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현의 문화카페- 거장에 대한 예의
2023년 01월 10일(화) 22:00
새로운 한해가 시작된 지난 10일, 광주 무등산 자락에 위치한 무등현대미술관(관장 정송규)에서는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지난해 ‘광주시문화예술상 오지호미술상 본상’을 수상한 서양화가 정송규 관장의 축하를 겸한 신년 인사회였다. 하지만 이날 모임은 당초 ‘예정에 없던’, 매우 이례적인 자리였다. 지난해 12월 7일 개최된 시상식에서 수상자에게 직접 전달해야 할 꽃다발과 축하 인사를 ‘한달이 지나서야’ 전하게 된 것이다. 지난해 11월 오지호 미술상 수상자를 선정한 광주시로 부터 공식 통보 받지 못하고 수상자인 정 관장이 시상식이 끝난 후 후손측에 전화를 걸어 감사의 인사를 건네면서 뒤늦게 ‘저간의 사정’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축하의 자리로 시작된 모임은 오지호 미술상의 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이어져 토론회를 방불케 했다.

광주시 문화예술상은 미술, 문학, 국악 등에서 숭고한 예술정신을 남긴 박용철·김현승·정소파·허백련·오지호·임방울 선생을 기리기 위해 문화예술의 창조적 발전에 공적이 있는 작가들을 대상으로 해마다 수여하고 있다. 하지만 변변한 특전과 부상이 없어 매년 적합한 후보자를 발굴하는 데 애로를 겪고 있다. 지난 2021년 개최된 시상식이 대표적인 케이스. 전체 9개 시상부문에서 김현승문학상, 허백련미술상 본상, 오지호미술상 본상, 임방울국악상 본상에 후보자가 없거나 적격자가 없어 수상자를 내지 못했다. 지난 1992년부터 시작된 오지호 미술상 본상은 과거 세 차례나 수상자를 내지 못하는 굴욕을 겪기도 했다. 강원도 양구의 ‘ 박수근 미술상’과 대구의 ‘이인성 미술상’이 매년 국내 미술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사위원회 등을 거쳐 수상자를 발굴해 권위를 높여가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특히 전국구 브랜드로 떠오른 ‘이인성 미술상’은 광주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근대 미술사에 큰 업적을 남긴 서양화가 이인성의 예술 정신과 한국 미술 발전을 기리기 위해 2000년 제정한 이인성 미술상은 국내 최고 수준의 상금 5000만 원과 대구시립미술관 초대전(전시예산 1억~1억5천만원, 전시기간 110일)을 제공해서인지 작가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다.

반면, 오지호 미술상은 단돈 400여 만 원(도록 제작 포함, 2020년 기준)의 비용으로 작가가 직접 전시장을 빌려 1~2주일내에 전시를 끝내야 하다 보니 미술인들의 창작 의욕을 꺾는 ‘허울 좋은’ 수상작가전으로 불린다.

물론 미술상의 위상이 상금과 부상의 크기에 의해 결정되는 건 아닐 터. 하지만 오지호미술상이 국내 미술계에서 위상을 높이고 수상자의 창작 의욕을 키우는 취지를 살리기 위해선 상의 권위를 상징하는 실질적인 혜택이 뒤따라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오지호미술상과 의재 허백련상을 ‘광주문화예술상’에서 분리해 브랜드화하고 대구시처럼 시립미술관에게 운영을 맡겨 내실을 꾀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곧 거장에 대한 예우이자 예향 광주의 미래다.

이날 행사가 끝나갈 즈음, 학창시절 오지호 화백과의 일화를 들려준 정 관장의 소회가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다른 도시나 외국에 나갈 때 항상 광주 출신 작가라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어디에서나 당당할 수 있는 건 우리에겐 오지호라는 큰 예술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예향담당국장,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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