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이름으로’ 이정국 감독 “5월 광주는 내 영화인생의 원동력”
2021년 06월 08일(화) 08:00
“가해자의 진정한 반성 없이는 피해자의 고통 치유될 수 없다”
‘부활의 노래’ 데뷔 후 30년만…진실위해 계속 영화 만들 것

5·18 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한 최초의 35㎜ 장편 극영화 ‘부활의 노래’(1991년)로 데뷔한 후 30년 만에 또다시 복수 스릴러 형식의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를 통해 ‘가해자의 진정한 반성’이라는 5·18의 뜨거운 화두(話頭)를 던지는 이정국 감독. 이 감독은 “영화로나마 가해 책임자를 단죄하고 피해자와 유족의 응어리를 풀어주고싶었다”고 밝혔다.

5·18 민주화운동 41주년을 맞았지만 5·18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발포명령 책임자와 암매장 등 그날의 ‘진실’은 온전히 규명되지 않았고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거리에 나온 시민들을 향해 발포했던 신군부 측 가해자들의 진정어린 ‘반성’도 없기 때문이다. 5·18을 정면으로 다룬 첫 35㎜ 극영화 ‘부활의 노래’(1991년 개봉)에 이어 30년 만에 다시 5·18을 소재로 한 장편영화 ‘아들의 이름으로’를 연출한 이정국 감독(세종대 영화예술학과 교수)의 영화 이야기를 들었다.

무등산에서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를 촬영하고 있는 안성기 배우(왼쪽)와 이정국 감독(오른쪽). <워너비 펀 제공>
◇“뉘우치지 않는 5·18 책임자들 영화로 단죄”=“바로 지금이기에, 해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40여 년이 지났어도 아직도 사죄하고 있지 않는 5·18 가해 책임자에 대해 영화로 나마 일종의 ‘복수’를 하고, 그 사람들한테 진정한 반성을 촉구하고 양심고백을 하게 만드는 그런 영화입니다.”

이정국(64) 감독은 최근 개봉된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러닝타임 90분)를 통해 ‘진정한 반성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話頭)를 던진다. 이번 영화는 지난 2019년 촬영을 마치고 5·18 40주년인 지난해 5월에 맞춰 개봉할 계획이었으나 ‘코로나 19’ 여파로 최근에야 뒤늦게 개봉하게 됐다. 이 감독을 서울시 광진구 군자동 세종대 광개토관에 자리한 교수연구실에서 만났다.

영화는 40여 년 전 광주의 일을 잊지 못한 채 괴로움 속에서 살아가는 공수부대 장교 출신 오채근(안성기 분)의 시각에서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부당한 ‘명령’에 의해 의도하지 않게 가해자가 됐던 그는 정신과 의사와 상담하며 터널에 갇힌 듯한 ‘과거’의 괴로움을 이렇게 털어놓는다.

“군인으로서 명령을 따랐을 뿐 내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죄는 바로 아무런 생각 없이 행동한 것입니다. (살인명령을 내린 자들에게) 정말 묻고 싶습니다. 그런 짓을 하고도 맘 편히 살고 있는지….”

이 감독은 이전에 상업영화를 만들 때는 흥행이나 입상 등을 의식해 강박관념을 가졌던 것과 달리 이번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는 그런 부담을 갖지 않고 “재미있고, 행복하게 찍었다”고 한다. 영화 속 배경은 서울이 70~80%이지만 실제 촬영은 대부분 광주에서 이뤄졌다. 시민들은 식당과 병원 등 촬영장소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영화 속 단역이나 엑스트라로 참여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도움의 손길을 아끼지 않았다.

더욱이 ‘고통은 그것을 철저히 경험함으로써 극복된다’(마르셀 프루스트)는 영화 속 명언처럼 이번 영화를 만들면서 30여 년간 무의식 속에 내재돼 있던 5·18 트라우마를 비로소 치유할 수 있었다. 1980년 당시 그는 전투경찰로 해남 화원반도 해안초소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5월 21일 부식을 구입하기 위해 목포로 배를 타고 나갔다가 ‘전두환’이라는 이름과 ‘광주에서 사람이 많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초소로 복귀해 광주에 살고 있는 가족과 친구들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 당시에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는 ‘부채의식’을 갖게 돼 나중 5·18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최초의 35㎜ 장편 극영화 ‘부활의 노래’를 만들게 됐다. 서슬 퍼런 6공(共) 시대에 심의 과정에서 러닝타임 총 100분중 4분의 1인 25분 가량이 잘려나간데다, 흥행마저 실패했다. 그 이후 5·18 트라우마를 겪으며 광주 자체를 묻지도, 듣지도, 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감독이 ‘부활의 노래’에 이어 30년만에 다시 5·18 영화를 만든 까닭은 왜일까?

