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광주 동명동 리을피읖
2020년 09월 09일(수) 00:00
사진작가가 운영하는 ‘책을 팔지 않는 책방’
서점 리을피읖은 동명동 서쪽의 골목길에 있다. 따라서 리을피읖으로 가는 길은 골목 산책로이다. 산책로는 지산동 쪽 무등산에서 발원한 동계천이 흐르고 있는 복개로(동계천로)에서 시작한다. 어느 방면으로 가도 좋겠지만 민들레소극장(광주시 동구 동계천로 111)에서 출발하는 길이 제법 재미있다.

소극장에서 전남여고 쪽으로 스무 걸음만 걸으면 왼쪽으로 빌라형 주택이 늘어선 골목이 나오고 이 길로 계속 가다 보면 작은 골목 계단이 나온다. 왼쪽에 지어진 지 30년쯤 될 법해 보이는 동명파크맨션을 지나 오른쪽으로 꺾으면 1960~70년대에 형성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낮은 지붕의 단층집들이 주저앉은 듯 늘어서 있다. 아마 그전에는 초가였던 지붕들이 그즈음에 석면 슬레이트로 바뀌고 지금은 개량되어 철제 기와가 됐을 것이다.

서점 리을피읖은 수집한 사진집을 전시하고, 사진과 관련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공간이다.
이 동네에 한때 광주 짬뽕사의 한 획을 그었다는 고창식당이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복래반점이라는 상호로 다른 주인이 영업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리을피읖은 개천을 따라 형성된 근대 주거지의 변천사를 골목을 따라 보여주는 동네에 자리 잡고 있다. 서점을 찾아가서 왜 이렇게 동네 이야기로만 변죽을 울리느냐 할지 모르지만, 다 이유가 있다. 리을피읖의 주인은 사진작가 윤재경 씨이다. 윤 작가는 20년 넘게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를 매일 같이 사진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한다. 특히 동명동은 20년 전 그가 다니던 회사가 있던 동네이고, 그 때부터 그는 이 동네를 사진에 담아왔다. (작년 11월에는 이 동네에서 사진작가 박일구 씨와 함께 ‘동명동 마을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이쯤에서 서점을 왜 여기에 열었느냐는 질문은 불필요하다.

지역 출판사를 소개했던 활동을 모아둔 서가.
2019년 5월, 리을피읖은 지역의 이야기로 책을 만드는 지역출판사의 책을 소개하는 서점으로 문을 열었다. 전라도닷컴 출판사의 ‘월간 전라도닷컴’과 기획출판물을 전시 판매하는 것을 시작으로 대전의 ‘월간토마토’, 전북 고창의 ‘책마을해리’, 전북 장수의 ‘내일을여는책’ 등이 리을피읖에서 소개됐다. 그러나 그해 12월, 리을피읖은 도서의 소매 영업 행위를 중단했다. (나는 그 이유를 굳이 따져 묻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 서점은 더 이상 책을 팔지 않는다. 대신 작가의 본업을 이어가는 ‘사진책방’이 되었다.

이제 사진책방 리을피읖은 수집한 사진집을 전시하고, 사진과 관련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공간이다. 윤 작가는 새로 출간된 사진집의 작가를 초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가끔 사진 전시를 하는 공간으로 서점을 탈바꿈시켰다. 역설적이게도 책을 팔지 않는 서점이 오래 간다. 책을 둘러싼 소비문화의 저변이 허약한 탓이다. 아마도 먼훗날에도 동네서점이 존재한다면 책을 ‘판매’하는 곳이 아닌 지식이나 정서를 ‘거래’하는 곳일지도 모르겠다.

리을피읖은 내가 서점 이름과 그 뜻을 듣고 무릎을 쳤던 몇 안 되는 서점 중 하나다. ‘리을피읖’은 겹받침 ‘ㄿ’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한글 자모는 ‘읊다’ ‘읊조리다’라는 동사의 형태소 ‘읊-’에만 쓰인다. 어원적 근거는 없지만 나는 ‘읊다’라는 말과 ‘슬프다’는 말은 늘 가깝다고 여긴다. 무언가를 읊조리는 일에는 슬픔의 정서가 살짝 배어 있다.

