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미술관에서 배운다] 고흐에서 제프 쿤스까지… 수백 만 명의 관광객 사로잡다
2023년 12월 10일(일) 20:10
<1> 차별화된 컬렉션(상)
# 폴 게티 미술관
사업가 J. 폴 게티 유산으로 건립
모네 ‘건초더미’·고흐 ‘아이리스’등
90만 여점 컬렉션 독보적
# 더 브로드
엘리 & 에디스 브로드 기증으로 탄생

LA의 관광1번지로 불리는 폴 게티 미술관은 ‘오일머니’로 막대한 부를 일군 기업가 J.폴 게티(J. Paul Getty)가 게티재단에 남긴 유산과 수십 년간 수집한 컬렉션을 모태로 설립됐다. 기원전 그리스·로마 미술에서부터 21세기 현대미술을 아우르는 90만 여점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

코로나19이후 여행 트렌드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는 답사에서 벗어나 미술, 건축, 음악, 역사, 인문 등 다양한 주제로 떠나는 아트투어가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이탈리아의 베니스 비엔날레는 전 세계에서 80만 명이 방문했고, 국제미술시장인 스위스의 아트바젤은 9만 여 명이 다녀가는 성황을 거뒀다.

특히 미국의 유명 미술관들은 차별화된 기획전과 화려한 컬렉션으로 미술애호가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이 가운데 폴 게티미술관, 더 브로드,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드 영 미술관 등을 품고 있는 미국의 캘리포니아주는 다른 곳에는 접하기 힘든 걸작들을 통해 매년 전 세계에서 2800만 명을 불러 들인다. 무엇보다 월드 클래스의 건축가가 설계한 이들 미술관은 그 자체가 ‘작품’이고 방문객들을 위한 쉼터로 꾸민 야외조각공원은 또 하나의 감동을 선사한다. 미국 미술관의 선진사례를 통해 문화도시 광주가 예술관광의 메카로 거듭날 수 있는 방안을 5회에 걸쳐 소개한다.

게티미술관 1층에 꾸며진 ‘폴 게티 레가시 공간’은 사회에 막대한 유산을 남긴 게티의 메세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폴 게티 미술관

미국 LA의 브렌트우드산 정상에 위치한 게티 미술관(이하 게티)은 ‘오일 머니’로 억만장자가 된 사업가 J. 폴 게티(1892∼1976)의 유산으로 건립됐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미술관’으로 불리는 미술관답게 어느 것 하나 ‘명작’이 아닌 것이 없을 정도로 빼어난 컬렉션을 자랑한다. 기원전 그리스·로마 미술에서부터 21세기 현대미술을 아우르는 90만 여점의 컬렉션(회화, 드로잉, 조각, 유물 등 포함)은 단연 독보적이다. 매년 전 세계에서 180만 명을 끌어 들이는 원동력이 컬렉션에서 나온다.

그중에서도 클로드 모네의 ‘건초더미’(Wheatstacks, Snow Effect, Morning·1891년 작), 빈센트 반 고흐의 ‘아이리스’는 게티의 아이콘으로 통한다.

모네 작 ‘건초더미’
인상파 화가 모네가 그린 ‘건초더미’는 파리 근교인 지베르니에 머물렀던 1890년대부터 그린 25점의 연작 가운데 하나다. 늦은 여름 아침을 그렸거나 가을날 저녁의 모습을 담은 것과 달리 이 작품은 눈쌓인 겨울의 스산한 풍경이 인상적이다.

작품 앞에 서면 붉은 빛이 감도는 캔버스 위에 자리한 두 개의 건초더미에 시선이 꽂힌다. 제목으로 보아 해가 뜰 무렵 프랑스 시골 농가의 한적한 모습을 담았다. 계절이나 시간, 구도, 빛 등에 따라 변하는 건초더미를 통해 풍경(landscape)은 불변의 존재가 아니라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인식된다는 의미를 전하고 있다. 특히 핑크빛의 하늘과 그로 인해 영향을 받은 눈의 색상, 푸른 빛이 감도는 건초더미의 그림자는 겨울 풍경의 백미다.

‘건초더미’의 명성은 지난 2019년 1억1070만 달러(약 1316억 원)에 낙찰된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확인된다. 당시 낙찰금액은 소더비 경매기록 상위 10위권 안에 드는 거액으로, 인상파 화가의 작품이 1억달러 이상으로 거래된 최초의 사례로 꼽힌다.