“5·18 문제를 자꾸 피하고 도망치다가 어느 순간 다시 덤벼든거죠. 10여 년 전부터 광주를 오가며 시니어들의 영화작업을 지도하면서 제대로 된 시선을 갖고 한번 영화를 치열하게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광주 분들과 다시 5·18 단편영화 작업을 같이 해가면서 서로가 조금 치유해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 그 자체의 결과도 중요하겠지만 영화를 만드는 과정도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왜냐하면 영화는 일종의 소통이니까요. 5·18은 나한테는 일종의 트라우마였지만 결국 내 영화 인생을 출발시킨 원동력, 내가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서 감독이 되게 만든 원동력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좀 아이러니 한거죠.”



지난 4월 30일 광주극장에서 열린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 시사회에서 무대 인사를 하는 이정국 감독과 안성기·윤유선 배우. (오른쪽부터)
◇“5·18은 내 영화 인생을 출발시킨 원동력”=영화 개봉을 앞둔 지난 3월, ‘영화 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5·18 당시 광주에 투입됐던 7공수여단 소속 부사관였던 70대가 자신이 광주시 남구 노대동 산길에서 사살한 청년(당시 25살)의 유가족을 찾아 사죄한 것이다. 가족들은 “용기 있게 나서줘서 고맙다”며 그를 용서했다. 가해자가 희생자 유가족을 직접 만나 용서를 구한 첫 사례다.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촬영하던 당시에는 현실에서 일어나지 못할 일이라고 생각했던 게 실현된 것이다.

“그 사람이 사죄하는 것을 보고 소름이 돋았죠. 왜냐하면 우리 영화와 너무 비슷하잖아요. (영화를 만들면서) 사실 그걸 바란 거죠. ‘아들의 이름으로’를 보고 그런 분들이 나왔으면 하는 기대를 갖습니다. ‘반성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소크라테스), ‘악행에 대한 고백은 선행의 시작이다’(아우구스티누스)는 명언은 옛날에 한 말이지만 여전히 지금 우리한테, 특히 5·18 관련자들한테 유효하죠. 우리 영화를 떠받치는 기둥이기도 합니다.”

보성군 조성면 태생인 이 감독은 1970년대, 광주에서 전남고를 다닐 때 이소룡 영화를 즐겨보면서 영화감독의 꿈을 키웠다. 그때 ‘영화관은 유일한 안식처’였다. 1978년 중앙대 연극영화학과에 진학해 16㎜ 단편영화 백미(白尾)로 손꼽히는 ‘백일몽’(1984년) ‘한여름 낮의 꿈’(1985년)과 같은 작품의 각본과 촬영, 연출까지 도맡아 ‘대한민국 단편영화제 대상’ 등을 수상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졸업 후 기존의 충무로 도제식 시스템에서 벗어나 새로운 한국영화를 꿈꾸는 후배들과 독립영화 제작 방식의 ‘새빛 영화제작소’를 세워 5·18을 소재로 한 첫 35㎜ 장편 극영화 ‘부활의 노래’ 제작에 나섰다. 고교친구인 임낙평 (사)들불열사기념사업회 이사장이 펴낸 ‘광주의 넋, 박관현’(1987년)을 접하면서 5·18 영화를 만들겠다고 결심하며 시나리오를 썼다. 모두가 침묵하고 금기시하던 5·18 광주항쟁 영화화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던 영화 ‘부활의 노래’는 노태우 정권의 탄압을 받았다.

‘부활의 노래’ 흥행실패 후 그는 나락으로 떨어져 한 평반 반지하 셋방에 살면서 시나리오를 쓰며 재기를 모색했다. 절치부심한 끝에 2년 후 ‘두 여자 이야기’ 시나리오를 써서 연출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그리고 1994년에 영화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았다. 그 해 열린 ‘제 30회 백상예술대상’에서 ‘부활의 노래’로 영화 신인감독상을 받았고, ‘제32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두 여자 이야기’로 최우수작품상과 신인감독상 등 6관왕을 차지하는 겹경사를 맞았다.



◇한국영화 발전위해서는 스토리 탄탄해야=이 감독은 지난 2000년 영화현장을 떠나 세종대 영화예술학과 교수로 부임해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앞으로 한국영화가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더 필요할까? 우선 이 감독은 나이든 감독들을 배척하는 영화계 풍토를 지적한다. 그리고 탄탄한 스토리가 절실하다고 말한다. CG(컴퓨터 그래픽)는 굉장히 발전했는데 여전히 스토리가 구태의연해 무척 아쉽다.

이 감독은 영화비평집 ‘영화는 쉬지 않는다’에서 “나에게 영화를 보고, 만들고, 영화에 관한 글을 쓰는 일은 취미이자 직업이자 삶 그 자체”라면서 “나의 꿈은 구로사와(黑澤 明)가 그랬듯이, 정적인 무드와 동적인 힘(power)을 절충해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만족하게 하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고 밝힌 바 있다.

박신양·고(故) 최진실 주연의 흥행작 ‘편지’(1997년)에서 주인공 ‘환유’(박신양 분)는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건너야 될 자신의 사막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어쩌면 이정국 감독에게 ‘사막’은 5·18이었을지 모른다. 5·18의 진실이 가려지고 가해자의 진정한 사죄가 없는 한 ‘부활의 노래’와 ‘아들의 이름으로’에 이어 그의 또 다른 5·18 영화작업은 계속 될 듯하다.

/글·사진=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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