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섭 씨 찾기 프로젝트’-김미은 문화부장 겸 편집부국장
2021년 12월 01일(수) 00:00 가가
“참, 착한 사람이군요.” 이런 말을 들으면,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할는지 모르겠다. 언젠가부터 누군가에게 ‘착하다’는 말을 할 때면 잠시 멈칫하며 다른 수식어를 찾게 된다. 자기 실속 차리는 게 제일이고 나부터도 그런 마음에서 자유롭지 못한 요즘 시대, ‘착하다’는 말은 마음 좋아 손해만 보는 사람, 시대의 흐름에 뒤처진 사람이라는 느낌으로 들리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냥,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지난여름 김민섭의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창비교육)라는 책을 만났을 때 반가웠다. ‘착하고 선한 마음’과 ‘느슨한 연대’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들려주는 따뜻한 이야기와 진심이 담긴 글쓰기는 위로를 전했다. 책은 “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착한 사람이나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로 시작한다. 그는 경쟁할 때 어떻게 하면 승리할까보다는 어떻게 져 주면 친구들이 기뻐할까 고민했다는, ‘선함에 남다른 집착을 보인’ 아이였다.
내가 김민섭 작가를 처음 접한 건, ‘나는 지방대 시간 강사다’란 책을 통해서다. 이후 주물공장에서 일하며 인터넷에 글을 쓰던 김동식 씨를 ‘발견’, 베스트셀러가 된 소설 ‘회색인간’ 출간 프로젝트를 진행한 사람이 그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이번 책에도 소개된 ‘김민섭 씨 찾기 프로젝트’였다.
2017년 첫 해외여행을 준비하던 그는 티켓을 취소할 상황에 처한다. ‘티켓 양도’에 대해 묻는 그에게 직원은 ‘대한민국 남성으로 이름이 김민섭, 영문 이름이 스펠링과 띄어쓰기까지 똑같은 사람’을 찾아 오면 가능하다는 답을 준다. 그는 페이스북에 “김민섭 씨를 찾습니다, 후쿠오카 왕복 항공권을 드립니다”라는 글을 올렸고 며칠 후 디자인 전공 휴학생 ‘93년생 김민섭’이 나타난다.
그의 등장에 한 고등학교 교사는 ‘집안 형편이 어려운 우리 아이들이라면 항공권이 있어도 여행을 떠나지 못할 것’이라며 숙박비 30만 원을 지원했다. 1일 버스 승차권, 후쿠오카 타워 관람권, 휴대용 와이파이를 지원하겠다는 사람도 나타났다. 무려 278명이 졸업작품전 펀딩에 마음을 보탰다. 사람들은 “이게 뭐라고, 눈물이 난다” “김민섭을 저 멀리 아프리카 아디스아바바로 보내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야 하는 것 아니었냐”며 함께 응원하고 기뻐했다.
출발 당일, ‘93년생 김민섭’은 “왜 사람들이 저를 이렇게 도와주었을까요?”라고 묻는다. ‘83년생 김민섭’이, 자신이 외롭고 막막했을 때 손을 내밀어 준 이들에게 했던 바로 그 질문이다. “그냥, 당신이 잘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그때 받았던 답을 돌려준다. “저도 언젠가 ‘2003년생 김민섭’을 찾아 여행을 보내주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 잘 살게요.” 되돌아온 말을 듣고 그는 자신이 받은 후의들이 단절되지 않고 그에게 이어진 것 같아 그에게 구원받은 기분이 들었다고 적었다.
이번엔 ‘참전하고 싶지 않았던 어른의 싸움’에 뛰어든 이야기다. 좁은 골목길에서 교통사고가 났고, 잘잘못을 가리기도 전 40대 남성 운전자는 그에게 30분간 욕설을 퍼부었다. 저자는 그를 고소한다. 동승한 자신의 딸과 아내의 안부를 챙기기보다는 사고 원인을 제공했다며 윽박지르고, 중재하려던 택시 운전사, 보험회사 직원, 증언하려던 젊은 청년 등 자신보다 연약한 모두에게 안하무인이었던 그에게 ‘무례함의 비용’을 물리기 위해서였다.
자신이 30대 남성이 아니라 여성 또는 노약자나 장애인이었다면 그의 태도가 어땠을까 상상하며 ‘나와, 나를 닮은 사람’을 지키기 위해 복잡한 소송을 시작한다. 그의 무례함을 묵인하고 나면 그는 또 누군가에게, 여전히 무례할 것이기 때문이다.
전염될수록 좋은 선한 기운
책을 읽으며 내가 겪은 교통사고가 떠올랐다. 일방통행 길에서 사고를 냈던 나는 그때 두 사람의 상반된 반응을 경험했다. 한 사람은 화를 내고 겁을 주며 나를 주눅 들게 했다. 전화로 연결된 또 한 사람은 내 몸의 안부를 먼저 챙겼고, 찍어 보낸 사진을 본 후에는 원래 있던 흠집인데, 괜한 걱정을 하게 했다며 오히려 미안해 했다. 그 후 나는 다른 것은 몰라도, 차와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조금은 관대하고 착한 사람이 됐다. 분명 선한 기운은 전염되는 게 맞는 것 같다.
