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산예장공원 ‘기억의 터’와 이회영 기념관] 기억하는 역사와 현재의 삶이 ‘함께’ 스며들다
2022년 10월 14일(금) 11:00 가가
기억하는 역사와 현재의 삶이 ‘함께’ 스며들다
우당 이회영 선생과 6형제
독립 정신 기리는 ‘기념관’
‘난잎으로 칼을 얻다’ 영상
‘서간도서시종기’ 육필원고
남산 중턱까지 1.7㎞ ‘국치길’
통감관저 자리에 ‘기억의 터’
우당 이회영 선생과 6형제
독립 정신 기리는 ‘기념관’
‘난잎으로 칼을 얻다’ 영상
‘서간도서시종기’ 육필원고
남산 중턱까지 1.7㎞ ‘국치길’
통감관저 자리에 ‘기억의 터’
서울 ‘남산’은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이름이다. ‘애국가’ 2절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듯’에도 등장하는 그 남산에 우리가 기억해야할 역사적 흔적들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은듯하다.
서울시는 남산의 생태환경과 문화 복원을 위해 지난 2009년부터 ‘남산르네상스 사업’을 진행했다. 남산을 4개 자락으로 나눠 특징있는 사업을 진행했는데 이번에 찾아간 남산예장공원은 특별히 역사를 기억하는 공간으로 조성했다.
이 곳은 조선시대 군사 무예 훈련장인 예장이 있던 곳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통감부와 통감관저가 자리했고, 군부독재시절에는 중앙정보부가 있었다.
서울 지하철 명동역 1번 출구로 나가면 ‘노란 나비’와 ‘기억의 터’라는 글귀가 써진 담벼락이 먼저 눈에 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만나는 ‘기억의 터’로 향하는 안내판 역할을 하는 담벼락엔 앳된 단발머리 소녀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남산예장공원의 역사 현장들은 시민들의 생활 속에 자연스레 스며들어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조성 당시부터 시민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산책코스를 조성했고, 대규모 녹지 공원을 조성해 6만여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또 남산타워와 명동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도 설치했다.
공원에 들어서자 아이와 배드민턴을 치는 아빠의 모습이 보인다. 바로 옆 이회영기념관에서는 초등학생 딸과 함께 온 엄마가 전시 공간을 둘러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기억하는 역사와 현재의 삶이 ‘함께’라는 기분이 들었다.
‘기억의 터’로 향하기 전 먼저 만나는 곳이 지난해 개관한 우당(友堂) 이회영기념관이다. 이회영 등 6형제가 모두 독립운동을 펼친,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이들이다. 그들은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전 재산을 처분, 압록강을 건너 서간도로 이주한 후 평생 독립운동에 투신하며 독립운동의 기틀을 다졌다.
전시관으로 들어서면 천정에 매달린 7개의 스크린에서 영상 작품 ‘난잎으로 칼을 얻다’가 흐른다. 이회영 형제들의 신흥무관학교 설립, 항일 무장투쟁 등 고난에 찬 노정과 수많은 독립운동 동지들을 담은 영상이다. 2층에서 영상을 바라보며 봉오동·청산리 전투에 참여한 수많은 독립투사를 길러낸 신흥무관학교 교가를 듣고 있자니 울컥해지고 만다.
‘서간도서시종기’(1966) 육필원고는 소중한 자료다. 이회영의 아내이자 여성독립운동가였던 이은숙이 신흥무관학교 설립 과정과 중국망명시절, 이회영 사망 등 50여년 동안의 독립운동 삶을 기억에 의해 생생하게 저술한 기록문학이다. ‘서간도시종로(路)’ 바닥에 그려진 원안에 서면 글의 일부를 낭독한 육성을 들을 수 있다.
또 하나 인상적인 유품은 이회영의 사진이다. 늘 감시자와 밀정이 붙어 있었기에 별다른 기록을 남길 수 없었던 그가 남긴 유일한 초상사진으로 아주 작은 크기(4.5㎝X6.8㎝)다. 또 광복을 맞아 형제 중 유일하게 한국 땅을 밟은 이시영(다섯째·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이 공항에서 눈믈을 흘리는 모습이 담긴 사진도 눈길을 끈다.
