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방직공장의 기적
2023년 02월 08일(수) 00:00
인구 45만 여 명의 가나자와는 일본에서 내로라 하는 문화도시다. 에도시대의 역사가 숨쉬고 있는 고도(古都)인 데다 지난 2002년 유네스코가 선정한 공예창의도시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2004년 개관한 21세기 가나자와 미술관과 금박박물관은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는 글로벌 명소다.

하지만 가나자와의 진가는 시민들의 문화지수에서 나온다. ‘한집 건너 예술가’라는 말이 나올 만큼 다른 도시에 비해 아마추어 작가들이 많아서다. 그렇다고 가나자와 시민들이 처음부터 문화를 가까이 했던 건 아니다. 지난 1990년 대 초, 옛 방직공장을 시민들의 연습공간으로 리모델링한 ‘시민예술촌’이 문을 열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프로페셔널 예술가들을 위한 갤러리나 공연장은 많지만 문화애호가들을 위한 연습실이 부족하자 가나자와시가 방직공장을 매입해 시민들에게 돌려준 것이다.

실제로, 수년 전 취재차 둘러본 ‘가나자와 시민예술촌’은 기대 이상이었다. 평일 낮인데도 시민예술촌에는 바이올린을 연주하거나 연극연습을 하는 주부들로 북적였다. 건물 안쪽에 자리한 스튜디오에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들의 열기로 뜨거웠다. 방음시설이 완벽하게 갖춰진 덕분인지 이들은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열정적인 연주를 펼쳤다.

이처럼 예술촌에 들어선 6개의 스튜디오에는 오케스트라, 밴드, 연극 등 각 장르의 활동에 맞는 시설과 장비가 비치돼 시민들은 ‘몸만 오면’ 연습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다. 직장인들의 퇴근 시간을 고려해 하루 24시간 개방하고 가나자와 시민이면 누구나 3개월전 예약을 통해 6시간에 1000∼3000원이라는 ‘착한’ 요금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머지 않아 광주에도 가나자와 부럽지 않은 ‘명품 복합단지’가 탄생할 것 같다. 광주시가 옛 전방·일신방직 부지에 상업·업무·문화·주거공간이 어우러진 마스터플랜을 추진중에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참여하는 국제설계공모방식을 통해 ‘디자인’하기로 해 기대감을 갖게 한다. 이를 위해 광주시는 최근 국제적 인지도와 전문성이 뛰어난 국내외 여덟 개 회사를 대상으로 오는 3월 15일까지 작품을 접수하기로 했다. 이후 기술 검토와 작품 심사를 거쳐 3월 20일 최종 당선작을 선정해 오는 7월까지 부지 개발 사업자와 도시계획 변경 사전 협상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30만㎡에 달하는 옛 전방·일신방직 공장 부지는 광주의 장밋빛 비전을 구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세계적 거장들의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광주시의 담대한 지원, 지역사회의 관심이 맞물린다면 광주를 상징하는 꿈의 랜드마크가 될 가능성이 크다. 고려제강의 폐공장 일대를 핫플레이스로 리모델링한 부산의 F1963에서부터 폐 도축장을 유네스코 디자인 창의도시 허브로 되살려낸 상하이 1933, 100여 년 전의 탄광촌 수영장을 유럽문화수도의 발신지로 가꾼 프랑스 릴의 루베미술관 등은 문화로 도시의 미래를 꽃피운 현장이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도시의 색깔을 바꾼 가나자와 방직공장의 기적을 광주에서도 만나고 싶다. 상상만 해도 가슴이 설레지 아니한가.

<문화·예향국장, 선임기자>

실시간 핫이슈

많이 본 뉴스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