고흐 작 ‘아이리스’
불멸의 화가 고흐의 ‘아이리스’(Irises·1889년 작)도 ‘구름관객’을 불러 들이는 대표작 가운데 하나다. 게티의 웨스트 파빌리온에 전시된 ‘아이리스’ 는 몰려 드는 관람객들로 쾌적한 감상이 어려울 정도다.

‘아이리스’가 주목받는 이유는 작품의 완성도 뿐만 아니라 작가의 굴곡진 삶을 엿볼 수 있어서다. 1888년 파리 생활에 염증을 느껴 남쪽 지방인 아를(Arles)로 이주한 고흐가 이듬해 생 레미(Saint-Remy)에 있는 생폴드모졸 정신병원에 입원한 이후 처음으로 그린 작품이기 때문이다. 1890년 세상을 떠나기전까지 1년 동안 130점을 그린 그는 정신병원 정원에 피어있는 아이리스를 화폭에 담았다. 황토색 밭과 보랏빛의 아이리스, 푸른 색조를 띤 잎사귀 등 고흐 특유의 강렬한 빛과 색채로 표현해 ‘빛의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889년 살롱 드 앙데팡당전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후 1987년 미국 뉴욕 소더비경매에서 5390만달러(약 610억원)에 판매돼 화제가 됐다.

‘더 브로드’ 미술관은 자선사업가이자 부동산 재벌인 엘리 & 에디스 브로드(Eli &Edythe Broad)부부가 기증한 2000여 점의 컬렉션으로 탄생한 곳이다. 미국미술과 20세기 이후 현대미술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더 브로드는 특히 팝 아티스트 제프 쿤스의 컬렉션이 유명하다.
#더 브로드

LA의 그랜드 애비뉴에 자리한 ‘더 브로드’(The Broad)는 20세기 이후 현대미술을 조망할 수 있는 세계적인 미술관이다. 미술애호가들 사이에 반드시 가봐야 하는 미술관으로 불릴 만큼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올해로 개관 8주년을 맞은 신생 미술관이지만 한해 90만 명을 끌어 들이는 원천은 양질의 컬렉션이다. 팝아티스트의 대표주자인 앤디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로버트 라우젠버그, 제프쿤스에서부터 에드워드 루샤, 사진작가 신디 셔먼 등 200여 작가의 작품 2000점은 그 자체가 현대미술사의 현장이다.

인상적인 건 제프쿤스, 앤디워홀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을 독립된 갤러리에 전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프쿤스 캘러리에는 ‘키치(Kitsc)의 대가’답게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일상적인 소재를 특유의 유리섬유와 스테인레스로 제작한 ‘튤립’, ‘토끼’, ‘풍선개’‘마이클잭슨과 비눗방울’이 전시돼 있고 앤디워홀 갤러리에서는 ‘마를린 먼로’, ‘재키’, ‘싱글 엘비스’(Single Elvis)등을 만날 수 있다.

로버트 테리안 작 ‘테이블 밑에서’
특히 더 브로드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과시하는 작품은 현대미술가 로버트 테리안(Robert Therrien)의 ‘테이블 밑에서’(Under the table, 29m× 79m×54m·1994년 작)이다. 책상이나 의자, 접시 등 친숙한 소재들을 수십 배 확장시켜 재현한 그의 작품들은 마치 거인국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이들 미술관이 세기의 걸작들을 소장하게 된 데에는 ‘큰손’들의 기부가 컸다. 한 점에 수백억에서 수천억 원을 호가하는 명작들을 구입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미술관이 컬렉션을 보완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예산을 들여 구입하지만 상당수의 미국 미술관들은 개인이나 기업으로부터 수십년간 공들여 수집한 컬렉션을 기증받는다.

실제로 폴 게티는 1930년대부터 197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50년 동안 모은 수십 여 만 점과 7억 달러를 재단에 남겼는 데 이는 당시 그의 유산 60억 달러(현재 기준 270억 달러)의 10%에 가까운 수치다.

더 브로드 역시 부동산 개발로 LA의 ‘슈퍼리치’가 된 자선사업가 엘리 & 에디스 브로드(Eli &Edythe Broad) 부부의 기증으로 탄생했다. 영화와 오락의 도시인 LA를 글로벌 문화도시로 변신시키기 위해 자신이 50년간 수집한 2000여 점의 컬렉션을 쾌척한 것이다. 이같은 사회지도층의 기부가 오늘날 미국 미술관을 세계적인 관광지로 키운 힘이다.

/LA=글·사진 박진현 문화선임 기자 jh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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