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도시를 살린다, 색을 입힌다… ‘인물’의 힘이다
2021년 11월 22일(월) 01:00
‘명사 마케팅’ 가능성 알려준
강원도 실레마을 김유정문학촌
15만 소도시가 ‘글로벌 도시’로
‘모차르트’의 잘츠부르크
김정호·김현승·오지호·허백련 배출 광주
브랜드화는 커녕 변변한 기념공간 없어

‘잘 만든’ 예술가 공간은 도시의 미래를 바꾸는 문화콘텐츠이자 관광자산이 될 수 있다. 위부터 독일 뉘른베르크에 자리하고 있는 알브레히트 뒤러 하우스.

요즘 한국 미술시장의 '파워맨 1호'는 단연 방탄소년단(BTS)의 RM이 꼽힌다. 미술애호가로 알려진 RM이 다녀간 국내외 전시는 'RM투어'라고 불리며 '아미'(ARMY·방탄소년단 팬클럽)사이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올 초 서울 스페이스 K미술관에서 열린 헤르난 바스 전시에 RM이 조용히 다녀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개막 1주일 만에 1만명이 넘는 관객들이 몰렸다. 또한 지난 7월 이건희 컬렉션이 열린 대구미술관을 깜짝 방문한 RM이 추상화가 유영국의 작품을 감상하는 뒷 모습을 찍어 트위터에 올리자 하루 아침에 유 작가의 작품 앞이 포토존으로 떠올랐다.

RM이 다녀간 곳마다 성지순례 하듯 관람객들이 몰리자,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한국 미술계는 그가 다녀간 전시와 다녀가지 않은 전시로 나뉜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다. 유명인사를 앞세운 대표적인 '스타 마케팅'(Celebrity Marketing)의 한 예다. 그렇다면 유명 예술가 공간도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 모으는 관광지로 경쟁력이 있지 않을까? 올 4월 부터 연재해온 ‘사람이 브랜드다-도시를 빛낸 예술가공간’은 이런 물음에서 시작됐다. 대중에게 인지도가 높은 예술가들의 생가와 미술관, 작업실 등을 ‘문화적으로’ 브랜드화 한다면 얼마든지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관광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코로나19로 취재 일정이 순조롭지 않았지만 6개월 동안 국내(서울, 양구, 부산, 제주, 용인, 통영)와 해외(체코 프라하, 독일 베를린·뮌헨·뉘른베르크, 오스트리아 빈·잘츠부르크)의 예술가 공간들을 둘러 보며 이들의 사례를 벤치마킹했다.

강원도 춘천에 있는 김유정문학촌 전경.
그중에서도 강원도 춘천의 실레마을 위치한 김유정문학촌은 명사 마케팅의 가능성을 확인해준 현장이었다.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실레마을에 들어서자 ‘김유정’이란 이름 석 자를 내건 각양각색의 간판들이 즐비했다. 국내 최초의 인명을 딴 ‘김유정역’을 비롯해 우체국, 농협, 식당 등 어느 것 하나 김유정이 들어가지 않는 게 없을 정도였다. 특히 실레마을의 ‘얼굴’은 김유정 문학촌이었다. 금병산에 둘러싸인 모습이 마치 옴폭하게 들어가 있는 떡시루 같다 하여 이름 붙여진 실레(시루의 방언) 마을은 김유정의 고향이자 그의 대표작인 ‘봄봄’과 ‘동백꽃’의 무대다. 점순이 등 그의 소설 12편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김유정 생가나 기념관과 함께 엮은 실레 이야기길(5.2km) 투어는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 소요되는 데 관광객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다. 문학관으로는 이례적으로 한 해 수십 여 만 명이 다녀간다니, 가히 김유정으로 먹고사는 ‘김유정 마을’이었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트 집
해외사례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지난 9월 말, 취재차 둘러 본 체코의 프라하, 독일의 베를린, 오스트리아의 빈, 잘츠부르크는 예술가를 도시의 브랜드이자 관광산업의 아이콘으로 키우는 문화도시였다. 천재음악가 모차르트는 1781년 빈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기 전까지 26년간 음악가로 잘츠부르크에서 활동한 덕분에 생가, 집, 박물관 등 곳곳에 그의 숨결이 깃든 공간들이 남아 있다. 특히 모차르트와 세계적인 마에스트로 카라얀을 배출한 잘츠부르크는 매년 여름 음악페스티벌을 개최해 인구 15만 명의 소도시를 글로벌 음악 도시로 변신시키고 있다. ‘모차르트의, 모차르트를 위한, 모차르트에 의한’ 도시라고 불리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번 시리즈를 진행하는 동안 광주의 상황들이 자주 오버랩됐다. 사실, 수많은 예술가를 배출한 광주의 인물 브랜드화는 매우 미흡한 실정이다. 가장 한국적인 목소리로 평가받는 가수 김정호는 광주에서 태어났지만 이렇다 할 기념관 하나 갖지 못하고 있다. ‘고독의 시인’ 김현승의 문학이 꽃을 피운 광주 양림동에도 그의 생애를 엿볼 수 있는 고택이나 문학관은 찾기 어렵다.

서양화단의 선구자 고 오지호(1905~1982) 화백과 남종화의 거목 의재 허백련(1891~1977) 화백 또한 마찬가지다. 광주에서 오 화백의 예술 세계를 접할 수 있는 곳은 번듯한 미술관이 아니라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30년간 기거했던 지산동의 초가(광주시 기념물 제6호)가 유일하다. 그나마 지산동 초가는 기념물로 지정되긴 했지만, 이로 인해 재산권 침해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일부 주민들로부터 수십 년간 ‘문화재 지정 해제’ 요구에 시달리기도 했다.

남종화의 대가 의재 허백련 화백의 예술 세계를 만날 수 있는 ‘의재 미술관’도 힘겹게 운영되고 있다. 올해로 개관 20주년을 맞은 의재미술관은 유명 건축가 조성룡 씨가 설계해 지난 2001년 한국건축문화대상을 수상한 명품 미술관이다. 하지만 지자체의 지원 없이 후손들의 힘으로 학예사 인건비 등 제반 운영비를 부담하느라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다.

한 도시의 정체성과 미래 가치를 가늠할 때 사람만큼 경쟁력 있는 것도 없다. 특히 예술가는 쇠락한 도시를 살리기도 하고 색깔 없는 도시를 문화의 허브로 바꾸기도 한다. 특정 도시를 대표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 이름을 딴 미술관이나 공연장이 세워지고 축제도 탄생된다. 이젠 더 늦기 전에 예술가들의 공간과 이를 활용한 문화콘텐츠를 발굴해야 한다. ‘잘 만든’ 예술가 공간은 도시의 미래를 바꾸는 블루오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곧 브랜드이고 문화자산이다. <끝>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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