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과 콩깍지-김원명 광주원음방송 교무
2022년 05월 20일(금) 00:15
요즘 여러 가지 사회적 갈등을 경험하면서 새삼 ‘삼국지’ 조식 편에 나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조조가 죽은 후 대권을 차지한 조비는 그간 아버지의 아낌을 받던 조식이 자기 자리를 넘보지 않을까 염려하게 된다. 그는 계책을 꾸며 조식을 불러들인 후 문죄하기를 “아버님께서 생전에 너를 사랑하셨던 것은 너의 뛰어난 문장 때문인데 요즈음 들으니 그 글들은 네가 지은 것이 아니라 하니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아버님을 속인 것일 뿐 아니라 천하 백성을 속인 일이니 그 죄를 면치 못하리라”고 경고했다. 또한 그 진위를 알기 위하여 시제(時題)를 줄 터이니 사람을 시켜 일곱 걸음을 옮기기 전에 시를 지으라 했다. 모든 사람이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가운데 일곱 걸음이 떨어지자 조식이 입을 열어 시를 읊었다.

“콩을 삶는데 콩깍지로 불을 때니(煮豆燃豆基)/ 콩은 솥 속에서 슬피도 우는구나(豆在釜中泣)/ 본래 한 뿌리에서 나왔거늘(本是同根生)/ 어찌 들볶기를 이렇게 급하게도 하는 고(相煎何太急)”

한 어머니 배에서 태어나 서로를 해치려 함이 마치 콩과 콩깍지 같음을 비유한 이 시에 조비도 부끄러움을 느끼고 조식을 제거할 생각을 거두었다는 이야기다. 형의 폐부를 찌르고 스스로의 목숨을 구한 이 시를 일곱 걸음에 지었다 하여 칠보시(七步時)라 하기도 한다. 남과 북이 총부리를 겨누는 아픔도 아픔이거니와 강경 진압과 결사 투쟁이 맞선 가운데 쫓고 쫓기는 현장은 마치 전쟁 마당 같아 살벌함마저 느끼게 되고, 조식이 말한 콩과 콩깍지의 관계가 생각나기도 한다. 통일도 되어야 하고, 더 성숙한 민주화도 되어야 한다. 그래서 당연히 통일을 가로막는 갖가지 장애 요소나 반민주적 요소들을 제거해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제들을 해결해 가는 과정이 보다 멀리 보고 깊게 생각하며 전체를 살려내는 대승적 행동이 되었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절실하다. 이 세상의 모든 주의나 주장은 절대적일 수는 없다. 부처님께서는 당신이 설한 법마저도 하나의 떼배라 하시고 강을 건너면 배를 버리라고 가르치셨다. 옳고 그름을 판별함은 마땅하나 거기에 집착하면 참으로 옳은 것을 잃게 되는 수가 많다. 그래서 대종사님께서는 “선이 좋은 것이나 작은 선에 얽매이면 큰 선을 방해하고, 지혜가 좋은 것이나 작은 지혜에 얽매이면 큰 지혜를 방해한다”고 가르쳐 주셨다. 자기 생각이나 판단에 집착하여 상대를 부정하다 보면 끝내 서로가 적이 되고 마침내 전체적인 생명마저 고갈시켜 마치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불태우는 꼴이 되고 만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현실이란 항상 여러 모순 속에 엉켜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고 정의를 바로 세우며 양심을 지켜나가는 일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책무여야 함은 마땅하다. 그러나 파사현정(破邪顯正)의 과정이 항상 근원적 동질성에 바탕하고 자기 집착에서 벗어나며 상대에 대한 미움을 넘어 전체를 살리고 이끌려는 대동의 길이어야 한다.

정산종사께서는 이 세상 모든 주의가 같은 원리에 바탕 되었고 모든 사람들이 같은 목적 속에 일하는 같은 일꾼임을 깨우쳐 주셨다. 공산주의도 자본주의도, 체제를 수호하려는 사람들도, 이에 저항하는 사람들도 결국은 하나의 목적 속에 같은 일을 하는 한 일꾼임을 알아야 한다. 이데올로기의 마지막 제물로 남은 이 땅에 얽히고설킨 갖가지 고리들을 슬기롭게 풀어내어 마침내 세계사의 바른 흐름으로 이끌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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