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 사미원, 남송 영종때 정권 잡아 26년간 재상
2020년 08월 25일(화) 00:00

<초당대총장>

사미원(史彌遠, 1164~1233)의 자는 동숙(同叔)이고 명주 은현 출신이다. 남송 영종때 권신인 한탁주를 죽이고 정권을 잡아 이종때까지 26년간 재상을 지냈다.

남송 효종때 재상을 지낸 사호의 아들이다. 효종 순희 14년(1178) 진사가 되어 관직에 나갔다. 대리사직, 추밀원편수관, 기거랑 등 요직을 역임했다. 북송의 명재상 한기의 5세손인 한탁주는 고종비와 효종비의 후원에 힘입어 영종 초 권력을 좌지우지했다. 재상 조여우를 음모로 내치고 주희 등 주자학파의 관직 등용도 막았다. 경원위학지금(慶元僞學之禁)을 일으켜 반대파를 조정에서 내쫓았다. 영종비 한황후가 사망하자 권세가 기울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무리하게 대금 전쟁을 일으켰다. 40년간 이어진 금과 남송의 화평이 깨졌다. 한탁주의 의도와는 달리 양군은 일진일퇴를 거듭했고 화의의 분위기가 되살아났다. 금은 전쟁을 일으킨 한탁주의 신병을 인도할 것을 화의의 조건으로 내걸었다. 영종의 후비 양씨는 오빠 양차산과 예부시랑 사미원과 힘을 합쳐 권신 한탁주 제거에 나섰다. 1207년 11월 옥진원에서 한탁주 암살에 성공했다.

정국은 일변했다. 양차산과 사미원이 권력의 중추에 진입했다. 1208년 양국은 재차 강화조약을 맺었다. 종래의 숙질 관계를 백질(伯姪) 관계로 변경하고, 세폐는 은 30만냥, 비단 30만필로 종전보다 증액키로 하였다. 남송은 전쟁배상금으로 300만냥을 금에게 주고 금이 점령한 회남 지방은 남송에게 돌려주기로 하는 내용이다.

사미원은 영종의 치세 17년간 재상으로 군림했다. 1124년 영종이 붕어했는데 후사가 없었다. 31세때 아들 연왕이 요절했다. 이에 북송 태조 조광윤의 10세손인 조여원을 키워 이름을 순이라 하고 황태자로 삼았으나 1120년 역시 28세의 젊은 나이로 죽었다. 황태자 순이 죽자 양자로 들인 조균을 새로이 황자로 삼았다. 이름도 횡으로 바꾸었다. 사미원은 태조의 10세손에 해당하는 조희로의 아들인 조여거를 찾아내 황실에서 키우도록 했다. 여거의 이름을 귀성으로 바꾸고 가왕으로 책봉해 후일을 대비했다. 학자 정청지에게 명해 제왕학을 체계적으로 학습토록 했다. 황자 횡은 사미원의 전횡을 극히 싫어했다. 벽에 걸린 해남도 지도를 가리키며 “언젠가 뜻을 이루면 사미원을 이곳으로 귀양 보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사미원은 당연히 황자 횡을 극히 경계했다. 1124년 영종이 병이 들어 위중했다. 사미원은 조칙을 정해 귀성을 황자로 삼아 새로이 율이라는 이름을 주고 성국공에 봉했다. 동년 8월 영종이 죽자 황후를 설득해 황자 율이 제위에 오르도록 하니 이종이다. 황자 횡은 제왕으로 삼아 호주로 옮겼는데 후일 후환을 걱정한 사미원에게 독살 당했다. 사미원은 정책(定策)의 공신으로 권력을 더욱 공고히했다.

무리한 이종 옹립, 황자 횡의 독살 등으로 조야의 여론이 들끓었다. 진덕수, 위도옹 등 다수의 중신들이 사미원을 처벌하라는 상소를 올렸다. 그럼에도 이종 9년동안 정권을 오로지 했다. 부친에 이어 재상직에 오른 사미원은 성정이 잔인했다. 특히 무인을 경시하는 경향이 심했다. 그는 무인을 매사냥의 매에 비유했다. 매는 굶주리면 사냥을 잘하지만 배부르면 도망가 버린다고 말하곤 했다. 각종 포상에서 무인의 공적을 가벼이 여겨 제대로 대접해주지 않았다. 그가 사망한 1233년 몽고가 금의 수도인 개봉을 함락시켰다. 금의 애종은 채주로 달아났다가 1234년 송과 몽고의 연합군에 생포되고 금나라는 멸망했다.

진회는 송사 간신전에 들어갔지만 그는 간신전에 포함되는 불명예를 면했다. 그에게 옹녕입리(擁寧立理). 즉 영종과 이종을 황제로 옹립했다는 업적이 있음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사미원의 집권 시절 이종은 제대로 정치의 뜻을 펼 수 없었다. 30세의 나이에 친정에 나선 이종은 정청지 등 도학자를 등용했다. 금이 멸망하자 잃어버린 북방의 영토를 회복하자는 주전론에 휩쓸려 들어갔다. 결국 몽고군의 남하를 불러들이는 대재앙으로 이어졌다. 사미원은 사후 충헌(忠獻)의 시호를 하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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