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100년의 시간 간직한 곳…일본식 가옥에 녹아있는 삶의 흔적
뉴트로 감성 그대로 대전 소제동 골목
일제강점기·근현대사적 가치 간직
활력 잃은 원도심에 청년문화 새 숨결
역사에 문화 입힌 ‘소제동 아트벨트’ 주목
2020년 06월 25일(목) 00:00

대전 동구 소제동 철도관사촌. 일본식 가옥 외관을 갖췄지만 오랜 기간 대전 시민의 삶이 녹아 있어 근현대사적 가치를 품고 있다. <씨엔씨티마음에너지재단 제공>

대전의 역사는 철도 발달과 맥을 같이 한다. 1905년 경부선이 개통되면서 대전의 발전이 시작됐다. 당시 대전은 한적한 농촌이었지만 역이 생기면서 주변에 우체국과 학교, 시장 등 각종 기반 시설이 들어서게 됐다. 넓은 밭이라는 의미로 ‘한밭’으로 불리던 대전은 일제강점기 철도부설지로 결정되면서 188명의 일본인 철도기술자들이 거주하게 됐다. 역 주변에는 새로운 도시가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대전천과 대동천의 합류 지점은 새로운 문화가 시작됐다. 현재의 대전역 동광장 너머 소제동 이야기가 이렇게 시작된다.



◇100년 이어 온 삶 터전·근대 유산

소제동은 철도 관계자들이 많이 거주해 ‘철도관사촌’으로 불렸다. 축구장 일곱 배 크기의 소제호를 메워 마을이 만들어졌다. 한 때 100여 채에 달했던 관사촌은 6·25의 상흔으로 이젠 30여 채가 남아 역사를 잇고 있다. 대전역 인근 ‘솔랑시울길’ 이정표를 따라 골목을 걸으면 관사촌이 눈앞에 펼쳐진다.

다다미방의 흔적이 남은 일본식 가옥의 지붕에는 관사 번호판이 걸려 있는 곳이 더러 있다. 현재로 치면 아파트의 ‘동호수’다. 도코노마(다다미방의 장식 공간), 도코바시라(도코노마의 장식 기둥), 오시이레(붙박이장) 등과 같은 일제강점기 주택 요소들이 아직 남아있다.

누군가는 왜색 짙은 ‘구시대의 산물’이라고 하지만 철도관사촌은 한국근현대사 속 대전의 옛 모습을 오롯이 품고 있다. 한국전쟁 후에는 일본인들의 역사보다는 한국 사람들의 생활에 관련된 삶의 문화가 더 오랫동안 짙게 남아있는 공간이다. 일본인 철도기술자들을 위한 기숙사(공동주택)였지만 그 이후에는 한국인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주거 형태다. 일제강점기와 근현대를 거치며 공간이 허락되는 대로 조금씩 넓어진 가옥은 세월의 흔적을 나이테처럼 간직하고 있다.

좁다란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관사 16호’가 눈에 띈다. 겉보기엔 건물 중앙을 반으로 나눠 두 가구가 나눠 사는 일본식 주택이다. 내부는 전통적인 일식 가옥이라기 보다 온돌 형식, 한국의 환경에 맞춰 계량된 구조를 보이고 있다. 역사적 맥락에서 봤을 때 일본인의 역사보다는 한국인, 즉 대전시민의 생활에 관련된 삶의 문화가 더 오랫동안 짙게 남아 있는 그런 곳이다.



◇뉴트로 감성 듬뿍 관광 명소 자리매김

도시는 늙기 마련이다. 화려했던 과거는 화석처럼 굳어지고 골목길을 가득 메웠던 아이들의 목소리도 기억 저편의 회색빛 추억으로만 남게 된다. 소제동이 딱 그런 처지다. 1985년 대전 서구 둔산동 일대에 ‘콘크리트 도시’가 들어서면서 소제동 주민들은 세간살이를 챙겨 정든 마을을 떠났다.

도심 속 유허가 된 소제동을 두고 공무원들은 ‘대전역세권 재정비촉진계획’이라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 도시로서의 가치를 잃은 소제동은 2009년 도시환경정비사업 지역으로 지정됐다.

