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후식 칼럼] 다시 묻는다 “국가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2022년 12월 07일(수) 00:15

논설실장·이사

“국가란 무엇인가” “정부의 존재 이유는 뭔가” 이태원 핼러윈 참사 이후 우리 사회에서 끊임없이 소환되는 의문이다. 참척(慘慽)의 고통 속에 생때같은 아들딸을 가슴에 묻어야 했던 유가족들은 첫 기자회견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국가는 어디서 무엇을 했느냐”며 절규했다. 광주 지역 111개 시민사회단체들도 지난달 이런 물음이 적힌 플래카드를 5·18 민주광장에 내걸었다.

158명의 꽃다운 청춘들이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길을 걷다가 숨졌다. “압사할 것 같다” “살려 달라”는 구조 요청이 쇄도할 때, 비좁고 가파른 골목에서 뒤엉킨 젊음들이 질식해 갈 때, 국가는 보이지 않았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서로를 도운 건 시민들이었다.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교대로 심폐소생술을 했다.



‘책임 회피·꼬리 자르기’ 정부의 민낯

토마스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국가의 목적은 개인의 안전이다”라고 했다. 자유를 사랑하는 인간이 국가에 권리를 양도하는 것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에서 벗어나 자신의 생명을 보호받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우리 헌법(제34조 6항)도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한데 이 조항은 오늘 우리에게도 유효한가.

참사 이후 한 달여, 하루하루 드러나는 진상은 황당하고 충격적이다. 사고 발생 네 시간 전쯤인 저녁 6시 34분부터 ‘압사 위험’을 알리는 신고 전화가 열한 차례나 접수됐지만 경찰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10만 명 이상이 이태원 일대에 몰릴 것으로 예상됐음에도 정부와 지자체, 경찰은 안전 관리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인파 통제와 돌발 사태 대처를 위한 기동대 배치 요청조차 묵살됐다. 행사를 앞두고 작성된 경찰의 안전 대책 정보 보고서는 참사 이후 삭제됐다.

사고 발생 보고도 재난 안전을 총괄하는 장관이나 수습을 총지휘해야 할 경찰청장이 아니라 대통령이 먼저 받았다. 어찌된 일인지 보고 체계가 뒤집히면서 지휘 혼선과 늑장·부실 대응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런데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고 언죽번죽 둘러댔다. 거듭되는 사퇴 압박에도 “누군들 폼 나게 사표 던지고 벗어나고 싶지 않겠나”라며 손사래를 쳤다.

재난 안전망은 사고 이전에도 이후에도 먹통이었다. 정부는 처음 주최 측이 없는 행사라서 책임져야 할 일이 없다는 투로 대응했다. ‘참사·희생자·피해자’ 대신 ‘사고·사망자·부상자’로 표기하라는 공문을 시도에 보냈다. 책임 회피와 의미 축소에만 급급한 태도였다. 피해자 보호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국회의 대통령실에 대한 국정감사 도중 김은혜 홍보수석은 참사 관련 질의응답이 오가는 사이 메모장에 “웃기고 있네”라고 썼다. 참사 이후 정부와 여권은 ‘재난의 정치화’라는 프레임 구축에만 골몰하는 듯했다. 수사가 먼저라며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 요구를 정치 공세로 몰아붙였다. 그러다 보니 희생자들을 지켜 주지 못한 미안함이나 부끄러움은 오롯이 국민의 몫이었다.

전대미문의 사고가 어떻게 일어났는지,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규명하는 수사 역시 경찰·소방·구청 등 현장 책임자와 실무 공무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윗선’ 수사는 지지부진하다. 참사에 책임이 있는 경찰의 ‘셀프 수사’로는 실체적 진실 규명이 어렵다며 국정조사를 병행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한 까닭이다.



‘재난의 악순환’ 고리 이젠 끊어야

왕조 시대 임금들은 인력으로 어쩔 수 없는 재난과 천재지변까지도 자신의 부덕과 관련지어 ‘내 탓’이라며 무한 책임을 지려했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국가 운영의 주체는 선거로 선출한 대통령과 그가 구성한 정부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국민의 안전에 대해 국가는 무한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강조해 왔다. 한데 이번 참사에 대해서는 “죄송한 마음”이라고 밝혔을 뿐 잘못 인정도, 무능했던 정부 인사들에 대한 문책도 없었다. 이에 유가족들은 ‘진실성 있고, 제대로 된 공식 사과’를 촉구하고 있다.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그와 관련된 수많은 경미한 사고와 징후들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하인리히 법칙’은 역설적으로 ‘예측할 수 없는 재앙은 없다’는 사실을 웅변한다. 이태원 참사는 위기의 징후들을 가벼이 여긴 데서 비롯됐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서울시와 정부, 경찰 등 관계 당국의 ‘예측 실패’를 근본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럼에도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사의를 표명한 내각 구성원이나 고위직은 아직 없다. 막스 베버는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 지도자가 가져야 할 세 가지 덕목으로 열정과 책임감, 균형 감각을 꼽았다. 더욱이 정무직 공직자는 법적 책임만 아니라 시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한 정치적·도의적 책임도 져야 한다. 무책임이 드러났는데도 인적 쇄신을 미룬다면 리더십의 위기를 부채질할 뿐이다.

다행히 여야가 국정조사에 가까스로 합의하면서 진상 규명의 길이 열렸다. 하지만 정쟁에만 골몰해 진실을 밝혀내기는커녕 오리무중으로 몰아넣었던 전철을 반복해선 안 된다. 삼풍백화점·세월호 참사 이후 정비됐던 정부의 재난 대응 시스템이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 곰비임비 쌓인 구조적 문제점은 무엇인지 투명하게 밝혀내야 한다. 그리하여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최종 목표가 돼야 한다.

국가의 필요성을 사회계약설을 통해 주창한 홉스는 국가와 권력자가 국민의 안전을 지키지 못한다면 “그에게 복종할 의무가 없다”라고 했다. 우리 사회에 더 이상 대형 인명 참사가 반복되면 국가 공동체는 존립 근거를 잃게 되는 셈이다. 재난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대비책도 마련하지 못해 또 다른 재난을 부르는 악순환의 고리를 이제는 끊어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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