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균형발전 특별기고] 이용섭 광주시장
2020년 08월 14일(금) 00:00
“수도권은 비워서 살리고, 지역은 채워서 살려야”

이용섭 광주시장

어릴 적 이야기 하나.

나는 시골에서 6남매 장남으로 태어났다. 집안이 형제들로 북적댔지만, 여름에는 별 불편 없이 지냈다. 그러나 문제는 겨울이었다. 땔감이 부족하다 보니 안방에만 불을 때었다. 형제들은 자연스레 따뜻한 안방으로만 모여들었고, 모두 비좁고 불편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께서 각자 방으로 가라고 말했지만, 차가운 방으로 선뜻 갈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머니가 땔감을 구해 방마다 군불을 때서야 비로소 형제들은 흩어졌다.

어릴 적 이야기 둘.

어렸을 때 우리 집에는 펌프샘(짝두샘)이 있었다. 펌프샘을 사용하다 보면 물이 빠져버려, 물을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먼저 한 바가지의 물을 부어야 한다. 이것이 훗날 ‘마중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국가균형발전 정책도 마찬가지 이치다. 사람과 돈과 기업을 지방으로 분산시키기 위해서는 지역마다 군불을 때주는 마중물 정책이 필요하다.

올해 수도권 인구가 비수도권 인구를 첫 추월했다. 국토 면적의 11.8%인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몰려 있다. 이러한 인구집중현상은 자연스레 경제와 정치·사회활동의 대부분이 수도권에 과도하게 집중되는 결과를 낳았다. 빈익빈 부익부. 지역에 일자리가 없고 장사가 되지 않아 사람과 기업은 더욱 수도권으로만 몰려들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결국 수도권과 지방간 격차 심화는 동맥경화를 일으키면서 국토 전체적인 성장잠재력 저하를 초래하고 있다.

산업사회 때는 수도권으로 돈과 사람을 집중시켜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국가 간 경쟁체계’였다. 달리기에 비유하면 400m를 잘 달리는 선수 하나만 있으면 육상경기에서 이길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각 지역마다 고유함과 독특함을 살려서 지역이 균형있게 발전해야 국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도시 간 경쟁체계’다. 400m 계주 시대다. 4명의 선수가 모두 균형 있게 잘 달려야 이길 수 있다는 얘기다.

참여정부 때 국가균형발전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됐던 세종행정중심복합도시, 공공기관 이전 혁신도시 조성은 지방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군불’이고 ‘마중물’이었다. 지난 수 십 년간 이어져온 수도권 위주의 ‘일극집중’ 국토관리·도시관리의 관념을, 지역별 특성과 장점을 살려 전국이 균형있게 잘사는 ‘다핵분산’ 구조로 혁신하는 첫 출발점이었다.

이후 한동안 잠잠했던 행정수도 완성과 제2차 공공기관 이전 논의가 최근 정치권의 핫이슈이자 국민적 관심사가 됐다. 그 근저에는 수도권의 부동산 가격 급등문제가 맞물려 있다. 수도권의 부동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지역균형발전이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공공기관들의 지방 이전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것이다.

이 또한 기회다. 우리 광주를 비롯해 모든 지자체가 이같은 분위기에 합승해 공공기관 이전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광주는 인공지능, 자동차, 에너지, 문화예술 등 지역의 강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공공기관 이전 유치가 절실하고 이들 기관 역시 광주에 오면 자기들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광주·전남은 2007년 전국에서 유일하게 광주의 통큰 양보로 나주에 공동혁신도시 유치를 합의하여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한국전력을 유치했고, 유수의 공공기관 15곳이 그 뒤를 따랐다. 제2차 공공기관 이전 역시 또다른 광주·전남 공동혁신도시 유치가 해법이다.

다만 1차 공공기관 이전은 우리 시민들이 광주·전남 전체 발전을 위해 전남(나주)에 통크게 양보했기 때문에, 2차 공공기관 이전은 광주·전남 시도민이 상생과 호혜 차원에서 지혜를 발휘하여 광주로 유치해 균형있는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공공기관 이전만으로 국토의 균형있는 발전이라는 목표가 저절로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뼈대에 살을 붙여야 한다. 1단계 시책들이 균형발전에 필요한 하드웨어적인 토대를 마련한 것이라면 이제는 기업과 사람이 자발적으로 지역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정주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적인 노력들이 본격화되어야 한다. 각 지역마다 살기 좋고 기업하기 좋도록 군불을 지펴주는 균형발전 정책으로 수도권의 기능을 지방에 분산시키는 동시에 지역이 자생력을 갖고 자립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최근 광주가 인공지능 중심의 디지털 뉴딜, 탄소중립 에너지 자립도시를 실현하기 위한 그린 뉴딜, 상생과 안전의 사람중심 휴먼 뉴딜 정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것 또한 이런 이유에서다. 중앙정부가 공공기관들을 이전시키면, 지자체는 그 지역에 둥지를 튼 기관들이 지역 특성과 시너지효과를 내며 경쟁력을 확보하고 지역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국가균형발전 정책은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국가발전의 백년대계 차원에서, 4차 산업혁명과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국가 경쟁력도 높이고 지역경제도 활성화될 수 있다.

당장의 효과보다 기업하기 좋은 여건과 사람살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데 국가적 역량을 쏟아야 한다. 정치권에서도 당리당략에서 벗어나 국가 경쟁력과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건전한 논의와 성숙한 상생의 지혜를 모아나가야 한다.

지금의 시대정신은 상생과 동반성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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