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런타인데이를 잊은 남편과 대보름을 잊은 아내 - 정유진 코리아컨설트 대표
2022년 02월 21일(월) 00:30
시작은 낭만적이었다. 글로벌한 상업적 이벤트에 떠밀리기는 했지만 제법 오래된 결혼생활에 로맨스를 더해 보자는 생각이었다. 뻔하긴 해도 수제 초콜릿 한 상자와 마시고 싶었던 샴페인을 자동차 트렁크 안에 숨겨 놓았다. 2월 14일. 남편은 저녁에 미팅이 있다며 밖에서 식사까지 하고 온다고 했다. 설마 일부러 하는 장난이겠지 싶어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아이쿠, 이럴 수가! 저녁을 먹고 들어온 남편이 건네는 초콜릿 봉지 하나. 그나마 그 초콜릿은 업무상 갔던 식당에서 준 선물이라고 하니…

서운함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특별한 기념일에 판촉용으로 받은 초콜릿으로 퉁을 치기까지. 남편에게 앵도라져 한마디 건네자 오늘은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주는 날이란다. 한국 문화를 잘 아는 외국인 남편이 얄미웠다. 아무튼 모든 매체에서 한껏 사랑으로 넘쳐나는 밸런타인데이는 내 20년차 결혼 생활에 어퍼컷을 날렸다. 성의 없는 남편을 원망하자 중년의 위기까지 떠오르며 슬그머니 화가 치밀었다. 그 다음 날 내내 삐쳐 하루를 보낸 뒤 한밤이 되어서야 아차 싶었다. 이날 정작 가족이 다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부럼 하나 깨 먹지 못했으니.

나는 한낱 상술로 부풀린 밸런타인데이 때문에 힘들게 일하고 왔을 가장에 서운해 하느라 아름다운 우리의 세시 풍속 정월 대보름의 저녁을 잊은 채 기억하지 못한 것이다. 모두가 지속 가능한 라이프스타일을 꿈꾸는 세상. 집의 의미와 건강한 일상이 소중해진 요즘 마음에 더 와 닿는 기념일. 겨우내 무탈하게 집을 지켜 주신 성주님께 감사함을 담아 올리는 밥상. 겨울을 나기 위해 묵은 나물들을 먹고 앞으로 맛보게 될 봄의 설렘을 기대하는 밥상. 어디 그뿐인가? 내 더위를 재치 넘치게 팔며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고 보름달에 담긴 낭만을 ‘누군가’와 ‘함께’ 누릴 수 있는 날.

나는 2022년 정월 대보름을 ‘나 홀로’ 밸런타인데이 소동으로 정신 줄을 놓고 그냥 흘려보냈다. 휘황찬란한 상업적 소비문화와 남편의 무심함을 탓하면서도 사실상 기대에 맞는 보상을 바라다 화가 났을 거란 생각에 미치자 철없는 자신에 더욱 화가 났다. 생각이 생각을 낳듯 본질을 잊은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다 보면 눈밭에서 눈을 굴리듯 화는 계속 커져 간다.

불교 교화 중 좋아하는 이야기가 있다. 고승과 제자 스님이 길을 가다 개울을 건너야 했다. 두 사람은 거센 개울을 건너려다 이미 물에 빠졌는지 옷이 젖은 채 개울을 건너지 못하고 있는 여인을 보았다. 고승은 난처함에 빠진 여인을 업고 개울을 건넜다. 그 모습에 의심과 실망감을 느끼고 끝내 화를 참지 못한 제자는 한밤이 되어서야 고승에게 물었다. 수행자로서 어찌 그럴 수 있느냐며 따진 것이다. 고승은 조용히 제자에게 답했다. “나는 낮에 개울을 건널 때 그 여인을 내려 주었는데 너는 어찌하여 아직까지 그 여인을 업고 있느냐.”

행여 이 글이 밸런타인데이보다 정월 대보름이 더 중요하다는 뜻으로 읽힐 수도 있겠다. 과연 나조차 이렇게 쉽게 잊어버린 정월 대보름이니, 앞으로 사라져 갈 세시풍속이 우려되긴 한다. “내 더위 사라!”는 유쾌하고 재미있는 해학이 담긴 세시풍속을, 우주여행을 경험하게 될 MZ세대와 그 뒤를 잇는 알파세대들이 기억이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설 수도 있다.

하지만 쓸데없는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소유보다는 공유, 상품보다는 경험을 중시한다는 깜찍하고 야무진 MZ 세대는, 오곡밥·나물·부럼을 밀키트 상품으로 여기고 둥근 보름달 사진을 찍으며, 내가 화를 내다 놓친 정월 대보름을 그렇게 즐겼다고 한다. 그러니 세시풍속의 아름다운 미덕이 담긴 정신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계속 이어질 것이다.

사회의 세시풍속과 한 개인의 생애주기로부터 비롯된 중요한 기념일은 사회와 개인의 통념에 의한 기대와 보상을 걷어 낸다면 계속해서 그 의미를 발현하며 잘 지켜질 것이다. 혹시 이미 지나친 기념일에 대한 섭섭함이 남아 있다면 그냥 잊으라. 올해 밸런타인데이를 잊은 남편과 정월 대보름을 잊은 나는 서로 비금비금한 걸로 치기로 했다. 앞으로의 기념일은 많다. 서로에 대한 보상 기대는 걷어 내고, 그날이 기념하는 본질적 의미와 정신을 기억하며 더불어 공유하면 좋겠다. 어쩌면 우리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기념의 본질은 기억하는 정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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