재개발 계획으로 묶인 소제동은 도심 속 외딴섬이 됐다. 줄곧 침체됐던 소제동이 활기를 띤 건 2016년쯤이다. 민간 주도의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추진되면서 부터다. 낡고 지저분했던 관사촌에 청년문화가 스며들기 시작한 게 이때다.

옛 가옥에 현대식 인테리어를 접목한 카페와 음식점이 생겨났고 소셜 미디어에서는 대전 철도관사촌이 일명 뉴트로(Newtro)의 성지로 여겨지게 됐다. 1920년대부터 이어진 건축 변화상을 보여주며 철도 개통으로 급 발전한 대전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소제동의 가치가 다시 주목받게 됐다. 기성세대가 버린 공간에 청년문화가 녹아들며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었다. 철도관사촌 일대에서 새롭게 문을 연 상점은 10여 곳이 넘는다. 저마다 특색 있는 인테리어와 시대 감성을 고스란히 담은 민간 상업시설들이 소제동 활성화의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다.

원도심 쇠퇴 현상으로 버려진 지역이 살아나고 있음을 보여주면서 외지 관광객과 지역 주민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지역 전통문화의 명맥을 잇기 위한 대전문화재단의 ‘전통나래관’과 지역 작가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소제창작촌’은 부쩍 달라진 소제동의 분위기를 품고 있다. 몇 년 사이 소제동은 1년에만 50만 명의 방문객이 찾는 관광 명소가 됐다.



◇예술로 여는 미래, 역사에 문화를 새기다

소제동은 대전의 100년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근대도시 대전의 정체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공간이다. 소제동 일대는 근대 가옥들이 보존된 독특한 골목길과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대동천변의 산책로, 멋스러운 맛 집 등이 어우러져 주목받고 있다.

이런 소제동에 문화가 추가적으로 입혀져 볼거리를 더한다. 6월 초 문을 연 ‘소제동 아트벨트’는 대전의 대표 청년문화재단인 씨엔씨티마음에너지재단이 지역문화기반 조성을 위해 추진하는 사업이다.

역사적 의미가 담긴 공간에 전시, 공연, 퍼포먼스, 워크숍 등의 문화예술 콘텐츠를 담아서 차별적인 매력을 지닌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소제동 아트벨트는 철도관사 건물을 복원·보수해 문화공간으로 활용해 관사16호, 마당집, 핑크집, 두충나무집 등 각 건물의 특징을 살린 전시관의 이름으로 운영한다.

재단은 대전의 역사와 미래 가치를 고려한 문화예술 지원 활동의 하나로 소제동 일대를 생활과 문화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복합문화예술타운으로 조성하기로 했다. 소제동 아트벨트의 첫 번째 프로젝트는 8월 23일까지 열린다.

복합문화예술행사 ‘오늘 꾸는 꿈’은 전시와 설치, 공연, 퍼포먼스, 교육, 관객참여 프로그램 등 시각예술과 공연예술을 아우른다. 행사에는 안충기, 박선민, 심래정, 자스민 샤이틀, 루프엑스, 김혜경, 김태은 등 국내외 14개 팀 32명의 아티스트가 참여한다.

과거에 대한 기억과 미래에 대한 상상을 바탕으로 오늘만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진정한 현재의 의미를 찾는 예술가들의 통찰력 있는 질문들을 담아서 ‘지금 이 순간만이 진정한 내 것’, ‘먹고 자고 사랑하고’, ‘자유롭게 훨훨’, ‘자연을 마주하고 시간을 가꾸다’라는 네 가지 주제로 구성됐다.

소제동 아트벨트를 기획한 신수진 디렉터(한국외국어대 교수, 전 문화역서울 284 예술감독)는 “예술은 일상에 쫓기느라 잊고 있었던 질문을 일깨우는 역할을 한다. 소제동 아트벨트는 100년의 시간을 간직한 골목길에 예술가들의 상상력과 활력을 더해서 미래로 나가게 하는 동력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말했다.

행사 기간 중 매주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전시와 함께 퍼포먼스, 워크숍,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이어져 관광객에게 흥미로운 즐길 거리를 제공한다.

/대전일보=김용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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