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연휴를 앞둔 지난 22일부터 24일까지 광주·전남에 내린 40㎝의 기록적인 폭설로 인해 지역민들의 일상이 멈췄다. 특히 제설작업이 제때 이뤄지지 않아 도심은 마비됐고, 연말을 앞두고 각종 모임을 계획했던 지역민들은 약속을 모두 취소하고 집에서 주말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광주·전남지역 지자체들이 앞다퉈 도로 제설 작업에 나서 비지땀을 흘렸지만, 기록적인 폭설 탓에 제설작업은 주요 도로 위주로만 이뤄지고 주택가 골목길이나 이면도로는 배제되면서 곳곳에서 빙판길 비상이 걸렸다.

◇미비한 제설작업=광주시와 5개 자치구는 눈이 내리기 시작한 22일 밤부터 제설작업을 시작해 26일까지 이어갔지만, 역부족이었다.

지자체가 직접 나서 눈을 치운 주요 간선도로와 달리, 주택가 이면도로나 경사로, 인도 등 제설 사각지대는 광주 5개 구가 인력 부족을 이유로 사실상 주민들 손에 제설을 의존한 탓에 제대로 제설·제빙 작업이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24일 오전부터 눈이 그쳤지만, 미흡한 제설작업의 여파는 26일까지 이어졌다. 도심의 대부분 도로는 한쪽으로 치워진 눈이 중앙선과 인도쪽 차선에 쌓이면서 높은 ‘눈 벽’이 만들어졌다.

광주시 주요 도로에도 끝 차선에 눈이 쌓여 도로가 좁아지면서 출퇴근시간대 병목현상으로 도로 정체가 이어졌다. 눈 벽이 생긴 차선에서 우회전을 하기 위해 무리하게 눈길로 주행하다 바퀴가 헛돌아 비상등을 켜고 차에서 내리는 시민들도 있었다.

자치구 제설팀들은 밤을 지새우며 눈과의 전쟁을 치렀지만, 주택 앞이나 골목길 등 주민들이 치우도록 돼 있는 이면도로는 여전히 빙판길로 남아 있어 낙상 등 안전사고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지자체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제설 사각지대’인 이면도로 주택가 등도 얼어붙으면서 경사진 골목길 등지에선 주변 난간이나 건물을 부여잡고 천천히 이동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광주시 서구 마륵동에서 50년을 산 박수희(여·72)씨는 “집에서 나오는 길이 살짝 오르막길인데 전부 빙판인데다 어디 붙잡을 것도 없어 위험하다. 일부러 덜 미끄러운 눈을 밟으면서 병원에 다녀와 신발이 다 젖었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은 워낙 길이 미끄럽고 좁아 굴삭기 등이 들어와 제설작업을 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이 동네에서 61년 산 김막례(여·86)씨도 “병원을 다녀오는데도 지팡이 짚고 천천히 가다보니 몇 시간이 걸렸다. 길이 다 얼음이라 병원만 아니었으면 웬만해서는 밖에 나오지 않으려 한다”며 “시에서 제설작업 좀 제대로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도와 골목길에 쌓인 눈은 일명 ‘내집 앞 눈치우기 조례’에 따라 건축물의 소유자 내지 점유자(거주자)가 제설을 실시하도록 하고 있지만 벌칙규정 없는 권고 형식의 조례라는 점에서 주민들의 참여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실종된 시민의식 탓도 있지만 광주지역 5개 자치구들은 인력 부족과 “주민들이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며 사실상 ‘시민의식’에만 기댄 채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광주시 관계자는 “트럭 등을 사용해 염화칼슘과 같은 제설제를 뿌리고 굴삭기와 인력을 총 동원해 이면도로의 제설작업도 진행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이면도로는 폭이 좁아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많아 마을 자체적으로 제설작업을 하도록 권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날 광주시 동구 충장로의 한 상가 골목은 제설 작업이 안 돼 빙판길로 변해 있다. /나명주 기자 mjna@kwangju.co.kr

◇연말 송년회·성탄 약속은 취소되고 사고만 이어져=폭설로 도로가 막히면서 크리스마스 연휴 약속도 줄줄이 취소되고 사고가 잇따랐다.

광주시 동구 충장동의 한 일식집에서는 23일 저녁 예약이 전부 취소됐고, 쌍촌동의 한 중국집은 배달 자체를 받지 않고 홀 손님만 받았다.

서구 상무지구의 한 한식집 사장은 “연말이고, 이번 주말 크리스마스 연휴가 겹쳐있어 대목이라 준비를 많이 했는데, 폭설로 저녁 손님이 절반 가까이 줄어버렸다”며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광주시 서구 풍암동에 사는 전한솔(여·26)씨는 “크리스마스 이브를 앞두고 남자친구와 저녁약속을 잡았는데 눈 폭탄에 만나지도 못했다”며 “식당 예약도 취소하고 계속 집에만 있었다”고 전했다.

폭설로 광주·전남 지역 곳곳에서 교통사고가 이어져 사상자가 속출했다. 22일 오후 4시 40분께 영암군 삼호읍의 한 도로에서 40대 여성운전자가 눈길에 앞차와 충돌을 피하기 위해 차선을 변경하다 도로 옆 저수지에 빠져 숨졌다.

23일 오전 9시 50분께에는 광주시 동구 롯데백화점 앞 버스정류장에서 버스 2대가 눈길에 미끄러져 부딪혀 승객 3명이 다쳐 병원으로 이송됐다.

25일 오전 9시께 나주시 빛가람동의 한 도로에선 승용차가 눈길에 미끄러져 지상변압기를 들이받아 인근 아파트 1500 여가구가 정전됐다가 1시간여만에 복구됐다.

25일 밤 7시께 지리산 성삼재 휴게소 인근 도로에선 일가족 4명이 탄 SUV 차량 1대가 눈길에 갇혀 3시간만에 구조되기도 했다.

지역농가의 재산피해도 잇따랐다. 역대급 폭설로 담양, 장성 등 8개 시군 84농가 비닐하우스 137동(8만㎡)과 순천, 곡성, 보성 등 전남 7개 시군 13개 농가 축사 35동(1만 2000 ㎡)이 무너져 10억원 가량의 재산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남도는 피해 신고와 조사가 진행되고 있어 피해가 더 늘 것으로 내다봤다.

/천홍희 기자 strong@kwangju.co.kr

/민현기 기자 hyunk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