그러므로 이 서점은 어떤 흥얼거리는 고양감과는 거리가 멀다. 동네 미장원이었다가 오래 빈집이었던 곳에 스며든 공간적 특성이 이름과 똑 닮았다. 알루미늄 뼈대로 된 갸냘픈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운데 테이블과 오른쪽 서가에 사진집이 채워져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의 작품집인데, 아마도 지극히 일상적인 생활에 카메라의 시선을 두는 이 서점 주인의 사진 작업이 자연스레 연상되어서일 테다.

사진집을 모아둔 서가. 특정 지역을 담은 사진집이 많다. 서가 위쪽에는 길에 버려진 금박자개상을 걸었는데 이 문양은 보기 드문 것이라고 한다.
왼쪽 벽면에는 서점 주인의 사진 작업 ‘사라지는 무등산’이 전시되고 있다. 도시의 개발에 따라 무등산의 등성이가 사라졌거나 사라질 것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10평 남짓의 작은 서점에는 이제는 우리 일상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물건들이 군데군데 놓여 있어 까마득한 시간을 기억하게 한다. 초기의 애플 컴퓨터가 그러하고, 양은 주전자가 그러하고, 공중전화기가 그러하고, 자개문양상이 그러하다. 작지만 많은 볼거리를 품고 있는 서점은 광주시 동구 동계로15번길 17에 있다.

서점 주인이 수집한 공중전화.
아참, 그러나 이 서점이 사진책방으로 선언한 시점이 코로나19가 전 세계에 확산되기 불과 한 달 전이었다는 점을 우리는 상기해야 한다. 그러니까 사진책방 리을피읖은 현재 개점 휴업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에, 이 서점을 찾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서점 앞에서 펼쳐진 광경을 꼭 보고 가라고 권하고 싶다. 낮은 지붕집과 이층 양옥집과 빌라형 주택과 그리고 그뒤로 한창 지어올리고 있는 아파트의 풍경을, ‘나의 도시 광주’가 현재형으로 보여주는 시간의 켜를.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있다면, 이 서점 주인의 사진 작업을 볼 수 있는 인터넷 계정(instagram.com/mutegraphy/ facebook.com/gwangju.everyday)도 살펴보았으면 한다.

하루빨리 리을피읖이 다시 문을 열기를 바란다.

/신헌창 책과생활 주인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리을피읖’이 추천합니다



▲‘최광호 사진 공부-뉴욕’

최광호 사진작가가 30여 년 전인 1988년부터 1994년까지 뉴욕 유학 시절에 찍은 미발표 사진을 담았다. 피아노의 거장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타계 1년 전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 화제가 됐는데, 당시(1988년)에는 최광호 작가가 동네 노인인 줄 알고 찍었다고 한다. 사진집 출간과 함께 책방에서 토크를 열려고 했으나 코로나19 확산이 안정된 이후로 무기한 연기됐다. <최광호 지음>



▲‘목욕하는 여자: 박화야 사진 에세이’

현재 절판된 책으로 당시 출판사의 책 소개를 인용하면, “2년 반 동안 광주 충장로의 목욕탕을 하루도 빠짐없이 작가가 직접 드나들면서 그곳에 출입하는 주부, 할머니, 교사, 외국인, 술집아가씨 등과 ‘알몸의 교감과 소통’을 나누며 여성의 육체 속에 담겨 있는 눈물과 웃음과 회한과 상처를 카메라의 눈을 통해 바라본 사진작가 박화야의 사진 에세이집”이다. 서점 주인이 가장 많은 이에게 추천하는 사진책으로 박화야 작가는 이 책 한 권을 내고 거의 작품활동을 볼 수 없다고 한다. <박화야 지음>



▲‘뭐라 내한테서 찔레꽃 냄새가 난다꼬’·‘마음과 짝하지 마라, 자칫 그에게 속으리니’

서점 주인이 작가로서 가장 존경하는 작가 이지누의 책이다. 이지누 작가는 한국 문화를 사진과 글로 밀도 있게 기록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뭐라 내한테서 찔레꽃 냄새가 난다꼬’는 성주 수륜면 작은동의 깊은 산골에서 농사지으며 살다간 문상의 할아버지를 작가가 1999년부터 3년간 찾아가 만난 기록을 담은 책이다. ‘마음과 짝하지 마라, 자칫 그에게 속으리니’는 이지누 작가의 ‘폐사지 답사기’ 첫 번째 편으로, 한반도에서 독특한 불교문화의 흔적을 보여주는 전남의 폐사지 9곳의 100컷이 넘는 사진이 인상적이다.

<이지누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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