경기도 남양주‘이석영 뉴미디어도서관’과 ‘리멤버 1910’도 이들 형제를 기리는 공간이다.
데크로 만들어진 산책길을 따라 걸으면 ‘기억의 터’가 나온다. 조선침략의 교두보인 통감관저 터에 자리하고 있어 더욱 인상적이다. 1910년 8월 22일 이 자리에서 3대 통감 테라우치 마사다케와 을사오적 중 한명인 이완용이 강제병합조약을 체결했고 국치 뒤 이곳은 조선총독부 관저가 되었다.
“내 나이 12살, 언니와 나물을 뜯는데 차가 오더니 모자 쓴 사람들이 차를 타라고 했다. 둘이 끌어안고 버텼더니 나를 발로 차 버리고 언니 머리채를 쥐고 차에 태웠다.’ 임옥상 작가의 작품 ‘대지의 눈’에 적힌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은 생생하다. 진실을 바라보는 눈을 형상화한 ‘대지의 눈’에는 247명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이름과 그들의 증언, 역시 피해자였던 김순덕 할머니의 그림 ‘끌려감’이 새겨져 있다.
바로 앞쪽에는 거꾸로 세워진 동상이 눈길을 끈다. 고종황제에게 을사늑약을 강요한 하야시 곤스케의 동상을 받치고 있는 판석등 흩어진 동상 잔해를 모아 거꾸로 세움으로써 명예롭지 않은 역사를 반성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 전국에서 가져온 작은 돌파 커다란 판석으로 이뤄진 또 다른 조형물 ‘세상의 배꼽’은 “작은 파동이 점점 크게 세상으로 번져나가도록” 하자는 마음을 담았다. 한국통감관저부터 남산 중턱까지 잇는 1.7km의 길에는 ‘국치길’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공원에는 민주화의 정신을 새겨보게 하는 건물 ‘기억 6’이 있다. 마치 빨간 우체통처럼 보이는 건물은 5·16 쿠데타 이후 설치된 중앙정보국 6국이 있던 자리다. 민주화 인사들에 대한 고문을 자행했던 현장으로 지하에는 당시 고문실을 재현해 놓았다. 또 재생사업 과정에서 발굴된 조선총독부 관사 터 일부는 ‘기억 6’앞에 그대로 보존했다.
일본이 식민지배 상징으로 세웠던 조선신궁 터인 남산 중턱 서울시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에는 또 하나의 의미있는 조형물이 있다. 최초의 위안부 피해 증언자 김학순 할머니가 한국, 중국, 필리핀 소녀를 바라보는 모습을 담은 위안부 기림비 ‘정의를 위한 연대’다.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샌프란시스코 김진덕·정경식 재단 등 한국 교민과 미국에 사는 중국인, 일본인, 필리핀 사람들이 뜻을 모아 제작해 서울시에 기증했다.
“일본의 진정한 사과를 받지 못해 우린 아직 해방되지 않았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의 이 아픈 역사가 잊혀지는 것입니다.” 해가 질 무렵,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오솔길’을 걸으며 기억의 터에 새겨진 위안부 할머니들의 말을 다시금 되새긴다.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서울시는 남산의 생태환경과 문화 복원을 위해 지난 2009년부터 ‘남산르네상스 사업’을 진행했다. 남산을 4개 자락으로 나눠 특징있는 사업을 진행했는데 이번에 찾아간 남산예장공원은 특별히 역사를 기억하는 공간으로 조성했다.
서울 지하철 명동역 1번 출구로 나가면 ‘노란 나비’와 ‘기억의 터’라는 글귀가 써진 담벼락이 먼저 눈에 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만나는 ‘기억의 터’로 향하는 안내판 역할을 하는 담벼락엔 앳된 단발머리 소녀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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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중앙정보국 자리에 세워진 ‘기억 6’은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공간이다. |
전시관으로 들어서면 천정에 매달린 7개의 스크린에서 영상 작품 ‘난잎으로 칼을 얻다’가 흐른다. 이회영 형제들의 신흥무관학교 설립, 항일 무장투쟁 등 고난에 찬 노정과 수많은 독립운동 동지들을 담은 영상이다. 2층에서 영상을 바라보며 봉오동·청산리 전투에 참여한 수많은 독립투사를 길러낸 신흥무관학교 교가를 듣고 있자니 울컥해지고 만다.