한 해를 돌아보게 되는 12월이다. 지위를 이용해 군림하려 하고, 부끄러움을 모른 채 위선에 빠져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 이 세상에는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이처럼 ‘놀랍고 따뜻한 연대, 다정하고 정중한 연대’의 이야기를 접하고 나면 또 ‘사람’에게 기대를 걸어 보게 되는 것이다. 저마다 힘든 시절을 견뎌 온 ‘수많은 ○○○들’이 ‘수많은 ○○○들’에게 손을 내밀 때 우리 사회는 좀 더 살 만해질지도 모르겠다.
/mekim@kwangju.co.kr
그래서 지난여름 김민섭의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창비교육)라는 책을 만났을 때 반가웠다. ‘착하고 선한 마음’과 ‘느슨한 연대’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들려주는 따뜻한 이야기와 진심이 담긴 글쓰기는 위로를 전했다. 책은 “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착한 사람이나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로 시작한다. 그는 경쟁할 때 어떻게 하면 승리할까보다는 어떻게 져 주면 친구들이 기뻐할까 고민했다는, ‘선함에 남다른 집착을 보인’ 아이였다.
내가 김민섭 작가를 처음 접한 건, ‘나는 지방대 시간 강사다’란 책을 통해서다. 이후 주물공장에서 일하며 인터넷에 글을 쓰던 김동식 씨를 ‘발견’, 베스트셀러가 된 소설 ‘회색인간’ 출간 프로젝트를 진행한 사람이 그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이번 책에도 소개된 ‘김민섭 씨 찾기 프로젝트’였다.
출발 당일, ‘93년생 김민섭’은 “왜 사람들이 저를 이렇게 도와주었을까요?”라고 묻는다. ‘83년생 김민섭’이, 자신이 외롭고 막막했을 때 손을 내밀어 준 이들에게 했던 바로 그 질문이다. “그냥, 당신이 잘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그때 받았던 답을 돌려준다. “저도 언젠가 ‘2003년생 김민섭’을 찾아 여행을 보내주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 잘 살게요.” 되돌아온 말을 듣고 그는 자신이 받은 후의들이 단절되지 않고 그에게 이어진 것 같아 그에게 구원받은 기분이 들었다고 적었다.
이번엔 ‘참전하고 싶지 않았던 어른의 싸움’에 뛰어든 이야기다. 좁은 골목길에서 교통사고가 났고, 잘잘못을 가리기도 전 40대 남성 운전자는 그에게 30분간 욕설을 퍼부었다. 저자는 그를 고소한다. 동승한 자신의 딸과 아내의 안부를 챙기기보다는 사고 원인을 제공했다며 윽박지르고, 중재하려던 택시 운전사, 보험회사 직원, 증언하려던 젊은 청년 등 자신보다 연약한 모두에게 안하무인이었던 그에게 ‘무례함의 비용’을 물리기 위해서였다.
자신이 30대 남성이 아니라 여성 또는 노약자나 장애인이었다면 그의 태도가 어땠을까 상상하며 ‘나와, 나를 닮은 사람’을 지키기 위해 복잡한 소송을 시작한다. 그의 무례함을 묵인하고 나면 그는 또 누군가에게, 여전히 무례할 것이기 때문이다.
전염될수록 좋은 선한 기운
책을 읽으며 내가 겪은 교통사고가 떠올랐다. 일방통행 길에서 사고를 냈던 나는 그때 두 사람의 상반된 반응을 경험했다. 한 사람은 화를 내고 겁을 주며 나를 주눅 들게 했다. 전화로 연결된 또 한 사람은 내 몸의 안부를 먼저 챙겼고, 찍어 보낸 사진을 본 후에는 원래 있던 흠집인데, 괜한 걱정을 하게 했다며 오히려 미안해 했다. 그 후 나는 다른 것은 몰라도, 차와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조금은 관대하고 착한 사람이 됐다. 분명 선한 기운은 전염되는 게 맞는 것 같다.
한 해를 돌아보게 되는 12월이다. 지위를 이용해 군림하려 하고, 부끄러움을 모른 채 위선에 빠져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 이 세상에는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이처럼 ‘놀랍고 따뜻한 연대, 다정하고 정중한 연대’의 이야기를 접하고 나면 또 ‘사람’에게 기대를 걸어 보게 되는 것이다. 저마다 힘든 시절을 견뎌 온 ‘수많은 ○○○들’이 ‘수많은 ○○○들’에게 손을 내밀 때 우리 사회는 좀 더 살 만해질지도 모르겠다.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