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단계 불법 하도급·부실한 관리감독이 빚어낸 인재
2021년 06월 10일(목) 19:48
자격증 직원 2명뿐인 업체가 철거
해체계획 말뿐·감리선정 시늉만
철거공사 아랫층부터 진행 정황도
동구청 한차례도 안전감독 안해

10일 전날 발생한 17명의 사상자를 낸 철거 건물 붕괴사고와 관련, 사고 발생 전 철거 현장 장면을 촬영한 사진이 공개됐다. 철거업체 작업자들이 건물을 층별로 철거하지 않고 한꺼번에 여러 층을 부수는 모습이 사진에 찍혀 해체계획서를 제대로 준수하지 않았음이 의심된다. /연합뉴스

17명의 사상자를 낸 ‘학동 재개발구역 철거 건물 붕괴사고’는 전혀 나아지지 않은 지역사회 전반에 깔린 안전불감증, 다단계 하도급 고리가 만든 부실한 안전 대책, 안일함에 기댄 건설업체의 대충대충 시공, 감독기관의 무책임한 관리·감독이 결합해 빚어낸 사고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다단계 하도급 의혹, 경찰 압수수색=무너진 건물 철거는 학동 4구역 재개발 사업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과 계약을 체결한 ㈜한솔기업이 맡았다. 한솔기업은 지난 5월 14일 동구청에 10개 건물을 철거하겠다며 신청, 같은 달 25일 허가를 받아 철거 작업에 들어갔다. 무너진 건물은 10개 중 맨 마지막으로 철거 공사에 들어갔었다.

한솔기업은 서울 소재 기업으로, 비계구조물해체공사업 면허(2008년), 석면해체 제거업자 면허(2012년)를 취득한 철거 업체다. 하지만 장비 운송 및 철거 물품 처리 등 운송비를 고려하면 외지 업체가 광주에서 직접 작업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사고 당일인 9일 “한솔기업이 직접 철거한 게 아니라, 지역업체로 다시 하도급을 줬다”는 인근 재개발사업 철거업체 관계자의 증언도 나왔다. 통상, 5층짜리 건물을 철거할 경우 3.3㎡당 20만~25만원을 받을 수 있고 재하도급을 줄 경우 3.3㎡당 17~18만원선까지 떨어진다.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은 하청업체의 재하도급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다만, 종합건설업체가 전문공사를 위해 해당 전문건설업체에게 재하도급하는 등의 특수한 상황은 예외로 하고 있다. 하지만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 권순호 대표이사는 이날 오후 유가족들의 질문에 “(하도급업체인)한솔기업과 계약 외 재하도급은 주지 않았다”고 거듭 밝힌 바 있다. 원청인 현대산업도 재하도급 업체를 모르고 있다는 점이 불법 하도급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학동 건물 철거 작업을 벌인 업체는 지난해 시공능력평가액이 4억원에 불과한 곳으로, 건설 관련 자격증을 갖춘 직원도 2명이 전부다.

영세한 하청업체의 경우 안전설비·교육에 투자할 능력이 부족하고 공기 단축 압박까지 받게되면 안전관리ㆍ감독도 소홀히 할 우려가 커진다는 게 노동계 시각이다. 이런 상황에서 충분한 안전 조치를 취한 뒤 철거에 나섰을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게 경찰 분석이다. 경찰이 9일 해당 철거업체를 포함한 5곳을 압수수색한 것도 이같은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말뿐인 해체계획, 형식적인 감리선정= 광주시 동구는 건물 붕괴사고와 관련, 해체계획서를 지키지 않은 혐의로 시공사와 감리자를 고발키로 했다. 철거 업체는 동구에 제출한 ‘건축물 철거공사계획서’에 철거 안정성 검토 결과와 구체적인 철거 순서 등을 적시했다. 굴착기 등으로 콘크리트를 파쇄하는 ‘무진동 압쇄공법’으로 건축물 옆면 벽부터 철거하고 건물 5층부터 외부벽→방벽→슬라브 순으로 해체키로 했다. 3층까지 철거를 끝내고 지상으로 내려와 장비 이동 뒤 1~2층 해체작업을 진행한다는 계획을 제시했었다.

동구청은 이같은 계획과 달리 지상부터 공사가 진행된 것으로 보고 있다. 감리자 역할도 제대로 준수하지 않았다고 동구청은 판단했다. 동구는 철거 과정에서 감리자가 현장에 상주하지 않는 ‘비상주 감리’를 지정했지만 위험한 공정으로 보이는 해체 등의 작업이 이뤄질 때에는 현장에 상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동구는 이같은 점을 들어 감리자에 대해서는 건축물관리법 위반 혐의, 시공사는 건설산업기본법 위반 혐의로 고발키로 했다.

◇감독기관의 무책임한 관리·감독=동구청은 학동 4구역 주택재개발 정비사업에 대한 관리·감독을 맡고 있지만 지난해부터 단 한 차례도 현장 점검을 하지 않았다. 분진·소음으로 인한 민원이 제기되면서 3차례 가량 재개발 사업지를 찾은 적은 있지만 안전 관리를 목적으로 하는 방문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감독 당국이 안전에 대한 경각심과 안전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하지 않도록 분위기 조성에 나서기는 커녕, 단속·점검을 게을리하면서 안전불감증이 도사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사고가 잇따른다는 지적이 거세다. 임택 동구청장은 “업체 측이 구청에 낸 해체계획서가 적법한지, 국토부 매뉴얼 등을 준수했는지, 구청에서 제대로 확인하고 허가했는지 한 번 더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김지을 기자 dok2000@kwangju.co.kr

/박기웅 기자 pboxer@kwangju.co.kr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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