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동네에서 크는 아이들 - 정유진 코리아컨설트 대표
2024년 06월 03일(월) 00:00
동네 문화체육센터에서 배드민턴을 배우겠다고 하던 아이가 며칠째 수강 등록을 미적거리는듯 했다. 홈페이지 회원등록을 하고 수업 신청만 하면 될 그 간단한 일을 미루냐며 아이를 다그쳤다. 돌아온 대답은 어떻게 해도 가입이 안된다는 것이다.

능수능란하게 인터넷과 핸드폰을 잘 다루는 아이가 동네 체육시설의 회원 등록이 어렵다니 이제 엄마가 나설 차례다. 지역구를 검색해 사이트에 들어가자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부터 막혔다. 성명을 기입하는 난에 이름 전부를 다 넣을 수가 없었다. 아이와 함께 보고있던 터라 당혹감을 느꼈는데 아이는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문득 오래 전 기억이 떠올랐다. 유치원 하원 차량에서 내린 아이는 여느 날과는 다른 표정이었다. 집에 와서야 아이는 자신이 왜 ‘반반’인지 그리고 ‘짬뽕’이라 불리는 지 물었다. 순간 방망이로 머리를 한대 맞은 것 같았지만 한편 올 것이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냥 어물쩍 넘어갈 순 없었다. 빠른 궁리 끝에 반반이 더해진 100%가 아니라 한국과 독일 두 나라 모두를 꽉 채운 200%라고 답해주었다.

그 후 1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매우 달라졌다. 지난 20년 동안 매해 0.5%이상씩 늘어난 국내인구 중 외국인 비중은 올해 5%를 넘어섰다. 이는 숫자상으로 보자면 내 주변의 20명 중 최소 1명은 외국인이나 국제결혼 자녀 또는 이민자 2세, 귀화인 등과의 만남이 있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청소년 인구에서도 국제 결혼을 비롯한 이주 배경을 가진 가정의 학생들 숫자는 괄목할 만큼 증가하고 있다. 현재 총 521만명의 초·중·고교 학생 중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은 전국의 3.5%를 차지하고 있는데 여성가족부는 학령인구는 줄고 있는 반면 다문화 가정 학생은 최근 10년 사이 3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밝혔다.

다문화 국가로의 진입은 그야말로 단일민족의 문화를 자랑하던 이제까지의 한국과는 다른 사회, 문화 전반의 대전환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출생 국가, 종교, 문화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다른 사람들이 한 데 모여 다원화된 인적 구성과 문화 지형을 만들게 된다.

다문화란 단어를 들으면 보통 국제결혼을 통해 형성된 가족을 떠올리고 그런 가정으로 국한해서 사용한다. 하지만 점차 이주 배경이 다른 다양한 다문화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만큼 다문화에 대한 인식과 이해도 넓혀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에게 다문화에 대한 인식을 바르게 심어주고 이주배경을 가진 부모를 둔 아이들이 혐오와 차별을 느끼지 않으며 소속감과 연대감 속에서 자라날 수 있도록 주의와 배려가 필요하다.

아이들의 성장에 관한 아동 발달 단계는 참으로 흥미롭다. 출생 시기부터 만 2세까지는 간단한 운동 능력을 배우고 놀랍게도 이 시기에 주변 세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갖춘다고 한다. 2세부터 6세까지는 언어 발달이 급속도로 이루어지면서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한다. 이후 12세까지 해당되는 학령전기에는 학습과 사회적 기술을 배우며 타인과의 상호 관계 능력을 개발하고 18세까지 정체성의 형성 및 더 복잡한 사회적 상호 작용에 대한 능력을 다진다고 한다. 아이가 성장하는데 있어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데 매 순간 간과할 수 없는 이유다.

기존 문화에 다른 문화를 포용한 다원화된 환경은 창의력을 키우는 최고의 인큐베이터가 되어 줄 수 있다. 다양성이 공존하는 사회일수록 부와 창의성이 증가한다는 연구 사례들이 보여주듯이 다문화 사회에서 성장한 이들 중 특별한 창의력을 발휘한 인재들은 수없이 많다. 애플의 공동 창립자 스티브 잡스, 민간 우주기업 스페이스 X의 창립자 일론 머스크, 코로나 백신을 개발한 바이오엔텍의 우구르 사힌과 외즐렘 튀레지는 모두 제각기 다른 이주 배경을 가진 다문화 국가에서 성장한 이들이다.

다름을 존중받은 다문화 사회에서 서로 잘 어울리며 건강하게 성장한 아이들은 분명 우리 사회에 창의적 에너지를 더해 줄 것이다. 동네에서 마주치는 어린 아이들은 모두 대한민국의 미래 국민이자 인재들이다. 그러기에 그들을 마주한 다문화 동네에서 편견없이 그들을 바라보고 건강하게 잘 키우는 것이 동네 어른의 몫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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