자 자랑거리다.

한 달에 한번 정도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음식을 나누는 등 끈끈하고 단단한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마을행사를 열고 정을 나누고 있는 덕분에 해남에서 가장 단합과 협동이 잘되는 마을로도 칭찬이 자자하다.

600년 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도제(헌식제)를 비롯해 크고 작은 모든 행사를 두 마을이 함께 치르고 있다. 오랜 세월을 함께한 만큼 두 마을의 우정도 돈독할 수밖에 없다.

마을의 도제는 음력 1월 14일 지내고 있는데, 두 마을 어촌계장이 제물을 준비해 선창에 모여 풍어를 기원한다. 김 양식을 많이 하고 있어 특별히 김도 올린다. 제를 올리고 난 뒤 두 마을 주민 모두가 모여 춤을 추고 음식을 나눠먹으며 한바탕 놀이를 즐긴다. 도제는 빼놓을 수 없는 마을의 문화이자 축제다.

그도 그럴 것이 6·25 한국전쟁 때 주변 마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는데, 제를 잘 지냈던 두 마을에서는 죽은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한번은 ‘번거롭다’는 이유로 보름날이 아닌, 설 명절에 도제를 지낸 적이 있었다. 그러자 마을의 유능한 젊은이 2~3명이 갑작스레 죽었다. 그 후 도제를 다시 보름날 지냈더니 지금까지 마을에 변고가 없다고 전해진다. 이 때문에 도제를 빼놓지 않고 있으며, 마을이 평온한 이유라고 믿고 있다.

/박기웅 기자 pboxer@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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