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벗 봉사 할머니·엄마 문병 딸…그게 마지막일 줄이야
2021년 06월 10일(목) 20:05
광주 학동 건물 붕괴 참사 희생자들 안타까운 사연
아버지는 중상…요양병원 퇴원 엄마 반겨주는 이 없어
의사 꿈 꾸던 늦둥이 외아들, 동아리 활동 후 귀가하다
평범한 이웃들 허망하게 목숨 잃어…분향소 통곡 가득

10일 오후 광주시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 철거 건물 붕괴 희생자들이 안치된 분향소에서 사고 현장서 맨 마지막에 수습된 A(17)군의 영정을 어루만지며 유가족이 오열하고 있다. /백희준 기자 bhj@kwangju.co.kr

요양병원에 계신 엄마를 보러 간 딸, 거동 불편한 또래 노인들과 말벗해 준 뒤 돌아가던 할머니, 방과후 버스에 탄 고교생…. 버스를 타고 귀가하던 평범한 이웃들이 갑자기 무너져 내린 건물에 허망하게 목숨을 잃거나 중상을 당했다.

최악의 ‘인재’(人災)로 기록될 지난 9일의 광주 ‘학동4구역’ 재개발 철거 건물 붕괴 사고는 아직 피지도 못한 10대 고교생에서부터 봉사활동으로 인생의 황혼기를 보내고 있는 70대까지 모두 9명이나 되는 소중한 목숨을 앗아갔다.

숨진 이들은 전남대병원과 조선대병원, 기독병원에 나뉘어 안치됐으며 광주 동구청 광장에 합동 분향소가 마련됐다.

10일 오후 2시, 조선대학교병원 장례식장. 부랴부랴 차려진 분향소에는 터져 나오는 통곡을 간신히 틀어막고 오열하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사망자 가운데 맨 마지막에 수습된 열일곱 살 A군의 영정이 분향소에 놓이자 외할아버지는 말 없이 다가가 손주 얼굴을 쓰다듬었다. 베레모를 눌러 쓰고 한껏 멋을 낸 A군은 액자 속에서 함박 웃음을 짓고 있었다.

A군 어머니는 경찰 조사를 마친 뒤, 뒤늦게 분향소에 들어서자마자 영정 속 아들의 얼굴을 보며 쓰러져 오열했다.

“○○아 네가 왜 여기 있니. 왜 여기 있어.”

고교 2학년인 A군은 사고 당일 비대면 수업이 있는 날이었지만 학교에서 음악 동아리 활동을 한 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참변을 당했다. 어렵게 얻은 늦둥이 외아들은 집안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다. 공부를 잘해 외할아버지에게 의사가 되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5시 뉴스를 보고 있는데 손주 사는 동네가 나와서 사위에게 전화를 걸어봤습니다. 사위도 아들 걱정이 됐던지 사고 현장으로 나갔는데, 거기에서 손주가 잔해 더미에 갇혀있는 걸 알았대요.”

어머니의 퇴원을 하루 앞두고 아버지와 병문안을 간 효심 깊은 30대 취업준비생 B(여·31)씨도 참변에 스러졌다.

칠순을 앞둔 아버지는 함께 사고를 당해 중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가족들은 아버지에게 차마 B씨의 죽음을 알리지 못한 상태다.

“다섯 자매 가운데 막내인 처제는 부모님을 살뜰히 모시는 효녀였어요. 아버지 사업을 도우면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취업준비까지 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어요. 항상 웃는 낯이었던 처제가 처참히 깔린 모습이 머리 속에서 잊혀지지 않습니다. 장모님이 오늘 퇴원하셨는데 집에 반겨주는 사람이 없네요.”

이날 유가족들은 이번 참사는 조금만 신경 쓰면 막을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김모(52)씨는 “내 조카는 시내버스를 탄 죄밖에 없다. 철거 현장의 안전을 소홀히 한 업체와 당국이 책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으며, 신모(46)씨는 “이번 사고에 대한 실감이 전혀 나지 않을 정도로 어이가 없고 분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C(여·72)씨는 노인복지회관에서 또래 어르신의 말벗을 해준 뒤, 버스를 타고 귀가하던 중 변을 당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그는 지난 2월부터 코로나19 사태로 중단됐던 노인 일자리 기회를 얻어 일하는 기쁨을 누려왔다. 주 5일,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동구 곳곳의 독거노인 댁을 들러 안부를 묻고, 말벗을 해 주는 일이었다.

C씨는 계림동의 방문 가정 4곳을 모두 들러 말벗을 해준 뒤 운림54번 버스에 탑승했으나, 자택을 불과 1.8㎞ 앞두고 남편과 함께 살던 집에는 끝내 도착할 수 없었다.

우경숙 동구노인복지회관 사무국장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동구 곳곳으로 매일 출·퇴근하면서 기꺼이 어르신의 말벗을 해 주시던 분이었다”며 “늘 열정 넘치시고 건강하시던 분이 하루아침에 큰 사고를 당하시니 충격이다”고 말했다.

/백희준 기자 bhj@kwangju.co.kr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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