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기행] 부챗살 너머 ‘레트로 감성’을 찾다…전주부채박물관
2024년 03월 04일(월) 10:50
박물관장, 부친에 이어 2대째 무형문화재 선자장
조선시대와 세계의 부채 등 총 1,200여점 소장
조선 왕실서 쓴 백접칠접선 복원 작품도 ‘눈길’

박물관 전경

합죽선의 역동적인 모습이 심볼 마크에 담겨 있고, 조선시대 부채를 만들고 관리하던 선자청이 마지막까지 있었던 ‘부채의 고장’ 전주. 전주시 완산구 한옥마을 인근에 있는 ‘전주한옥마을 부채박물관’을 찾았다. 도심 외곽 한적한 공간에 자리 잡고 있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큰 길가 3층 건물에 위치하고 있어 다소 낯선 느낌이다. 하지만 전통부채를 만드는 기술과 기능을 보유한 장인에게 주어지는 무형문화재 선자장을 대를 이어 보유하고 있는 박물관장과 오랜 세월의 흔적이 담긴 색바랜 유물과 작품들을 통해 박물관의 ‘무게감’이 훨씬 무겁게 느껴진다. 부채의 장인 중 한 명인 문준화 선생의 제자인 고(故) 엄주원 선자장의 뒤를 이은 아들 엄재수(60) 선자장이 박물관장을 맡고 있다. 또 박물관장의 아들 창석(26)씨도 그 뒤를 따르고 있어 ‘무형문화재 선자장 3대의 꿈’을 이루고자 하는 전통의 박물관이다.

부채박물관은 엄 관장이 부친의 뜻을 이어받아 지난 2012년 개관했다. 어릴 적 아버지의 작업을 도우면서 자연스럽게 익혀 오다 대학 때부터 본격적으로 부채를 만들어 온 지 40여 년만에 매듭을 지은 것이다. 박물관에는 엄 관장이 선조들의 선자장 노하우를 알아내기 위해 틈틈이 모아왔던 조선시대의 부채들부터 국내 유명 장인들의 작품, 아버지와 자신의 작품 등 총 1200여점이 소장돼 있다. 그 중 전시장에는 150여 점이 나와 있으며, 엄 관장의 아버지가 쓰던 각종 장비와 도구도 함께 진열돼 있다.

사진 위 왼쪽부터 합죽선, 합죽 선면 칠선, 홍지 칠 접선, 합죽선(조선시대), 접선.
부채박물관의 특징은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시대순으로 부채의 변천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는 것, 세계의 다양한 부채도 접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조선시대 왕실에서만 사용됐던 칠접선을 복원한 부채가 있다는 것이다. 2층 전시실에 들어서면 조선시대의 작품부터 만나게 된다. 엄 관장이 수많은 부채 중에서 나름 새겨 봐야 할 작품 몇 개를 소개한다. 먼저 조선시대 전형적인 부채로 종이에 기름칠이 되어있고, 부채의 뼈대인 속살은 합죽(두겹), 겉대는 마디대로 되어 있는 ‘합죽선’이다. 다음으로 붉은 색 종이에 속살은 한 겹에 옻칠이 된 ‘홍지칠접선’, 소뼈로 된 부채 머리와 겉대 죽피 위에 문양이 새겨진 독특한 기법의 ‘접선’, 제작연도가 1920년대로 추정되는 합죽선, 종이에 옻칠하고 금분·은분으로 그림 그린 1930년대의 ‘합죽 선면 칠선’ 등을 꼽았다.

세계 각국의 부채.
이어 근대·현대의 작품들을 감상하며 가다 보면 세계 여러 국가의 부채들이 한곳에 모여 있다. 일본·중국을 비롯해 동남아, 스페인 등 유럽의 부채 50여 점이 눈길을 끈다. 다음은 엄 관장이 제작한 작품들이 진열된 곳이다. 그가 가장 먼저 소개한 것은 바로 왕실에서만 사용됐다는 백접칠접선을 복원한 것으로 제작 기간만 4년이나 소요됐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문화 말살정책에 따라 부채 만드는 기술도 점차 사라져 좀처럼 제조기법을 알아내기 어려웠다는 엄 관장은 “백접칠접선을 복원한 경우는 부채박물관에 소장된 것이 유일하다”고 설명한다. 이어 그는 “그간 사라진 기술을 복원하기 위해 부채 수집하는 사람들과 연락하고, 경매사이트 등을 통해서 실물을 구하고자 부단히 노력해 왔다”고 덧붙인다. 이같은 그의 강한 의지와 끈질긴 노력 끝에 국내 유일의 복원이라는 결실을 맺은 것이다.

전시된 작품 중에 국내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씨의 사인이 새겨진 부채가 보인다. 2008년 이소연씨가 우주에서 시행할 실험 중 부채의 물리력 테스트를 위해 전주시의 소개로 엄 관장이 만든 부채 2개를 가져갔다는 것이다. 또 엄 관장의 부채는 MBN 드라마 ‘보쌈-운명을 훔치다’에 협찬됐고 수많은 패션 소품으로도 등장해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하나의 부채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은 간단치가 않다. 보통 부채를 만드는 시기는 입추부터 단오 전까지 약 8개월 동안이라 한다. 엄 관장은 이 기간 중 수작업으로 약 100여개를 제작하고 있다. 1개의 부채를 만들기까지 수많은 풀작업을 반복해야 하는 관계로 최소 3달 이상은 걸린다고 한다.

부채를 제작하는 공정도 크게 6단계(6방)로 구분된다. 1단계 ‘초조방’으로 대나무를 잘라 얇게 깎아내는 것. 2단계 ‘정련방’ 대껍질 두 개를 하나로 붙여 살을 만드는 것. 3단계 ‘낙죽방’ 겉대에 인두로 문양을 새기는 것. 4단계 ‘광방’ 광을 내고 속살을 매끄럽게 하는 것. 5단계 ‘도배방’ 부채의 종이를 붙이는 것. 마지막으로 6단계는 ‘사북’으로 부채 머리에 장식용 고리를 조립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부채는 고구려 고분 벽화와 고려시대 송나라의 손목이 쓴 ‘계림유사’ 등을 통해 부채 사용 시기와 부채라는 표현했던 시기를 유추해 볼 수 있다. 부채와 관련된 옛 속담에 ‘단오 선물은 부채요, 동지 선물은 책력(달력)’이라는 말이 있어, 여름이 가까워지는 단오에 친지와 웃어른께 부채를 선물하는 풍속을 들여다볼 수 있다. 이처럼 부채가 애장품이었던 반면에 사람이 죽었을 때 같이 무덤에 넣었기 때문에 현존하는 옛 조상들의 부채가 의외로 많지 않다고 한다.

지금 부채를 만드는 일이 코로나19 영향이나 재료 구입 어려움 등으로 예전 같지 않다는 엄 관장은 “색상이나 디자인 등 여러 가지 면에서 현대적 취향에 맞는 부채를 연구 개발해 우리 민족의 빛나는 문화 유산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한다. 어려움 속에서도 대를 이어 가고자 하는 무형문화재 선자장의 꿈이 반드시 이뤄지길 기대한다.

/글·그림=서승원 기자 swseo@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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