‘서간도서시종기’(1966) 육필원고는 소중한 자료다. 이회영의 아내이자 여성독립운동가였던 이은숙이 신흥무관학교 설립 과정과 중국망명시절, 이회영 사망 등 50여년 동안의 독립운동 삶을 기억에 의해 생생하게 저술한 기록문학이다. ‘서간도시종로(路)’ 바닥에 그려진 원안에 서면 글의 일부를 낭독한 육성을 들을 수 있다.
또 하나 인상적인 유품은 이회영의 사진이다. 늘 감시자와 밀정이 붙어 있었기에 별다른 기록을 남길 수 없었던 그가 남긴 유일한 초상사진으로 아주 작은 크기(4.5㎝X6.8㎝)다. 또 광복을 맞아 형제 중 유일하게 한국 땅을 밟은 이시영(다섯째·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이 공항에서 눈믈을 흘리는 모습이 담긴 사진도 눈길을 끈다.
경기도 남양주‘이석영 뉴미디어도서관’과 ‘리멤버 1910’도 이들 형제를 기리는 공간이다.
데크로 만들어진 산책길을 따라 걸으면 ‘기억의 터’가 나온다. 조선침략의 교두보인 통감관저 터에 자리하고 있어 더욱 인상적이다. 1910년 8월 22일 이 자리에서 3대 통감 테라우치 마사다케와 을사오적 중 한명인 이완용이 강제병합조약을 체결했고 국치 뒤 이곳은 조선총독부 관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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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예장공원에 자리한 임옥상 작가의 ‘대지의 눈’에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름과 증언이 새겨져 있다. |
바로 앞쪽에는 거꾸로 세워진 동상이 눈길을 끈다. 고종황제에게 을사늑약을 강요한 하야시 곤스케의 동상을 받치고 있는 판석등 흩어진 동상 잔해를 모아 거꾸로 세움으로써 명예롭지 않은 역사를 반성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 전국에서 가져온 작은 돌파 커다란 판석으로 이뤄진 또 다른 조형물 ‘세상의 배꼽’은 “작은 파동이 점점 크게 세상으로 번져나가도록” 하자는 마음을 담았다. 한국통감관저부터 남산 중턱까지 잇는 1.7km의 길에는 ‘국치길’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공원에는 민주화의 정신을 새겨보게 하는 건물 ‘기억 6’이 있다. 마치 빨간 우체통처럼 보이는 건물은 5·16 쿠데타 이후 설치된 중앙정보국 6국이 있던 자리다. 민주화 인사들에 대한 고문을 자행했던 현장으로 지하에는 당시 고문실을 재현해 놓았다. 또 재생사업 과정에서 발굴된 조선총독부 관사 터 일부는 ‘기억 6’앞에 그대로 보존했다.
일본이 식민지배 상징으로 세웠던 조선신궁 터인 남산 중턱 서울시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에는 또 하나의 의미있는 조형물이 있다. 최초의 위안부 피해 증언자 김학순 할머니가 한국, 중국, 필리핀 소녀를 바라보는 모습을 담은 위안부 기림비 ‘정의를 위한 연대’다.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샌프란시스코 김진덕·정경식 재단 등 한국 교민과 미국에 사는 중국인, 일본인, 필리핀 사람들이 뜻을 모아 제작해 서울시에 기증했다.
“일본의 진정한 사과를 받지 못해 우린 아직 해방되지 않았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의 이 아픈 역사가 잊혀지는 것입니다.” 해가 질 무렵,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오솔길’을 걸으며 기억의 터에 새겨진 위안부 할머니들의 말을 다시금 되새긴다.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